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지난 한 주간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책을 읽었어. 미혼 때는 주말 한나절 서점에 들러 책 한 권을 뚝딱 읽곤 했는데 널 낳고는 책 한 권을 읽으려면 꼬박 한주가 걸린단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책을 펼쳐들 수 있던 그때보다 네가 잠든 후 잠시 틈을 내어 침대 위에서 책을 읽는 지금이 엄마는 훨씬 더 행복해. 네가 곁에 있기 때문이지.
이 책은 중고등학교 때 읽으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서 오랜만에 감상에 젖어볼까 하고 펼쳐 들었는데,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 어느 대목에서 눈물을 흘렸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더구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은 '한스'라는 아이야. 한스는 아버지와 함께 사는데, 아주 똑똑해서 온 마을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아.
한스는 명문 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주 정부 시험에 도전해. 시험을 위해 매일 오후 4시까지 수업을 듣고 뒤이어 교장선생님께 그리스어를 따로 배우지. 오후 6시부터는 마을 목사님께 라틴어와 종교학을 배우고 일주일에 두 번은 저녁 식사 후 수학선생님의 지도를 받아. 매일 아침에는 종교적인 신선함을 가슴 깊이 채우는 종교의식을 가졌는데, 그 시간마저도 그리스어와 라틴어 연습 문제를 몰래 보며 내내 공부에만 몰두했단다. 마음속으로는 불안하고 초조해하면서 말이야.
노력 끝에 한스는 마침내 주 정부 시험에서 전체 2등의 성적을 거두고 명문 신학교에 합격해. 하지만 합격만 하면 실컷 낚시를 하며 여름방학을 즐기려던 한스의 꿈은 마을 목사님과 선생님들에 의해 좌절되지. 신학교에서 다른 학생들보다 앞서가려면 미리 그리스어와 수학을 공부해둬야 한다는 거야.
한스는 결국 입학 직전까지도 공부에만 매진하다 휴식을 가지지 못한 채 기숙사에 들어가. 그곳에서 재능은 뛰어나지만 신학교의 엄격한 규율과 제도를 견디지 못하는 친구 '하일러'를 만나지. 한스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하일러의 열정과 자유를 동경하다가 점차 변해가. 성적은 뒤처지고 건강도 나빠지지.
결국 한스는 학교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와서 직공이 되는데 그 삶에서 나름의 즐거움을 찾지만 소설은 비극적인 결말로 끝이 난단다. 기회가 되면 한번 읽어보렴.
한스가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엄마는 마음이 아팠단다. 학창 시절 이 책을 읽고 눈물 흘린 건 주인공이 그 시절의 엄마와 닮아서는 아니었을까 싶었어.
엄마도 시험을 앞두고서는 늘 초조하고 불안했거든. 엄마가 자란 도시는 비평준화 지역이라 매 시험이 곧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이벤트처럼 여겨졌어. 매일 밤 11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자정이 가까워서야 잠들어서는 다음날이면 '0교시'라는 이름이 붙은 비정규 수업을 듣기 위해 또 새벽부터 나와야 했지. 졸음을 참으려고 하루에도 몇 번씩 허벅지를 비틀었고, 그러다가 잠들어버리기라도 하면 그 사이 선생님이 시험 예상문제를 알려주셨을까 봐 조마조마했어.
전국적으로 치르는 모의고사 시즌이 되면 체육이나 미술처럼 엄마가 좋아하는 과목들은 모두 언어, 수리, 외국어 과목의 보충학습 시간으로 대체되고, 친구들은 운동시간이 부족해 비만과 변비로 고생을 했어. 며칠에 걸친 시험이 끝나면 그날 저녁 매운 떡볶이를 먹거나 동전 노래방을 찾아 스트레스를 속성으로 풀어내고 다음날부터는 또 다음 시험을 준비하는 날들의 연속이었지.
모두가 열심히 했기 때문에 누군가는 열심히 하고도 낮은 등수가 적힌 성적표를 받아야 했어. 성적이 곧 미래를 결정하는 지표라고 여겼으니 낮은 등수는 밝은 미래로부터 한걸음 멀어지는 것처럼 절망적이었지.
우리나라 명문으로 꼽히는 카이스트에서 몇 해 전 학생들이 연쇄적으로 자살을 하는 사건이 있었어. 자살의 이유로는 높은 학업 스트레스가 꼽혔지. 소설 속 신학교에서도 꽤 많은 학생들이 자퇴를 하거나 자살을 하면서 학교를 떠나. 학생들이 느끼는 학업에 대한 부담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지.
