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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름끈 Dec 13. 2022

나를 초라하지 않게 하는 사랑

book 3 : 이혁진 - <사랑의 이해>

 이야기를 써 나가면서 사랑이 다른 감정과 다르다면 결국 우리를 벌거벗게 만들기 때문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사랑의 징후인 두려움과 떨림도, 보상인 환희와 자유로움도 그래서 생겨나는 것 아닐까, 하고. 

 같은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에곤 실레의 나체화처럼 벌거벗은 우리는 대개 헐벗었고 뒤틀려 있기 마련이니까. 벌거벗은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벌거벗은 상대방을 지켜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자존심, 질투심, 시기심같이 사랑을 둘러싼 감정들과 온갖 생활의 조건들은 오히려 더 갖춰 입고 뻔뻔해질 것을 요구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사랑한다면, 사랑을 원한다면 결국 거짓의 밝고 좁은 조명 아래서든, 거울처럼 자신을 비추는 짙은 어둠 안에서든 입고 껴입을수록 더 헐벗고 뒤틀리기만 하는 자신을 마주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 작가의 말 중에서



 연말이다. 그리고 나는 올해 사랑을 하지 못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올해도 사랑을 하지 못했다. 관계에 깊숙이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늘 한 발은 뺀 채 하는 가벼운 만남들이야 종종 이어지곤 했지만, 그래 그건 사랑은 아니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사랑을 시작하고 꾸려나가고 매듭짓는 데 에너지를 쓰는 일을 멈췄다. 사랑 없이도 일상은 흘러갔고, 큰 기쁨은 없지만 큰 슬픔도 없어 평온했다. 이 평화가 흔들릴까 봐 겁이 나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감정들을 외면하기도 했다. 51 : 49쯤 아니 사실은 71 : 29쯤은 만족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로맨스가 필요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금은 연말이다. 삶의 고단함쯤은 별 거 아니라고 잠시나마 착각하게 만드는, 로맨스 속 뭉게뭉게 피어나는 해피 바이러스가 필요한 시기인 것이다. 타인의 로맨스를 감상하는 것은 꽤 가성비 좋은 선택이었다. 앞선 고백을 생각해본다면  이건 가성비를 따질 것도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이기도 하다. 


 아무튼 말랑말랑한 감정 좀 느껴보겠다고 고른 책인데, 읽을수록 낭패였다. 사랑이란 원래 달콤 씁쓸한 것이라지만 이건 씁쓸함만 한가득이다. 주인공들의 사랑은 모르는 척하고 싶었던 나의 자격지심, 이기심, 편견, 위선 그리고 위악까지도 낱낱이 드러낸다. 그래서 나는 삶의 고단함을 잊기는커녕 사랑의 고단함까지 쌓여 더 무거워졌다. 단 1g도 말랑말랑해지지 않았다. 이건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계급에 대한, 관계에 대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 스포일러 있어요 *


 주인공 상수와 수영은 작가의 말처럼 사랑 앞에서 벌거벗은 채 자신의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어쩔 수 없이 과거 나의 사랑을 떠올리게 했다. 나와 상대가 의도하지 못한 채 주고받았던 상처와 나를 지킨다고 상대를 할퀴었던 순간들이 떠올랐고 몰이해와 망각을 핑계 삼아 되짚어보지 않은 나의 비열함도 수면 위로 올라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수영과 상수 둘 중 어느 쪽을 더 이해하고 공감했냐고 묻는다면, 그건 상수였다. 그리고 상수였으면 했다. 


 수영은 은행 계약직 텔러로서 힘의 관계를 민감하게 반응하는(반응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그녀는 사회적 조건들로 인해 연애에 있어서도 '을'의 입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다. 호감을 주고받고 있던 상수와의 약속이 틀어졌던 날, 그녀는 부득이한 사정이 생겨서 어쩔 수 없었다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단칼에 관계를 끊어냈다. 자신에게 미련을 내비치는 상수에게 자신을 간 본 거 아니냐며 빈정대며 공격한다. 어떻게든 나오려면 나올 수 있었다고 상대를 몰아붙이고 그를 속물 취급하며 경멸의 말도 서슴지 않는다. 자신은 이미 다른 남자에게 온통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말이다. 썸 타던 직장 동료에게(심지어 그녀가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회적 조건이 자기보다 우위인 사람에게) 도저히 내뱉을 수 없을 말들을 할 수 있는 건 그녀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수와의 관계에서 적어도 감정의 영역에서만큼은 자신이 우위라는 것을.  


