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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지방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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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예지 Jul 26. 2024

흥부아줌마와 은혜 갚은 제비

제비 부부가 집을 짓기 시작했다. 우리 부모님이 40년간 살고 있는 시골집 처마 아래에.

출입구 방충망에 짓기에 신문지를 슬쩍 발라뒀더니 처마 밑 가스배관으로 방향을 틀었단다. 머리 좋은 녀석들. 거기가 나름 그 구역 아랫목인 건 또 어떻게 알고.



5월 21일, 제비가 집을 짓기 시작했다



엄마는 똥을 찍찍 싼다고 툴툴대면서도 제비들 새끼를 걱정했다. 뒷집 할매네 제비들은 작년에 새끼를 실패했다나?

두 마리가 부지런히 집을 짓는 동안, 엄마는 제비들이 불안할까 봐 마당에 나가고 싶은 것도 참았. 그러고는 동생과 내게 제비 가족 내 집 마련 과정을 중계했다. 마치 앞집에 이사 온 신혼부부 염탐하듯.


"두 마리가 자로 잰 듯이 반듯하게 돌아가면서 짓는다."

"밤에도 집 짓는 옆에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아가 자는지 있다."

"집은 다 지은 것 같은디 오늘 저녁엔 제비가 한 마리도 안온데이."

"우리 집 제비 새끼 한 마리만 부화되가 한 마리만 봤데이."




한 마리였던 제비 새끼는 다음날 두 마리가 되더니, 일주일이 지나자 네 마리가 되었다. 네 마리가 모인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가져갈 때마다 제부부가 파닥거리며 엄마에게 달려든다고 했다. 자기 새끼들을 해코지할까 봐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겁이 나는 건 엄마 쪽도 마찬가지였다. 눈이라도 쪼일까 봐 유리문 너머로 조심스레 찍어 보낸 사진 속에는 갓 태어난 제비들이 입을 쫙쫙 벌리고 있었다.



6월 25일, 제비 새끼는 네 마리가 되었다



나는 확신이 들었다. 비 새끼들이 잘 자라겠다는.

엄마는 뭐든 키우는 데는 타고난 재주를 가졌다. 다 죽어가던 식물도 엄마 손을 타면 금세 보송보송해졌고, 학교 앞에서 산 500원짜리 병아리도 엄마의 마당에서 기어이 닭이 되었다.

동생과 나만 봐도 크게 아픈 곳 없이 적어도 각자 앞가림은 하고 있으니 이만하면 잘 지, 우리 엄마가 잘 키운 거지.

이렇듯 정이 붙으면 열과 성을 다해 제대로 키워내고 마는 우리 엄마 마음에 이번에는 제비가 들어앉은 거다.


엄마에게 마음 줄 상대가 생긴 건 반가운 일이지만, 슬 걱정도 되었다.

음을 많이 주는 만큼 떠날 때의 서운함도 커질 거였다.

딸들도 제 살 길 찾아 떠나 한 달에 한번 얼굴 비출까 말까인데 제비야 오죽할까. 때가 되면 뒤도 안 보고 가버릴 한철 짐승인데.






그러나 제비는 달랐다.

6월 말, 엄마가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지난 몇 년간 엄마는 집과 관련된 법률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나 역시 이름난 법률사무소를 찾아다니 조문과 판례를 뒤지며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했으나 마침내는  손을 들고 만 문제였다.

이제는 엄마도 저편으로 미뤄두고 거의 포기했던 문제였는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해결이 되었다는 거다.


"제비 집 짓게 두길 잘했제."


엄마는 뜻밖의 경사가 제비 덕분이라고 확신하는 눈치다. 풉, 웃고 말았지만 돌아서서 생각해 보니 그럼직하다. 거주하는 집에 얽힌 복잡한 문제가 없는 이 제비들의 주거 안정성을 위해서도 아무렴 나았던 걸까?

그나저나 우리 아파트에 둥지 틀어줄 제비는 어디 없나?




신세를 졌다고 생각해선지 엄마의 제비 사랑은 더 극진해졌다.

6월 말, 진드기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 진드기에 물려 죽은 사람 얘기가 뉴스에 나오는데도 엄마는 잔디 깔린 마당에 약을 치지 않았다. 독한 냄새가 제비들한테 해로울 것 같다면서.


우리 엄마의 관심과 자기네 부모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먹고 쑥쑥 자란 제비 새끼들은 한 달이 채 안 되어 둥지를 떠났다. 낳자 곧 이별이라니. 제비는 생각보다 독립이 빠른 새였다.

둥지에 남은 제비 부부는 새 알을 낳아 또 품고 있단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오늘도 제비 부부가 놀랄까 봐 마당에 나가고 싶은 걸 참고 있다.



"마당에 곰돌이를 세탁해가 널어났더니 제비가 안들락거려가 마루에 가져다났더니 제비들 온다 웃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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