학창 시절로부터 20년쯤 지나온 엄마 옆에는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여럿 있단다. 성적이 좋아서 늘 학교 게시판에 이름이 걸려있던 친구도 있고(엄마네 학교는 매 시험이 끝나면 전교 20등까지의 명단을 모두가 보는 게시판에 걸어놓았거든) 열심히 공부하고도 늘 뒤에서 더 가까운 등수를 받아 들어 절망하던 친구도 있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학창 시절의 시험 점수가 현재의 성공이나 행복과 비례하지는 않는단다. 한 친구는 공부를 꽤 잘해서 좋은 대학에 입학했지만 졸업 후 적성을 따라 카페를 창업했고, 다른 친구는 성적은 높지 않았지만 직장에서 탁월한 능력과 전문성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하고 있어.
엄마가 느끼기에는 성적이 좋아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간 친구들보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게 뭔지 끊임없이 탐구하고 그걸 얻기 위해 노력한 친구들이 삶에서 더 높은 만족과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아.
공부가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도록 도울 여러 방법들 중 하나인 건 분명해. 어려서 많은 걸 배워두면 아는 것이 많으니 살아가는데 유리한 점이 있겠지. 좋은 성적은 인생의 선택지를 늘려주기도 할 거야.
하지만 공부는 이렇듯 무언가를 얻기 위한 도구에 불과해. 시험성적이 곧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지. 성적이 네 미래를 결정짓는다고 생각해 오로지 높은 점수만 보고 달려가다가는, 네 삶의 선택지를 넓히기 위해 얻은 좋은 성적에 오히려 발목 잡혀 네 마음과 다른 삶을 살게 될지 몰라.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이 들겠지.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지? 왜 여기에 있지? 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야. 엄마가 네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또 직장에서는 업무에 최선을 다해야 하듯, 공부를 주로 하는 학생이라면 열심히 하는 편이 좋겠지.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시간도 늘 주어지지는 않는 축복이라는 걸 지나 보면 알 거야.
하지만 행복한 미래를 위해 하는 공부 때문에 지금 현재를 불행하게 보내지는 말자는 거야. 계절의 변화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친구들과는 좋아하는 남자애에 대한 얘기도 나눌 수 있는 여유를 마음 한편에는 마련해 두렴. 그리고 올해가 지나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너만의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봐. 그 과정에서 네가 진정 살고 싶은 삶, 되고 싶은 미래에 대해 고민해보는 거야. 공부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면 좋겠지. 그럼 넌 엄마보다 훨씬 즐겁게 공부할 수 있을 거야.
엄마는 가끔 시간을 돌리는 상상을 해. 현재를 살아봤으니 과거로 돌아가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만약 다시 고등학생이 된다면 엄마는 그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할 거야. 하지만 높은 성적을 받거나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결코 아니란다.
오히려 시험공부에 매진하느라 놓쳤던 다양한 분야에 대해 조금 더 넓게 공부해보고 싶어. 여러 도시를 여행하고 많은 책을 읽으며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쌓았다면, 엄마의 10대, 20대가 조금 더 풍성하지는 않았을까 싶어서.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며 눈물을 펑펑 쏟았던 그때의 감성이라면 같은 경험에서도 지금은 얻을 수 없는 특별한 무언가를 엄마 안에 쌓을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엄마는 요즘도 가끔 공부를 하나도 하지 못한 채 시험지를 받아 드는 꿈을 꾼단다. 콩닥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안절부절못하다가 겨우 깨어난 후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공부가 도구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도 이런 꿈을 꾸는 엄마가 우습지? 맞아. 만약 회사에서 진급시험이 생기기라도 하면 엄마는 방금 네게 떠든 말을 다 잊고 조마조마해하며 시험의 무게에 시달릴지 몰라.
시험은 누구에게나 버거워. 네 삶에 대한 애착의 크기가 클수록 더 버거울 테지. 긴장이 되는 것도 당연하고 중요한 시험이라면 평소답지 않게 예민해지기도 할 거야.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너무 실망하지는 말자. 어떤 결과가 나와도 방법은 있어. 거듭 말하지만 학창 시절의 공부는 네가 원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줄 여러 방법들 중 하나에 불과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