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원하는 은퇴 후의 삶이 아니라 지금을 살고 있는 부모님 이야기입니다
부모님과 함께 한 공부방도 어느새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그냥 새로운 것을 배우고 글로 남기는 작업을 하는 것 그 자체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그런데 매주 월요일마다 어떤 강의를 보내 드릴까, 매달 어떤 책을 권해 드릴까 하고 고민하다 보니 이게 그냥 단순한 일이 아니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부모님이니까 두 분께 권하는 강의에는 제가 두 분에게 바라는 삶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삶이 좋은 삶이냐는 판단을 제 기준에서 하게 되니 제 가치관을 투영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지금의 내가 아닌 분들께 권하는 것이다 보니.. 결국 “제가 원하는 은퇴 이후의 삶”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생각이 드니까 더 선택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한창 고민하고 있는데 아내가 곁에서 그러더군요.
부모님은 부모님이고 정원씨는 정원씨야. 그러니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살기를 바란다는 거창한 주제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당신이 좋아하는 걸 권해 봐요.
그 말을 듣고, 지금 부모님께 제가 바라는 점을 좀 단순하게 떠 올려 보았습니다. 저는 조금은 지루할 것 같은 두 분의 삶에 재미가 있으셨으면 좋겠고, 그 과정에서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두 단어가 겹치자 딱 이분의 강의가 떠오르더군요. 바로 MBC 노조 위원장을 지낸 김민식 PD의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라는 강의였습니다.
큰 좌절을 딛고 영어 공부 같이 본인이 즐거운 것을 반복하면서 행복을 되찾았던 강사처럼 어머니도 본인의 작은 행복을 글로 적어 주셨습니다.
2020년 12월 8일 화요일 변필효님.
쌀쌀해진 날씨에 따뜻한 차 한잔이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세 번째로 사랑하는 아들의 숙제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쓸지 망설였지만 솔직한 생각을 표현합니다. 이렇게 서로 작은 소통이지만, 마음을 전하는 일도 행복입니다.
가끔씩 산에 올라갈 때는 정상에 오르겠다는 생각으로 여유도 없이 그냥 쌕쌕거리며 올라갑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내려올 때 등위의 따뜻한 햇살이 편안했습니다. 문득 고은 시인의 “그 꽃”이라는 시가 생각났습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그 순간이 참 행복하였습니다.
모든 일상들이 다 그런 것 같습니다. 보내고 나면 내 마음이 보입니다. 작은 것에서 서로 이해와 배려, 마음이 만드는 작은 행복을 가져 봅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아쉬운 마음을 더 직접적으로 표현해 주셨습니다.
2020년 12월 16일 수요일 이선숙님
동지섣달 찬 바람이 북쪽 창문을 세차게 노크하는 혹한이 계속되는 요즘 소소한 재미가 생겨서 새롭습니다. 다양한 주제에 관하여 아내와 같이 생각해 보는 기회가 주어져서 마음에 부담도 되지만 싫지만은 않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옛말 같이 우리의 일상의 행복도 일상생활에 무의식 중에 조금씩 소리 없이 쌓이는 눈송이처럼 큰 힘이 됩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교감과 배려가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우리 가족은 아들만 둘이고 모두 멀리서 생활하기 때문에 부산에서 장가가서 가까이에서 자주 보며 스킨십을 하는 것을 부러워할 때도 가끔 있지만, 멀리서 전해 오는 교감 신호 (전자기기)에도 더 많은 엔도르핀이 솟아납니다. 우리 가족 만세입니다. 파이팅.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한 마음과 더 자주 연락드려야겠다는 생각이 교차합니다. 그래도 이 공부방을 계기로 더 속에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글쓰기는 참 그런 매력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