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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름끈 Aug 25. 2022

결국 우린 행복해질 거야

video 5 :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

 "당신의 인생영화는 무엇인가"


 자주 듣는 질문이다. 나의 답은 "그때그때 다르다". 물론 매번 바뀌는 게 무슨 인생영화냐는 핀잔을 듣게 되지만 말이다. 나에겐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인생영화를 말할 때 난 단순히 그 사람의 취향만 읽지는 않는다. 나는 인생영화를 통해 그 사람이 인간과 사회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어떤 가치를 지향하며 살아가는지를 엿본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 영화를 쉽게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영화는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답할 수 있다. 사는 건 왜 이 따위인가 싶은 날, 영화를 보고 나면 그래도 조금쯤은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사람들 틈에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들이 있다. 여러 번 돌려봐도 늘 뭉근한 행복감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들을 꼽자 하면 <블라인드 사이드>는 다섯 손가락 안에는 꼭 넣게 되는 작품이다.



 주인공 '리 앤'은 세련되고 부유한 백인 상류층 여성으로 자녀들을 살뜰하게 챙기면서도 늘 업무 때문에 전화를 붙들고 사느라 바쁘다. 워낙 주관이 뚜렷한 데다 성격 또한 급해서 말투도 행동도 거침없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식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친 흑인 아이 '마이클'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되고 하룻밤 재워주게 된다. 다음날 이불을 곱게 개어 두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아이를 붙들어 추수감사절을 함께 보내게 되고, 점차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자리 잡게 된다.  


 러닝타임 내내 '리 앤'은 한 아이의 인생을 수렁에서 건져 올리는 "위대한" 일을 해내지만, 영화는 결코 그녀의 공로를 거창하게 포장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도입부 그녀는 아이에게 기꺼이 잠자리를 내어주면서도 혹시나 물건을 훔쳐가지 않을까 걱정하고, 친구들의 선민의식 앞에서 불편한 미소를 내비칠 뿐 크게 반박하지 않는다. 아이 덕분에 행복하다며 학교에 기부할까 생각하지만 그것 역시 '마이클'이 우유 속에 빠진 파리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혹시 백인 상류층으로서 죄책감 때문이냐는 친구들의 질문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녀의 선의가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아온 사람이 기분 내킬 때 하는 가벼운 봉사활동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이 "특별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그들이 '마이클'을 배려하고 사랑하기 위해 굳이 애를 쓰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부터이다. 투오이 가족의 호의와 애정은 결코 요란스럽지 않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이니 함께 밥을 먹는 것이고, 집에 게스트룸이 있으니 그 공간은 '마이클'의 방이 되는 것이며, 새해 연하장에 담을 사진을 촬영할 때 마침 '마이클'도 그곳에 있으니 함께 사진을 찍는다. 운동신경이 좋고 어차피 체육특기생으로 들어온 것이니 가족 모두가 사랑하는 럭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철없는 아이들의 쑥덕거림에도 '콜린스'는 '마이클' 옆에 앉아서 책을 편다. 집에서도 늘 함께 공부했으니까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가족들도 분명 멈칫할 때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든 순간 마이클이 그곳에 그들과 함께 머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느끼게 해 준다.



 "사람을 믿지 않아요. 모두가 잘해주는 척하다가 떠났기 때문이죠."


 빈민가에서 험한 일을 많이 겪으면서 자랐고, 남들보다 우월한 신체조건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마이클'은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까 겁이 나서 럭비 플레이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리 앤'이 선수의 플레이는 남들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팀을 지켜내는 일임을 알려주자 그제야 '마이클'은 즐겁게 움직일 수 있었다. '마이클'은 자신의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들을 온 힘을 다해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 아이다. 하지만 안과 밖의 경계 역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마이클'은 내내 자신을 지켜주는 테두리를 필요로 했고, 가족들은 한결같은 태도로 그의 곁을 지키며 기꺼이 그 테두리가 되어 주었다. 법적 보호자가 되었다고 선언하듯 발표하는 가족들 앞에서 우리는 이미 가족이지 않았냐고 묻는 '마이클'의 미소를 보며 나 역시 덩달아 행복해졌다. 낯선 이에게 꾸준한 애정과 지지를 보내주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것이던가. 그리고 그 진심이 제대로 전달되어 서로 마주 보고 웃을 수 있는 일 역시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이던가.


 영화의 후반부 '리 앤'의 고민이 주는 울림은 작품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자신의 호의에 나도 자각하지 못한 저의가 숨어 있지는 않았을까, 나는 아이에게 원하는 것을 제대로 물었던가, 아이를 위한 것이었나 나를 위한 것이었나, 나는 좋은 사람인가. 그녀의 솔직한 자기반성은 도리어 그녀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영화는 시종일관 선의와 호의로 밀어붙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피상적이라거나 뻔한 내용이라는 비난을 받을지언정 단순한 문법으로 사람의 진심을 말하는 영화는 분명 온기를 전해 주고 평화를 안겨 준다. 마치 주문을 걸어주는 것 같다. 결국 우린 행복해질 거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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