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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름끈 Nov 14. 2022

취향에 대한 주저 없는 존중

book 4 : 김민철 - <하루의 취향>

 편협한 독서취향을 지닌 내가 주로 선택하는 장르는 소설이다. 방대한 시대를 배경으로 휘몰아치는 전개를 보여주는 선 굵은 소설들도 즐겨 보지만, 사실 나는 섬세한 감수성으로 일상 속 균열을 들여다보는 소설들을 조금 더 사랑한다. 최근에는 타의에 의해 또는 어쩌다 보니 에세이를 읽을 기회가 많았는데, 이런 종류의 글들은 아무래도 이야기의 힘보다는 작가 자신의 매력이 글 전체의 인상을 좌우하기 마련이다. 어디에서 화제를 취할 것인가, 어느 대목에서 이야기를 시작할 것인가, 생각은 어떤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깊어지는가. 이 모든 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어떤 글들보다 작가의 인간적 매력이 진솔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하루의 취향>은 <모든 요일의 여행> 이후 두 번째로 읽게 된 김민철 작가의 에세이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작가의 목소리는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난 그녀를 따라 소리 내어 웃기도 하고 급작스럽게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책장을 넘길수록 그녀를 좋아하게 됐고, 그래서 그녀를 닮은 이 책도 사랑하게 됐다. 나는 무릎을 치게 만드는 날카로운 통찰보다는 조금은 뭉뚝할지언정 부드럽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과 타인을 바라보는 에세이를 좋아한다. 거기다 약간의 위트와 유머를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요즘의 나는 특히 더 그러하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만 곁에 두고 싶고, 책도 예외는 아니다.


 모두가 여럿의 나를 데리고 산다. 나에겐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 하는 내가 있고, 그런 나를 미치도록 한심해하는 나도 있다. 여행을 떠나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는 내가 있고, 집 앞 슈퍼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불행하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 내가 있다. 매일 점심 메뉴 결정을 세상에서 제일 힘들어하는 나도 있고, 회의를 하다가 단숨에 결정을 내려버리는 나도 있다. 낯선 사람 앞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어색한 미소만 짓고 있는 나를 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에겐 낯선 수백 명 앞에서 강의를 해도 아무렇지 않은 나도 있다. 그러니 나의 성향을 묻는 수많은 질문들 앞에 서면 생각이 많아진다. 어떤 나를 골라야 하지? 진짜 나는 어떤 모습이지? 그 모든 나 사이에서 힘겹게 외줄타기를 하며 다들 겨우 '나'로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p.65-66)


 작가는 8년째 도예 공방에 다니고 있었다. 2018년에 발간한 이 책을 집필할 당시 그러했으니 지금은 더 오랜 경력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공방 구석자리에는 끈기 있게 달항아리를 만드는 아저씨가 있다. 작가에게는 고행으로 보이는 작업을 몇 달에 걸쳐 몇 년 동안 해왔지만 그의 달항아리는 완성된 적이 없다. 아저씨는 흙을 반죽하고, 물레를 돌리며 끊임없이 다듬고, 정성을 다해 말리고, 모든 각도에서 살펴본 후 다시 부수는 일을 계속한다. 그에게는 완벽하지 않으므로. 그에 비해 작가는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어딘가 모자라고 이상한 작품이 나와도 마음에 들어 하며 완성품으로 받아들인다. 스스로에게 관대한 그녀에게 달항아리 아저씨의 작업은 답답하기 짝이 없겠지만, 작가는 그 아저씨에게는 스스로에게 엄격한 그 시간이 숨구멍이 되어주고 있다며 세상에는 그런 취미의 세계도 있다고 말한다. 난 그 '주저 없는 존중'이 좋았다.   


 대학 시절의 나는 지금보다 편식이 심했다. 사회생활을 하며 회식 자리에서 여러 음식들을 반강제로 접하고 난 후 깨달았다. 내가 못 먹는다고 생각했던 음식들 중 상당수는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먹어볼 시도조차 안 했던 것들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때는 내가 아는 나를 지키려 쓸데없이 에너지를 쓰고 있던 시절이었다. 당시 남자친구는 늘 나의 좁디좁은 입맛을 비난했고 내가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들(돼지국밥, 순대, 닭발 같은)을 함께 즐겨주지 않는다고 속상해했다. 어느 날에는 급기야 돼지국밥만 파는 집에 나를 억지로 데려가 먹기를 강요했다. 나는 몇 숟갈 뜨자마자 화장실로 가서 토했고, 그날의 데이트는 어색하게 마무리됐다. 사실 토할 정도로 거북하진 않았다. 토하고 싶을 만큼 불쾌했을 뿐.(이후 몇 차례 시도했지만 난 여전히  냄새 때문에 돼지국밥을 싫어한다) 물론 그와는 곧 헤어졌다.   

 

 나의 취향이 견고해지고 뾰족해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세계를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을 낮게 볼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난 불쾌했던 그날의 돼지국밥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건 한쪽으로 기울어질 이유가 전혀 없는 그저 다른 것일 뿐이라고 말해준다. 상대는 그 세계를 아직 모를 수도 있고, 이미 훑고 지나가 취향이 아니라는 판정을 내려버린 것일 수도 있다. 나로 인해 상대가 그 세계를 경험할 수도 있고, 나에 대한 궁금증이 없어 앞으로도 그 세계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도 있다. 몇 년 후에는 상대가 그 세계에 열광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내가 그 세계에 대해 까다롭게 굴던 스스로를 한심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취향은 지금을 살고 있는 상대와 나의 일부일 뿐이고 그 일부는 언제든 변화할 수 있다. 취향이 다르다고 해서 우리 사이에 크나큰 걸림돌이 생긴 게 아니다. 우리 사이를 결정하는 건 나와 다른 취향을 기꺼이 더 나아가서는 즐겁게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임을 잊지 말자.


 단순히 옷을 하나 고르는 것도 취향의 영역이다.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취향의 영역이다. 옷을 고를 때 내 마음을 의식하는 것처럼, 나머지 모든 일에 있어서도 내 마음의 방향을 의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 방향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나 말고는 아무도 없으니까. 그리하여 남의 시선을 배제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을 접어두고, 나의 마음을 꼼꼼히 파악하여,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선택을 내려야 한다.

 물론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다. 내 마음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불확실한 것이 많을수록 가장 확실하게 기댈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나의 마음이 향하는 것들로 완성한 나만의 취향 지도 안에서 나는 쉽게 행복에 도착한다.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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