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을 현실로 만드는 약속을 모으는 Contract

엄중한 약속들이 모여 서류 더미를 벗어나 실체를 갖출 준비를 마친다.

by 이정원

Concept Freeze 단계에서 만들고 싶은 자동차의 밑그림을 확정했지만, 자동차 회사 혼자서 차를 만들 수는 없다. 기획된 프로젝트가 공학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재무적으로 실현 가능한지를 함께 차를 만들 협력 업체들과 검증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두 번째 마일스톤의 Contract인 이유는 회사가 내부적으로는 개발 목표에 대해, 외부적으로는 협력업체들과 부품 공급에 대해 구속력 있는 약속을 맺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image.png 부품들이 모여야 차가 된다.


가장 먼저 새로운 모델에 적용될 신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신규 부품 리스트를 정의해야 한다. 기획팀이 던진 상품성 요구사항을 만족시키기 위해 기존 부품을 그대로 쓸지, 개선품을 쓸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금형을 파서 신규 부품을 만들지를 연구소가 분석해서 결정한다. 엔지니어링 담당자들이 새 차에 적용될 부품들의 스펙과 재질, 형상을 구체화하면서 요구 성능을 만족시키기 위한 기술적 해법이 담긴 부품 리스트(BOM, Bill of Materials)가 비로소 이 단계에서 윤곽을 드러낸다.


image.png 충돌 테스트 등급을 높이기 위해 바디에 추가되어야 하는 파트 리스트 - 기준이 달라지면 설계도 업그레이드 되어야 한다.


부품의 정의가 끝나면 바통은 구매팀과 연구소의 협업으로 넘어간다. 연구소가 정의한 스펙을 바탕으로 구매팀은 주요 협력업체들에게 견적 요구서(RFQ, Request for Quotation)를 보내고 협상을 시작한다. 목표로 하는 재료비와 개발비 내에서 해당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치열한 줄다리기가 벌어진다.


목표 단가 내로는 요청한 제품을 만들 수 없다는 협력사의 답변이 돌아오면, 연구소는 스펙을 조정하거나 공법을 바꾸는 등 대안을 찾아야 한다. 품질을 생각하면 그냥 물건 값을 깎을 수는 없다. 가끔은 부족한 개발 예산을 부품 단가에 포함해서 후불제로 협상하기도 한다. 제한된 제원과 목표 원가 사이에서 원하는 성능을 만들어내는 균형점을 찾는 과정은 프로젝트의 손익분기점을 방어하는 가장 실질적인 전투 현상이다..


image.png 협력사와 자동차 회사의 관계는 그야말로 공생 관계다. 이익을 추구하지만 살아남아야 하는 처지는 같다.


부품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검증 및 인증 계획을 확정하는 것이다. 차가 만들어진 후 어떤 테스트를 거쳐 내구성을 증명할지, 그리고 수출할 국가의 법규를 만족시키기 위해 어떤 인증 절차가 필요한지를 계획한다. 수억 원에 달하는 테스트 차량을 몇 대나 만들지, 충돌이나 내구 같은 실차 테스트를 얼마나 할지 정하는 것은 모두 막대한 비용과 직결된다. Contract 단계에서 수립된 검증 계획은 개발 일정의 뼈대가 되는 동시에 예산 산정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image.png Contract에서 집계하는 개발 검증 계획 - 예산과 일정의 중요한 뼈대가 된다.


결국 Contract 단계의 마무리는 공급사를 선정하고 개발에 필요한 예산을 확정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수만 개의 부품 중 단 하나라도 단가 협의가 안 되거나 기술적 타당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 모든 부품에 대해 OK 사인이 나고, 주요 협력업체 선정이 완료되어야 비로소 프로젝트는 본 궤도에 오른다. 회사가 협력사들과 이 품질(Quality), 이 가격(Cost), 이 납기(Delivery)로 개발하겠다고 도장을 찍는 것과 다름없다. 이 엄중한 약속들이 모여야만 자동차는 비로소 서류 더미를 벗어나 실체를 갖출 준비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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