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능과 연비라는 양극단의 사이에서 최적의 합의점을 찾아내는 일이다.
자동차 신차 기획에서 상품성은 고객이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결정적인 이유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로 꼽히는 요소가 자동차의 근본적인 본능인 달리기 성능이다. 단순히 빠르다는 것을 넘어, 얼마나 효율적이고 세련되게 힘을 쓰느냐가 그 차량의 등급과 가치를 결정짓는다.
성능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지표는 엔진의 출력을 대변하는 파워와 힘을 나타내는 토크다. 토크가 큰 엔진은 추월할 때 치고 나가는 가속력이 좋고, 출력이 큰 차는 최대로 달릴 수 있는 속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배기량이 큰 엔진일수록 한 번에 폭발시키는 에너지가 커져 여유로운 주행이 가능해지다 보니 고급차일수록 배기량이 크고 기통수가 늘어난다. 반면 전기차의 모터는 전원이 공급되는 즉시 최대 토크를 뿜어내기 때문에 저속에서도 강력한 가속감을 제공하는 장점이 있다.
차를 비교 분석하는 방송들을 보면 흔히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인 제로백에 열광하지만, 실제 상품성 평가에서 더 중요하게 다루는 지표는 추월 가속 능력이다. 시속 60에서 80km까지 혹은 80에서 120km 구간에서 앞차를 얼마나 신속하고 안전하게 추월할 수 있는지에 따라 운전자는 차가 힘이 좋고 잘 달린다는 만족감이 달라진다. 고속도로 합류 지점이나 국도에서 운전자가 의도한 순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가속 성능은 운전의 재미를 넘어 안전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평가 항목이다.
하지만 좀 더 고차원적인 상품성은 주행의 결에서 판가름 난다.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 차가 울컥거리지 않고 얼마나 선형적으로 속도를 올리는지, 변속기는 적절한 시점에 충격 없이 매끄럽게 단수를 오르내리는지가 관건이다. 특히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대세가 된 오늘날에는 엔진과 모터 사이에서 바통 터치가 얼마나 자연스러운지가 기술력의 척도가 된다. 이질감 없는 동력원 전환이 이루어져야 운전자에게 고급스러운 주행 질감을 선사하 할 수 있다.
성능만 보면 엔진이 클수록 좋지만 대신에 연비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런 물리적 한계 때문에 신차 기획자에게 합리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강력한 퍼포먼스는 운전자를 즐겁게 하지만, 낮은 연비는 차량 유지비 상승으로 이어져 경제성을 중시하는 고객들에게 외면받을 수 있다. 결국 상품성 개발의 본질은 성능과 연비라는 양극단의 사이에서 최적의 합의점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 균형점이 어디에 찍히느냐에 따라 해당 차량의 성격이 스포츠 세단이 될지, 효율적인 패밀리카가 될지가 결정된다.
결국 주행 상품성은 차량의 급과 가격에 따라 철저하게 계산된 타깃을 지향한다. 엔트리급 차량에서는 성능보다 압도적인 연비가 최고의 상품성이 될 수 있고, 플래그십 모델에서는 연비를 다소 희생하더라도 부드럽고 강력한 힘의 여유가 우선된다. 고객이 기대하는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주행 성능의 황금비율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잘 팔리는 자동차를 만드는 성능 기획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