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수명을 다할 때까지 제조사가 소비자에게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약속
자동차는 수만 개의 부품이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 장치이자,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도로 위를 달리는 장치다.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만큼 그냥 차를 만들었다고 해서 곧바로 시장에 내놓을 수는 없다. 새로운 신차는 기획 단계부터 자동차는 국가가 정한 촘촘한 법적 규제를 염두에 둬야 한다. 차가 공동체 안에서 운행될 자격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인증은 차를 팔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가장 먼저 검증하는 것은 차량이 인간에게 유해한 지 여부다. 사고가 낮을 때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반 주행 시에도 안전한 장치인지 확인해야 한다. 시트나 내장재에 쓰인 소재가 발암 물질이나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을 내뿜지 않는지에 대한 유해 물질이 있는지도 확인하고, 전자 장비가 급증한 현대 자동차에서는 전자기파 적합성(EMC) 인증이 필수다. 특히 고전압 배터리와 복잡한 제어 모듈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승객의 건강을 위협하거나 주변 기기에 간섭을 일으키지 않는지를 꼼꼼히 살펴본다. 가속 주행 시 발생하는 배기음과 타이어 마찰 소음도 일정 데시벨(dB)을 넘어서지 않도록 검사한다.
자동차 배기가스로 인한 스모그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이후로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외부 요인을 차단하는 것 또한 인증의 핵심이 되었다. 내연기관차의 배기가스는 대기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특히 질소산화물(NOx)과 탄화수소(HC), 입자상 물질(PM) 배출량은 법이 허용하는 극소량의 범위 내에 있어야만 한다. 해마다 더욱 높아지는 배기가스 규제를 만족하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엔진과 후처리 장치 개발이 필수다. 요즘은 강화된 실도로 주행 배출가스(RDE) 기준을 적용해서 인증받는 실험실 안에서의 눈속임을 허용하지 않는다.
배기가스를 내뿜지 않는 전기차는 대신 배터리 안전성 인증이 필요하다. 낙하, 침수, 연소, 과충전 및 외부 충격 등 가혹한 조건에서도 배터리가 발화하거나 폭발하지 않아야 하며, 사고 시 승객을 보호하기 위한 고전압 차단 시스템의 정상 작동 여부도 엄격히 검증한다. 또한, 저온 환경에서의 주행거리 감소 폭을 측정하는 저온 주행거리 인증은 보조금 산정의 핵심 지표가 된다. 최근에는 배터리의 제조 이력과 탄소 배출량을 추적하는 배터리 여권 제도와 충전 인프라와의 통신 호환성 인증까지 추가되었다.
소비자가 차량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는 카탈로그상의 수치들 역시 정부의 공인된 인증을 거쳐야 한다. 연비와 이산화탄소 배출량, 엔진의 최대 출력과 토크 등은 제조사가 임의로 적어 넣을 수 없다. 전기차의 경우 상온과 저온에서의 1회 충전 주행거리는 보조금 액수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엄격한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런 수치들은 실제 주행 환경을 모사한 표준화된 모드에서 측정되며, 국가 기관의 승인을 얻어야만 비로소 공식 제원표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하드웨어를 넘어 자동차의 중심이 소프트웨어로 넘어가면서 사이버 보안 인증이라는 새로운 영역도 등장했다. 외부 네트워크와 상시 연결된 커넥티드 카는 해킹의 위협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 보니 시스템이 외부 공격으로 장악될 경우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요즘은 국제 표준으로 차량 설계부터 폐기까지 전 생애 주기에 걸친 보안 관리 체계를 입증해야 차를 판매할 수 있다.
이러한 인증 체계는 국가마다 운영 방식이 다르다. 유럽과 일본 등은 형식승인(Type Approval) 제도를 채택해서 정부가 지정한 시험 기관에서 모든 항목을 사전에 검사하고 승인을 받아야만 판매를 시작할 수 있는 사전 규제 방식을 따른다. 반면 우리나라는 미국과 같이 자기 인증(Self-Certification) 제도를 운용한다. 제조사가 국가 기준에 적합함을 스스로 확인하고 출시하는 방식이다. 사업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대신 기술적 책임을 지게 하는 방식은 언뜻 관대해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제조사에게는 부담이 더 크다.
왜냐하면 자율성을 부여하는 대신 사후 관리가 엄격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차량 출시 이후에도 시장에서 무작위로 일반 차량을 구매해 샘플링 검사를 실시하고 만약 실제 성능이나 안전 기준이 인증 당시 제출했던 데이터에 미달할 경우, 정부는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하고 강제적인 리콜 명령을 내린다. 회사 입장에서는 시험 차량을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규제 기준보다 더 여유 있게 개발할 수밖에 없다.
시대가 변하고 차가 변하면 인증하는 항목도 진화한다. 신차를 기획할 때는 예상 출시 시점부터 판매를 계획하는 지역의 법규를 검토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들을 도입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증 제도는 단순히 자동차 출시를 위해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아니라, 자동차가 수명을 다할 때까지 제조사가 소비자에게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약속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