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히어로, 드웨인 존슨 (2/2)
나의 첫 히어로, 드웨인 존슨 (1/2)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생기는 일들이 이 곳에도 똑같이 있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견제, 질투, 뒷얘기 등등.
이제 처음 일을 시작한, 그리고 영어도 미숙한 저로써는 그들의 대화를 이해할 순 없었지만, 사람들 속에 섞여 산지 어언 30년. 영어가 아닌 눈치와 감으로 취업까지 한 저의 레이더는 그 불편한 분위기를 감지해 냈습니다.
제 옆에 앉아있던 A라는 친구는 일도 잘하고 능력있는 친구였습니다. 비록 일을 시작한지는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기술적으로나 만들어내는 결과물만 보더라도 충분히 경력있는 친구들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죠. 그렇기에 프로젝트 내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슈퍼바이저나 팀장 직급의 사람들과 얘기도 많이 나누고요.
그러한 점들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요소로 작용했었나 봅니다. 개인주의가 일반적인 외국이라지만 같이 밥먹으러 가는 그룹이라던지, 퇴근후에 술마시러 가는 그룹에 A는 없었거든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책상 앞에서 항상 무언가를 개발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고독이 원동력이라도 된듯 그는 항상 멋진것들을 만들어 내고는 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정말 친절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작업환경도 처음이고, 영어도 제대로 할줄 모르는 저에게 이것저것 회사에 대해서 설명도 해주었죠. 제가 그의 작업물이나 새로운 세팅에 대해 관심을 보이면, 역시나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 역시 한창 일에 빠져있을 때라 그런 대화들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영화의 한 장면을 더욱 예쁘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사실적으로 보이게 할 수 있을까?
요즘 유튜브에 이러한 채널들이 있는데, 우리 작업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내가 만든 툴인데 한 번 사용해 볼래?
서로 작업에 대해 이야기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이러한 시간들은 바로 제가 바라왔던, 그리고 그려왔던 모습이었습니다. 나와 공통 관심사가 있는, 하지만 더욱 실력이 좋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할리웃 영화에 참여하고 있는 사실 자체가 더욱 저를 기분좋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듣게 된 얘기로는, 그들 사이에 무슨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프로젝트 마지막엔 서로 하하호호 하며 잘 지내는 모습이었거든요. 멀고도 먼 서구문화 적응기...
다양한 일들을 겪는 사이에 프로젝트는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었습니다. 보통 프로젝트가 마무리 되는 시점이 찾아오면 야근의 빈도수가 더욱 많아지게 됩니다. 크런치 타임이라고 불리우는데, 이 시기는 회사에서도 야근을 장려? 하는 분위기로 바뀝니다. 기간내에 영화를 완성도있게 만들기 위한, 그리고 마무리를 짓기위한 회사에서의 최종 시점인 것이죠. 이 시기에는 주말에도 출근하는 일도 잦아 집니다.
외국은 야근 안하고 주말출근 안하는 줄 알았는데...이러한 야근이 제 직업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네요...
한국의 잦은 야근에 단련되어 있는 저에게 있어서 외국의 야근쯤은 별것 아니지. 라고 생각했지만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 하지는 않더라고요.
그 이유로는, 업무강도가 훨씬 강했습니다. 하루 적게는 두 번, 많게는 네 다섯번의 리뷰(미팅)타임을 가지는데요. 그때마다 내가 어느정도의 진행상황으로 가고있는지 보여주어야 합니다. 완성이 안되어 있으면 안되어 있는대로, 그리고 다른 부서에 요청할 사항이 있는지/없는지에 대한 것도 이러한 리뷰타임을 통해 결정되거든요. 그래서 프로젝트 관리부서에서는 시간때마다 자리로 와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다음 리뷰때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는지 없는지 물어봅니다. 이 때에는 점심이나 저녁도 모두 배달을 시켜서 자리에서 먹던지, 휴게실 가서 빨리 먹고오거나 합니다. 리뷰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죠.
'이번에 못보여줄것 같아' 라고 말하면 되는데, NO 를 못하는 한국인이 저였던 터라, 리뷰타임이 정해지면 무조건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를 밀어부쳤습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녹초가 되기 일쑤였습니다.
또다른 이유로는 바로 언어였습니다. 영어로 인한 업무 피로도가 굉장히 심했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것을 예를 들자면, 제가 한국어를 못해서 하고 싶은말, 설명해야 할 것들을 못할 이유가 없었겠죠. 일이 왜 늦어지는지,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스스로 모든것들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곳은 외국. 모든것이 영어로 이루어 지는 곳이기에, 모든 것을 영어로 설명해야 했습니다.
제 글들 초반에 설명했지만, 무작정 포트폴리오만 들고 건너온 터라 영어가 준비되어있을리 없었죠. 옆의 친구들이 어떻게 설명하는지, 어떠한 영어를 사용하는지 항상 주의를 기울였다가 다시 써먹는 방법으로 버텨나가야 했습니다. 이러한 업무피로도가 상당 하더군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리뷰시간이 가장 힘든 시간 이었습니다.
여러 손짓을 써가며 제 결과물들을 설명하고, 슈퍼바이저들이 영어로 설명하는 것들을 알아듣기 위해 다시 손짓을 써가며 소통해야 했죠. 불행중 다행이라면,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한국인 형들이 있었기에,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은인과도 같은 분들이었습니다.
주눅들 필요없다. 손발짓을 쓰더라도 상관없다. 등등.
그 형들이 없었다면, 아마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없었을거라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외국인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법' 을 가르쳐 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죠.
이렇게 프로젝트가 마무리 되어갈 무렵, 프러덕션에서 밖으로 잠시 모이라는 소식을 듣습니다. 왜 부를까 라는 생각으로 나가보니, 크루 사진을 찍더라고요. 프로젝트가 마무리가 되어가는 시점에서 다들 모여서 사진 찍는 것이 이들의 하나의 문화인 듯 했습니다. 한창 바쁜와중에 사진을 찍으라니 당황스럽긴 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 시절을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사진이네요.
밥먹듯이 하던 야근이 끝나갈무렵 프로젝트도 마무리 되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배웠는지, 어떤 점이 힘들었는지 정신 차릴새도 없이 지나가더군요.
한가지 확실한 것은, 대충하다가는 짐싸서 그대로 돌아갈 수도 있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부족한 영어를 메꿀 수 있을만치 결과물들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이었죠.
이 한가지를 확실히 배우고 저의 첫 할리웃 영화 참여는 이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