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비싸면 외면받고, 너무 싸면 미래가 불투명해진다.
시장을 분석하고 새로운 니즈를 파악하고 타깃 고객을 정해 필요한 새로운 기능들과 적절한 출시 시점을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일정을 관리하는 기획의 최종 목표는 잘 팔리면서 수익이 나는 차를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모여 만들어진 자동차의 가치는 결국 가격에서 드러난다. 신차의 가격은 단순히 제품에 붙이는 숫자가 아니라, 상품의 가치와 시장의 수용성을 잇는 가교다. 너무 비싸면 소비자에게 외면받고, 너무 싸면 기업의 수익성이 훼손되어 미래가 불투명해진다. 기획자는 이 팽팽한 줄타기 속에서 브랜드의 자존심과 회사의 생존을 동시에 담보할 수 있는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내야 한다.
손해 보면서 팔 수는 없기에 가격 설정의 기초는 치밀한 원가 추산에서 시작된다.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부품비와 재료비는 물론, 대규모 생산 설비 운영에 따른 생산비, 수천억 원에 달하는 연구개발비, 그리고 고객에게 차를 알리는 마케팅 비용까지 모든 요소를 정밀하게 합산해야 한다. 그래서 기획 초기에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목표 가격을 먼저 설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개발 규모와 사양을 결정하는 관리가 중요하다. 가격이 개발 전체의 방향타 역할을 하는 셈이다.
고객이 이 정도 가격이면 살만하다고 느껴지게 하려면 고객이 지불하는 금액 이상의 가치를 체감하게 만들어야 한다. 시장에 이미 존재하는 경쟁차들의 가격대를 참고하고 잠재 고객의 소득 수준, 해당 세그먼트에서 기대되는 편의 사양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소비자가 이 정도 성능과 가치라면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느끼는 지점을 포착해야 한다. 고객의 기대치를 상회하는 상품성을 가격이라는 틀 안에 조화롭게 담아낼 필요가 있다.
새로운 차의 경쟁자는 외부에만 있지 않는다. 아반떼 사려다 이런저런 기능을 더하다 보면 그럴 빠에 소나타 사고 그랜저 산다는 '그럴빠에' 병에 걸리면 경차에서 대형차까지 금방 간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같은 회사 내에서도 작은 세그먼트 차의 고급 사양의 가격이 상위 버전의 엔트리 트림 가격과 겹치게 설계하면 고객의 상향 구매를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
동시에 합리적 소비자들은 차량 구매가뿐만 아니라 연료비, 정비비 등 차량 운영에 필요한 모든 비용들을 함께 고려하기도 하다. 그래서 같은 차종에서도 한 가지 파워트레인에 선택이 쏠리는 것을 막으려면 평균적인 차량 소유기간 예를 들면 5년 10만 km 운행에 대해서 총 소유비용 관점에서 찻값을 맞출 필요가 있다. 주행 거리가 많은 고객에게는 초기 비용이 높더라도 하이브리드나 전기차를 선택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한 점을 가격에 반영하고, 유지비가 많이 드는 차종은 찻값을 조금 저렴하게 내놓는 조정도 필요하다.
어쨌든 많이 팔리려면 싸게 파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떤 소비재보다도 비싼 편에 속하는 자동차는 사는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반영하기도 한다. 무분별한 가격 인하는 브랜드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기존 고객의 신뢰를 꺾으며 매출도 오히려 떨어지는 역효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시장에서 강력한 지배력을 가진 프리미엄 브랜드는 경쟁사보다 높은 가격을 책정해도 가치를 인정받으며 팔려 나간다. 프리미엄을 지키는 것은 곧 제품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며, 이는 그 제품을 선택한 고객의 자부심과 직결된다.
이 모든 비용과 가격의 갭은 영업이익률이라는 성적표로 돌아온다. 신차는 일반적으로 4~7% 정도의 영업 이익률을 고려해서 찻값을 정한다. 4000만 원짜리 차를 팔면 최소한 200만 원은 남겨야 다음 세대 모델을 개발하고 기술 격차를 유지할 수 있는 선순환의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상황이 안 좋아져서 지나친 판촉과 할인으로 이익률이 3% 이하로 추락하면 이는 기업의 존립을 위해 구조조정을 고민해야 하는 위험 신호다. 이렇게 신차 가격은 단순한 판매가가 아니라, 제품의 가치를 수호하고 기업의 내일을 담보하는 최후의 합의선이자 생존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