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경제만 챙기면 지구는 누가 지키나요?

경제 논리도 살리면서 실질적으로 지구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찾자.

by 이정원

파리기후협약 이후 각국은 수송 부문 배출을 “차 한 대”가 아니라 “시장 전체” 단위로 줄이기 위해 평균 연비, 평균 CO2 규제를 강화해 왔다. 제조사는 한 해 동안 판매한 승용차와 경량 상용차의 평균 배출이 목표치 이하가 되도록 맞춰야 하고, 초과하면 벌금이나 크레디트 구매가 따른다. 목표치는 몇 년 주기로 더 낮아지기 때문에 기업은 모델 구성과 동력계 전략을 미리 바꿔야 한다.


image.png 역사를 역행하는 것을 자랑하는 1등 국가의 현실이 안타깝다.


그런데 최근에는 전기차 수요 둔화, 금리와 원가 부담, 중국발 가격 경쟁, 고용과 공급망 충격을 이유로 규제 속도 조절 요구가 커지고 있다. EU는 2025년 목표를 한 해 단위로만 보지 않고 3년 평균으로 평가해서 어느 해에 초과하더라도 다른 해의 성과로 일부 만회할 길을 열었다. 미국에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 기준이 지나치게 빠르다고 비판하며 달성 가능한 수준으로 연비 규제를 되돌리겠다고 선언했다.


내연기관을 사실상 퇴출하는 흐름에도 여러 나라가 난색을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은 2035년 이후에도 하이브리드나 다른 방식의 저탄소 차량을 일정 부분 허용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전기차만을 정답으로 두기보다는 저탄소 연료를 쓰는 고효율 내연기관 같은 선택지도 함께 인정하자고 주장해 왔다. 이런 요구가 겹치며 2035년 규정을 더 유연하게 바꾸자는 논의가 커졌고, EU가 재검토를 준비한다고 하더니 결국 데드라인을 뒤로 미뤘다. 현실에 타협한 결정이지만 한편으로는 갑갑하기도 하다.


image.png 유럽도 모두 유턴 중이다. - 매일 경제 기사 참조


물론 전기차 비중을 늘린다고 자동으로 친환경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석탄과 가스 비중이 높으면 배출은 배기관에서 발전소로 이동할 뿐이다. 또한 배터리 생산 과정에서의 배출까지 포함하면 감축 폭은 나라별로 달라진다. 전기차는 배터리 때문에 차가 무거워지는 경우가 많아서 같은 이동을 한다고 하면 근본적으로는 에너지를 더 필요로 한다.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이 친환경적이지 않으면 오히려 환경에는 부정적일 수도 있다.


도로 위를 다니는 모든 차를 전기차로 모두 대체하기에는 인프라와 전력 설비의 한계도 분명하다. 아파트와 주차장에 충전기를 설치하고 도심과 고속도로에 급속충전기를 확충하고 이 모든 충전 설비에 전기를 안정적으로 보내기 위한 전력망 보강이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로 충전기 설치는 부지 확보와 인허가 문제에 전력 계통 연결을 해결하느라 확장 속도도 늦어지고 지역적인 편차도 크다. 이런 병목이 풀리지 않으면 보급 속도는 쉽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image.png 전기차 보급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 IEA 자료 참조


결국 기후위기 대응은 전기차 비율 목표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적용 가능한 규제 패키지가 필요하다. 평균 CO2 규제는 유지하되 기업이 예측할 수 있게 단계 강화 속도를 조정하고, 성과를 서로 맞바꾸는 제도를 투명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 실질적으로 연비를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는 하이브리드의 확산을 장려하고 노후 고배출차량의 교체와 묶으면 당장 도로 위에서의 CO2 배출을 줄일 수 있다. 최근 판매량이 높아지고 있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실제로 전기로 달리는 비율이 높아지도록 충전 환경을 함께 갖추게 유도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차량 자체의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 SUV와 고출력 경쟁으로 차가 커지고 무거워지면 어떤 동력계든 이산화탄소 배출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소형차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주고 무거운 차에는 탄소세를 매기는 것과 같이 차 무게와 크기 증가를 억제하는 방향의 세제가 필요하다. 차량 경량화와 공기저항 개선 같은 기본 성능을 끌어올리도록 기준을 정해 이를 달성하면 세제 혜택을 주는 것과 같은 제도도 고려해 봄 직하다.


image.png 자동차를 만들고 연료를 캐고 길 위에서 달리는 모든 과정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산업 전반에서는 연료의 저탄소화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휘발유와 디젤, 전기, 수소를 모두 놓고 연료를 만드는 과정까지 포함한 평균 배출을 줄이는 제도를 도입하면 차량만이 아니라 연료 공급자도 이산화탄소 감축의 책임을 진다. 여기에 공장 전력의 재생에너지 전환, 저탄소 소재 사용, 배터리 재활용 확대로 제조 과정 배출까지 줄이면 주행 중 배출과 제조 배출을 함께 낮추는 총량 감축이 가능해진다.


image.png 원자재부터 수급 방법을 바꿔야 자동차 생산에서 나오는 탄소를 줄일 수 있다.- 노벨리스 홈페이지 참조


다들 자국 기업들의 생존과 경제 위기 극복에만 신경 쓰고 있는 사이에 지구는 더 뜨거워지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무거워진 짐은 인류 모두가 함께 짊어져야 한다. 기존의 규제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면 굳이 과거의 기준을 고수할 필요는 없다. 영역을 나누고 실현 가능성을 검토해서 경제 논리도 살리면서 실질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전 지구적인 과제를 이끌 리더십이 실종되어 버린 신 야만의 시대에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 이대로 라면 결국 우리 모두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자동차 산업 동향 전문 플랫폼 아우토바인에 기고한 글을 조금 늦게 공유합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사이에 기후 위기는 우리 곁에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전기차 보급에만 의존하는 정책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면 실현 가능한 대안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도 더 좋은 차를 원하는 소비자도 만족시키면서도 대의를 지킬 수 있는 해결책 마련에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왔습니다.


https://autowein.com/2817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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