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을 핵심으로 지키느냐에 따라 미래의 위치는 달라진다.
올해도 새해의 시작은 CES가 열었다. 이제는 자동차 회사들이 CES를 누비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대장 격인 NVIDIA는 알파마요라는 새로운 자율주행 모델을 공개하기도 하고, Sony와 Honda가 손을 잡고 양산하기로 한 AFEELA 1 같은 신차도 눈에 띄지만, 자동차 회사들이 차를 앞세우면서 새로운 기능을 설명하는 모습보다는 완성차 브랜드 주변에 다양한 로고들이 더 눈에 띈다. 현대차도 Boston Dynamics를 앞세워 아틀라스라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선보이면서 Tesla와의 정면 승부를 선언했다.
이번에 발표한 아틀라스는 2028년부터 미국 조지아주 메타플랜트에 우선 투입될 예정이다. 부품 시퀀싱 등 안전성과 품질 향상 효과가 검증된 공정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생산 라인에 적용을 확대해 나간다고 한다. 미국 현지에 만들어질 로봇 공장에 대한 부품 수급은 현대모비스가 주도적으로 맡기로 했다. Boston Dynamics를 인수한 지 5년 만에 현대차는 로봇 제작 기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현대차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지만 자동차 산업은 더 이상 단독 주자가 달릴 수 없는 레이스가 되었다. 자동차 업체 곁에 반도체, 클라우드, AI, 로봇 기업이 나란히 서서 여러 영역에서 협업을 하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Bosch는 Kodiak AI와 손을 잡았고, Microsoft, NVIDIA와 스마트 콕핏 개발에 착수했다. Toyota와 ZF는 Qualcomm을 매개로 Google과 손을 잡고 차량용 OS와 AI가 운영된 시스템의 표준을 함께 개발하기로 했다. 인공지능의 확산은 기술의 경계를 허물었고, 그 결과 연합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벽이 낮아졌음은 기존 영역에서의 경쟁자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번 CES에서 드러난 연합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자동차 회사와 부품사는 더 이상 우리가 중심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칩, 운영체제, 클라우드, 데이터 플랫폼과 손을 잡는다. 차량 내 AI 콕핏, 자율주행, OTA 업데이트, 새로운 사용자 경험은 이제 단일 기업이 혼자 힘으로는 완성할 수 없는 구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AI 모델은 클라우드에서 학습되고, 차량에서는 에지 컴퓨팅으로 실행되며, 이 과정에서 반도체 수급과 소프트웨어 개발 그리고 네트워크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연합은 이런 새로운 복잡성을 감당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다.
그러나 연합이 늘어난다는 것은 곧 경쟁의 범위가 넓어진다는 뜻이다. 예전의 경쟁이 자동차 vs 자동차의 싸움이었다면 이제는 자동차 회사와 플랫폼 그리고 이를 구현하는데 필요한 반도체 칩까지 이어진 생태계 간의 싸움으로 전선이 확장되었다. 이런 판에서는 더 이상 자동차 회사가 중심이 아니다. AI와 소프트웨어의 비중이 커질수록 가치의 중심은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차량은 점점 AI 서비스를 실행하는 단말기에 가까워진다. 자연스럽게 수익과 데이터도 플랫폼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자율주행에서도 양상은 비슷해지고 있다. 완벽한 자율주행 기술을 자랑하는 전시는 힘을 잃었다. 대신 제한된 조건에서라도 실제로 굴러가고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강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부품사와 자율주행 스타트업, 운영 플랫폼 간의 연합은 필수다. 기술 격차가 줄어들수록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회사 간 차별화 포인트는 운영비, 보험, 사고 대응, 규제 대응 능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기술은 공유되지만, 책임과 비용은 각자가 짊어지는 연합의 형태가 곳곳에서 보인다. 안전과 실내 공간에서도 경계는 허물어졌다. 자율주행을 전제로 한 인테리어, 접이식 조향 장치 등은 자동차 부품이라는 기존 카테고리를 뛰어넘고 있다.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전면에 내세우며 이제 안전 부품들도 기계가 아니라 UX의 일부가 되었고, 이 영역에는 로봇, 센서, AI 기업까지 경쟁자로 뛰어들고 있다.
결국 CES 2026이 보여준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이중적이다. 연합은 기술 개발 속도를 높이고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춘다. 기술로만 존재했던 기능들을 실제 자동차와 이동 서비스로 실현시켜 수익을 창출하는 새로운 판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의 범위가 무한히 확장되고 있다. 이제 자동차 회사의 경쟁자는 다른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전자 제품을 잘 만들던 Foxconn 같은 위탁생산업체, 기존에 로봇을 개발하던 기술 기업들, AI를 잘 다루는 IT 기업, 데이터를 장악한 플랫폼, 사용자 경험에 강한 콘텐츠 기업까지 모두가 자동차라는 매개체를 두고 만들어지는 수익을 나눠 가지는 잠재적 경쟁자다.
대연합의 시대에서 본질은 누구와 연합할 것인가가 아니라 여러 연합 속에서 무엇을 끝까지 나만의 것으로 붙잡을 것인가다. 그것이 데이터 주도권일 수도 있고 소프트웨어 아키텍처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제조업의 끈을 잡고 생산품을 만들어 최종 사용자와의 접점을 이어나가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것을 핵심으로 지키느냐에 따라 미래의 위치는 달라진다. 점점 더 자동차 산업과 다른 산업의 경계가 모호해져 가는 CES 2026을 보면서 연합에 올라타지 못하면 탈락하고, 연합에만 의존하면 주도권을 잃는 딜레마 앞에 서 있는 자동차 산업의 고민이 느껴진다. 지금 우리는 협력과 경쟁이 동시에 극대화되는 연합 무한경쟁의 초입에 서 있다.
자동차 산업동향 전문 플랫폼 아우토바인에 기고한 글을 조금 늦게 기고합니다. 판이 넓어지는 건 시장이 커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경쟁자도 그만큼 늘어난다는 이야기겠지요. 인공지능으로 경계가 모호해져 가는 대 변화의 시대에 우리는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고민이 깊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