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결정되면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자동차를 만드는 과정에는 돈이 많이 든다. 공장도 새로 짓고 설비도 바꾸고 이런저런 시제품을 만드는 일에 필요한 돈도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이런 투자들은 자동차 회사 내 투자다. 그러나 협력사에서 부품을 만들기 위해서 제작해야 하는 금형은 자동차 회사가 돈을 대지만 부품 제작 이외에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없고 한번 만들고 나면 수만 대 분 이상을 생산하기 전까지는 이익 환수가 불가능하다. 한번 설계 사양이 정해지고 나면 더 이상 수정은 불가능하기에 자동차 회사에서는 금형 제작 승인(TGA, Tooling Go-Ahead)을 별도의 마일스톤으로 정해서 설계의 완성도를 최종 점검하고 양산 가능 여부를 확인한다. 이전 단계인 Contract 마일스톤이 협력사와의 관계를 정립하는 과정이라면, TGA는 실제 양산을 위한 물리적인 투자가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TGA 단계의 가장 핵심 업무는 각 부품들의 도면을 모아 3차원 아키텍처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각 협력사가 제출한 상세 부품 도면을 하나의 가상공간에 모아 전체적인 조립성을 살펴본다. 충분한 간극을 확보하지 않으면 실제 양산 단계에서 조립이 불가능하거나 간섭으로 인해 소음 진동이 발생할 수도 있다. 때문에 마치 디지털 상에서 버추얼 차를 미리 만들어보는 것과 같은 방식을 통해서 애초에 기획한 대로 조립이 잘 되는지도 확인하고 부품 간의 간섭이나 설계 오류를 사전에 잡아낸다.
설계 확정을 위해서는 단지 치수만 따지고 조립성만 보지 않는다. 새로운 파트나 설계 변경이 차량 전체의 성능에 미치는 영향은 없는지, 조립 공정에서 작업자의 작업성이 확보되는지를 확인한다. 전자 부품들도 서로 주고받을 신호를 확인하고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그래서 전자 부품만으로 이루어진 차를 구성한 후에 차속 신호나 온도 센서값 등 실제 주행에서 나오는 신호들을 만들어 입력한 다음 정해진 프로세스 대로 제대로 작동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도 TGA에서 이루어진다.
시뮬레이션이나 가상의 차뿐 아니라 실차에서도 검증 작업은 같이 진행된다. 아직 금형이 완성되기 전이기 때문에 부품사들로부터 임시로 만든 시작 부품을 공급받아 프로토 차량을 제작한다.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부품들은 일반 부품보다 20배 이상 비싸기 때문에 프로토 차량 한 대를 만드는데 보통 수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차량을 통해 여러 환경에서 성능을 테스트를 진행해서 차량과 개별 부품이 의도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는 문제 발견되면 해결책을 포함한 새로운 설계 변경을 반복하게 된다.
실제 기능과 아키텍처 그리고 전기적 신호체계 등 모든 설계 검증이 완료되면 부품들이 양산 일정에 맞춰 차질 없이 준비될 수 있는지를 최종 점검한다. 금형이 제작에 들어가서 금형을 통해 생산하는 Off-Tool 부품을 다음 단계인 Plant Trial 시기까지 공급받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일정을 맞추기 어렵다면 더 일찍 설계 사양을 확정해서 금형 준비에 들어가는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 이 모든 계획이 모두 승인을 받아야 협력사는 실제 쇳물을 붓고 금형을 깎는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이렇게 보면 TGA는 단순히 도면을 넘기는 단계가 아니다. 모든 설계 사양을 확인하고 회사의 자원 투입에 대한 확신을 공유하는 중요한 절차다. 이 시기 이후에 설계 변경은 큰 추가 비용이 필요할 뿐 아니라, 양산 일정 자체를 연기해야 할 수도 있다. TGA에서의 빈틈없는 업무 처리가 추후 나올 자동차의 양산 품질과 원가 경쟁력을 결정짓는 초석이 되기에 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