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사려는 사람을 알아야 어떤 차를 만들지가 보인다.

시대가 변하면 사람들의 삶이 변하고, 그 삶을 담아내는 자동차도 변한다.

by 이정원

자동차 신차 기획의 핵심은 누가 이 차를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정교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아무리 뛰어난 성능과 아름다운 디자인을 갖췄더라도, 타깃 고객의 라이프스타일과 맞지 않으면 그 차는 시장에서 길을 잃고 만다. 나라마다 세대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다르고 자동차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인프라와 경제력이 차이가 난다. 이런 차이 때문에 소비자가 자동차에 투영하는 기대치도 극명하게 갈린다.


주차장을 인증해야 차를 사는 주택 위주의 일본에서는 경차 수요가 높다.


전 세계 시장을 들여다보면 지역별 타기팅의 차이는 확연하다. 가구당 차량 보유 대수가 많은 미국에서는 일상용 외에 주말 레저만을 겨냥한 서드카 시장이 견고하게 형성되어 있다. 반면, 좁은 골목과 엄격한 차고지 증명제가 존재하는 일본에서는 실용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경차가 사회 초년생부터 노년층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생존형 모델이 된다. 강력한 세제 혜택과 촘촘한 충전망을 갖춘 노르웨이에서 전기차가 신차의 90%를 차지하는 건 전기차가 더 이상 혁신 기술이 아닌 가장 실용적인 표준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큰 차를 선호하는 중국을 겨냥한 폭스바겐의 ID.9


자동차를 대하는 태도도 나라마다 차이가 난다. GDP가 급성장 중인 국가에서는 자동차가 여전히 신분을 대변하는 상징물로 여겨진다. 뒷좌석 공간을 비정상적으로 늘린 롱휠베이스 모델이 중국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다. 반면 실용성을 중시하는 유럽의 도심지에서는 주차가 쉽고 연비가 좋은 해치백이나 소형 SUV가 주력 모델이다. 전기차 인프라의 보급률이나 충전 서비스의 가격 혜택 역시 특정 국가에서 전기차가 합리적인 선택이 될지, 불편한 도전이 될지를 결정짓는 잣대가 된다.


최근에는 성별과 연령을 넘어선 새로운 구매 결정권자들의 등장이 기획자들을 고민하게 만든다. 패밀리카 시장에서 뒷좌석의 주인인 자녀들의 의견이 아버지가 선호하는 성능 수치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가계 경제의 주도권을 쥔 여성 고객을 타깃으로 하면 큰 실내 거울이나 자동 주차 기능 같은 편의 사양의 유무가 최종 구매를 결정하기도 한다. 빠른 노령화 추세 속에서 왕성한 활동력과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경제력을 가진 액티브 시니어는 고급스러운 사양과 직관적인 조작이 가능한 UX를 요구하며 새로운 프리미엄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어르신들의 자동차 취향도 다양해졌다.


특히 1인 가구의 가파른 증가는 자동차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꾼다. 이들에게 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혼자만의 휴식을 즐기는 제2의 개인 공간이다. 차급은 작더라도 시트 평탄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차량 전력을 외부로 끌어 쓰는 V2L 기능을 통해 차박이나 캠핑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소형차 기획의 핵심 상품성이 되었다. 혼자만의 공간적 자유를 중시하는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자동차 실내 구성의 문법을 완전히 새롭게 쓰고 있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면 차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이런 새로운 요구들의 등장은 기획자의 고민을 더욱 키울 수밖에 없다. 특정 타겟층에 너무 특화된 기능을 넣으면 잠재적 구매층이 좁아질 위험이 있고, 반대로 너무 많은 세대를 아우르려다 보면 제품의 지향점이 흐릿해진다. 대중성을 확보하면서도 핵심 타깃의 심장을 찌를 수 있는 날카로운 한 끗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신차 기획의 본질이자 진정한 실력이다. 시대가 변하면 사람들의 삶이 변하고, 삶이 변하면 그 삶을 담아내는 자동차도 변해야 한다. 결국 누구를 위한 차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멈추지 않는 제조사만이 급변하는 시장의 흐름 속에서 고객의 선택을 받아 생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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