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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름끈 Aug 13. 2022

괴물을 잡기 위해 괴물이 되다

video 2 : 드라마 <돼지의 왕>


 세상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약한 존재를 함부로 대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사람들. 누군가가 그 행위의 이유를 묻는다면 그저 장난일 뿐이라고 대답하겠지. 아니면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게 한 사소한 말이나 행동을 부풀려 말하거나. 하지만 이런 말들은 진짜가 아니다. 그들은 그냥 자신이 마음내키는 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안심할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일 뿐이다. 자신의 행동을 결코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다. 이러한 면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하다. 학창 시절처럼 또래 관계가 절대적인 시기는 더는 없으니 이제는 다른 사람들보다 우위에 서는 게 그리 쉽지 않을 테지.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만 존재감을 확인하고 그래서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직장 생활이야 피곤함의 연속이지만, 정말 진지하게 출근하기 괴롭다는 생각을 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 여덟 명이 함께 사무실을 쓰고 있었는데, 40대 부장이 저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녀의 타겟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1-2개월 단위로 바뀌었다. 수법은 물론 유치하기 짝이 없다. 한 명에게 절대 말을 걸지 않으면서 나머지 사람들과는 과장되게 친분을 과시한다. 상대에 대한 뒷담화도 요령껏 흘리면서 상대를 고립시키고자 한다. 당연히 당하는 사람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처음에는 긴가민가 하다가 그녀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고 때론 화가 나서 나도 차갑게 대해야지 다짐한다. 그러면서도 위축되는 마음은 어찌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린 더 이상 내 친구가 싫어한다고 해서 덩달아 상대를 미워하는 여고생이 아니였고, 부당하고 무례한 방식으로 누군가가 소외되는 것을 내버려둘만큼 어리석지도 않았다. 몇몇은 상황을 중재해보려 애를 썼고, 몇몇은 의식적으로 배제된 사람을 더 챙겼다. 예상과 다른 전개가 펼쳐지면 그녀는 불안해진다. 자신은 절대 소수 또는 약자가 되고 싶지 않다. 어제까지 치졸한 방식으로 미움을 드러냈던 상대에게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히 따뜻한 말을 건넨다. 드디어 끝났구나 싶을 때 그녀는 또 다른 사람에게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나 역시 한동안 피해자였다. 자존심과 오기로 똘똘 뭉친 나는 내가 받는 부당한 대우를 참지 못했고, 그녀와의 갈등을 모두 앞에서 드러내는 방식으로 맞대응했다. 같은 공간에서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고 나 역시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는 건 큰 스트레스였다. 늘 '저 사람은 내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니 신경쓰지 말자'는 말을 스스로에게 최면처럼 중얼거렸으나 사실 마음은 너무 힘들었다. 그 때 내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도 말이다. 잊지 못할 일 년이었다.



 * 어쩌면 조금의 스포일러가 있을지도 *


 내가 겪은 일들은 너무 하찮게 느껴질 정도로 작품  중학생들의 현실은 처절하고 참혹하다. 이러한 폭력행위를 영상으로 전시하는  필요한가 싶을 정도의 적나라한 표현들로 인물들의 감정이 여과없이 시청자에게 전달되었다. 나는 사실 고통스럽고 지쳐서 2회까지만 보고   시청을 한동안 멈추기도 했다. 영상을 다시 재생하게 만든  가해자들이 결국 어떤 처분을 받게 되는지, 그리고 감독은 사적복수를 행하는 주인공에게 어떤 결말을 선사할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철이의 등장을 기점으로 이야기의 수레바퀴는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야 씨발 새끼들아, 진짜! 너네들 뒤끝 장난아니다.

 20년 전 일 가지고 사람 이렇게 괴롭혀도 되는 거야?

 이게 그렇게 큰 죄야? 나 죽을 죄 졌어? 존나게 미안하다, 이 씨발 새끼들아." (4화)



 작품 속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과거 행동을 쉽게 잊어버리고 심지어 그들의 학창시절을 즐거웠다고 떠들어대기도 한다. 영상 너머로 그들의 가혹행위에 함께 상처받았던 시청자들은 아마 대부분 나처럼 경민의 복수를 응원했을 것이다. 경민이 살인을 행하기 전에 그들에게 죽음의 이유를 일깨워주려 하면 마음이 조급해졌다. 혹시 그를 죽일 기회를 놓칠까봐. 글로 옮기고 나니 좀 묘한 기분이 들지만 난 작품을 보는 내내 경민의 살인을 응원했다.    


 경민이 겪은 일을 함께 당했지만 지금은 그의 살인을 막으려 하는 형사 종석은 말한다. 나도 그게 죽을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종석 역시 시간이 아주 많이 흘렀음에도 가해자였던 강민에게 전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벌벌 떤다. 피해자들은 너덜너덜해진 채 살아가고 있는데 사회는 여전히 그들을 제대로 벌해주지 않는다. 비단 학폭 문제만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심판자가 아니라는 강진아의 말은 공허한 외침으로 들린다. 피해자들이 여전히 날것의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데,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밖에 없다면 세상은 그들에게 여전히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닌가. 가해자들은 자신의 목숨을 위협받는 순간이 되어서야 용서를 구한다. 철이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던 유일한 인물인 종빈만이 자신의 과거 행동을 진심으로 참회한다. 작가는 그를 통해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을지 모르겠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가 얼마나 판타지같은 존재인지.  


"진실이 중요해? 난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해"(12화)


 작품의 후반부까지 이야기가 힘있게 전개될 수 있었던 것은 복수극이 벌어지는 와중에 우리에게 던져진 '철이'라는 미스터리때문이었다. '철이는 누구인가', '그들은 어떤 관계였는가'에서부터 출발해서 '철이는 무엇을 원했는가'로 그 다음은 '철이의 죽음에 얽힌 비밀은 무엇인가'로 의문은 계속 생겨나고 우리는 진아와 함께 그 답을 찾아가게 되는데, 그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늘 갈망했던 그 '힘'으로 철이는 돼지의 왕이 되지만 영웅은 삽시간에 동정 받아 마땅한 약자로 추락한다. 그 날 종석의 선택은 철이가 자신들의 '신'으로 계속 남아주기를 바랬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살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그 역시 가해자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괴물을 잡기 위해 결국 괴물이 되어버린 이들의 끝에 무엇이 남는 걸까? 이 이야기에서 과연 승자는 누구이고, 살아남은 자는 누구인가? 그래도 그들이 주고받은 마지막 말이 친구를 함께 보러 가자는 것이었고, 처연하기 그지없는 마지막 순간이지만 그들이 함께라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그들의 고통 앞에서는 이러한 연민조차 죄스럽게 느껴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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