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원하는 가치를 가장 효율적인 가격으로 구현해 내는 최적화 과정이다
플랫폼이라는 단단한 뼈대를 골랐다면, 이제 그 위에 어떤 근육을 붙이고 어떤 옷을 입힐지 결정할 차례다. 이 업무를 담당하는 작업이 상품성 기획이다. 흔히들 최고의 사양을 모두 때려 넣으면 좋은 차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기능들을 다 가지면서 저렴한 차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동차 기획의 본질은 무조건적인 고사양이 아니라, 정해진 예산과 타격 고객의 니즈 사이에서 최적의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새 차를 기획할 때 고려하는 상품성은 고객이 차를 구매해야 할 이유를 만드는 모든 요소를 포함한다. 전통적인 가치인 운전의 편의성과 폭발적인 가속 성능이 있고 소비자들의 지갑을 생각하는 연비와 유지비, 차량 구매 가격을 포함한 경제성은 기본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안락한 실내 공간과 공기 청정기 같은 감성부터 FSD (Full Self-Driving)와 같은 자율주행 기술, 차량 내에서 즐기는 OTT 서비스 같은 소프트웨어 중심의 신기술도 핵심 지표로 고려된다. 문제는 이 모든 기술이 곧 비용이라는 점이다. 센서를 하나 더 달고 배터리 용량을 키울수록 차 가격과 개발 비용은 천정부지로 오른다.
차를 팔아야 들어간 돈을 회수하고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기획자는 가장 먼저 이 차를 누구에게 팔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20대 사회초년생이 타깃이라면 압도적인 자율주행 성능보다는 감각적인 디자인과 합리적인 가격, 스마트폰 연동성이 더 중요한 상품성이 된다. 반대로 가족을 위한 대형 SUV라면 제로백 성능보다는 2열의 정숙성과 안전 사양, 그리고 장거리 주행 시의 피로도를 줄여주는 운전자 보조 시스템이 최우선 순위가 될 것이다. 타깃 고객의 라이프스타일과 그들의 가처분 소득을 면밀히 분석하여, 그들이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적정 가격의 마지노선을 먼저 설정하는 것도 기획의 일이다.
목표하는 가격이 정해지면 그때부터 피 말리는 사양의 합의 과정이 시작된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 성능을 강화하기 위해 고가의 라이다 센서를 넣기로 했다면, 실내 가죽 시트의 등급을 낮추거나 휠 디자인에서 원가를 절감해야 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을 가질 수 없기에 버릴 것과 강조할 것을 가려내는 안목이 필요하다. 남다른 차를 원하는 고객의 허영심을 채워줄 한 끗이 디자인 포인트는 살리되, 보이지 않는 곳의 공정을 효율화하여 가격에 영향은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결국 상품성 기획이란 단순히 차를 좋게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시장이 원하는 가치를 가장 효율적인 가격으로 구현해 내는 가치 최적화 과정이다. 아무리 혁신적인 신기술을 탑재했더라도 타깃 고객이 감당할 수 없는 가격표가 붙는다면 그 차는 박물관에나 어울리는 유물이 될 뿐이다. 그러다 보니 기획 담당자는 차를 개발하는 모든 부서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한계에 도전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도로 위에서 살아 움직이며 팔리는 차를 만드는 힘은, 엔지니어의 고집과 마케터의 안목, 그리고 재무적 현실이 치열하게 충돌하며 만들어낸 정교한 타협점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