아무리 큰 프로젝트라도 시작이 반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자동차는 큰돈을 투자해서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상품이다. 시장이 원하는 차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차 사이의 간격을 좁혀 가며 막연했던 아이디어가 구체적인 상품으로 형상을 갖추는 첫 번째 관문이 바로 Concept Freeze(콘셉트 확정) 마일스톤이다. 뒤 이은 마일스톤 중에서도 이 단계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여기서 결정된 방향성이 차가 단종되는 순간까지 그 차의 DNA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작업은 시장 요구사항을 확정하는 것이다. 상품 기획팀이 주도하는 이 과정은 이 차를 누가, 왜 사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다.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의 신차를 개발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 적으로는 기존 모델을 바탕으로 상품성을 개선하거나 파생 모델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다른 회사들의 모델들에 대한 분석을 기반으로 기존 차량에서 어떤 부분을 유지하고, 어디에 힘을 주어 차별화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단순히 좋은 차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타깃 고객이 원하는 구체적인 스펙과 감성 품질을 정의하여 개발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세운다.
상품의 목표가 정해지면 다음 단계는 연구소가 바빠진다. 기획팀이 던진 니즈를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 검토해 새로운 차에 들어갈 핵심 신기술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한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 레벨을 높이거나 새로운 배터리 패키징을 도입한다고 하면 현재의 기술력으로 양산 일정 내에 구현이 가능한지, 혹은 기술적 리스크는 없는지를 면밀히 따져본다.
시장에 이미 보편화된 기술들은 개발 단가는 저렴하고 쉽게 적용 가능하지만 차별성이 떨어진다. 반면에 완전히 새로운 기술은 시장에 나오면 분명 눈에 띄겠지만 비싸고 일정 내에 안정적으로 적용 가능할지는 위험 요소가 많다. 그래서 이상적인 기획안은 엔지니어링의 현실과 부딪치며 다듬어진다. 장밋빛 미래보다는 현실적인 가능성에 더 중점을 두고 냉정한 의견이 필요하다.
기술적 검토가 끝나면 이를 현실화할 시간표, 즉 양산을 위한 로드맵을 수립하는 것도 Concept Freeze 마일스톤의 핵심 작업이다. 만 개의 부품이 유기적으로 결합되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와 같은 자동차 개발은 각 부문의 일정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어야 가능하다. 부품의 금형 제작 기간, 테스트 기간, 인증 소요 시간 등 각 부문의 개발 리드타임을 역산하여 전체 일정을 짠다. 어느 한 부품이라도 늦어지면 전체 양산 일정이 틀어지기 때문에, Concept Freeze 단계에서 수립하는 마스터 스케줄은 프로젝트의 나침반이자 절대적인 약속이 된다.
이 모든 계획들은 최종적으로는 숫자로 환산하여 수익성 분석에 참고 자료가 된다. 예상되는 개발비, 금형 투자비, 그리고 차량 한 대당 목표 원가를 산출하여 예상 판매 매출 규모를 감안한 손익 계산서를 뽑아본다. 마케팀이 예측한 판매량과 기획팀이 설정한 가격, 그리고 연구소가 산출한 비용을 종합했을 때 회사가 목표한 수익률이 나오는지 확인한다. 수익이 충분하면 프로젝트는 GO 사인은 받아 개발에 착수하지만 모자라면 NO-GO 결정과 함께 수익성 확보를 위해 계획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 아무리 큰 프로젝트도 시작이 반이다. 제대로 검토하고 따져 봐야 헛수고를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