 내가 베풀 수 있는 게 있을 때 비로소 생겨나는 게 마음의 여유라는 걸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건 미경과의 연애에서 상수가 느끼는 공허함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잘 사는 집 딸인 미경이 주저 없이 쓰는 돈 앞에서, 그녀의 산뜻하면서도 잘 정돈된 일상 속에서 그는 자꾸 밀리고 오그라든다. 사소한 선택까지 그녀에게 맞춰가며 행복이란 꾸미고 연출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수영이 그에게 조금의 여지를 주니 감춰왔던 감정을 우르르 쏟아낸다.(조심하는 척, 서로 아닌 척하지만 정말 "우르르" 쏟아낸다.) 잘난 거든 못난 거든 다 털어놓을 수 있어 수영 앞에서는 진짜 자신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상수의 사랑은 수영이 미경처럼 가진 게 많았다면 가능한 것이었을까. 상대가 애초에 "척"할 필요가 없는, 미경보다 만만한 수영이어서가 아닌가. 


 수영과 종현의 관계가 그토록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 느낀 호감과 끌림이야 당연히 서로의 외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력 때문이겠지만, 수영이 무너져가는 종현을 계속 붙잡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받는" 쪽이 아니라 "주는" 쪽이어서라 생각했다. 인간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사람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 수영과 종현의 사랑이 변질되기 시작한 시점은 종현이 처음 시험에 떨어지고 가세가 기울어 수영의 신세를 본격적으로 지기 시작했던 때부터였다. 계약직이지만 직장이 있고 전셋집이 있으며 아름다운 외모 덕에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남자도 많았던 수영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었던 상수에게 비난과 분노를 퍼부을 수 있었지만, 당장 머물 곳조차 없는 종현에게는 다른 선택지 같은 건 없었다. 수영의 사랑은 자신이 기꺼이 이렇게까지 내어줄 수 있다는 사실에 아름답게 윤색되어 가고, 종현의 사랑은 고마움과 미안함, 부담감에 짓눌려 숨 쉴 곳 없어진다. 


 쉴 새 없이 책장을 넘기다 딱 한 순간 멈춘 적이 있는데, 그건 수영이 종현과의 관계에 지쳐 상수에게 말은 건넨 순간이었다. 자신을 여전히 원하는지 확인하고 싶고 그 관계의 우위에서 위로받고 싶은 욕망이 느껴져서 짜증스러웠다. 그를 통해 종현에 대한 사랑을 확인했다 한들 달라지는 건 없다. 종현의 바람을 인지하고 난 후 그녀가 이별을 고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품에 안기면서까지 상수와 종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별 거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자 했고, 그건 가장 잔인한 이별의 방식이었다. 그녀는 끝끝내 솔직하지 않았고, 마지막까지 적어도 남들 앞에서 "덜" 사랑하는 쪽을 자처하며 사랑에서의 우위를 놓치지 않았다. 


 이는 상수과 미경의 사랑이 끝맺는 방식과는 사뭇 달랐다. 적어도 상수는 미경에게 수영과의 일뿐만 아니라 자신의 못난 자격지심과 비겁한 분노를 털어놓았다. 미경이 결심을 내릴 때까지 곁을 지켰으며 마지막 순간 진심으로 울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사랑들을 되돌아보며 자신을 순전히 사랑해준 사람을 잃는다는 게 얼마나 아픈 일인지를 알게 된다. 이렇게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내상을 입힌 사랑이 지나갔으면 적어도 이 정도의 깨달음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책을 읽다가 이 작품이 곧 드라마로 방영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놀라운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주인공 둘 사이 주고받는 감정선이야 쭉 이어지기는 하지만 서사라 할만한 것은 거의 다 서브주인공들과 엮이면서 펼쳐지는데 이건 드라마로 따지면 꽤 큰 문제이다. 거기다가 드라마 속 인물들은 선악을 떠나 진심을 온전히 드러내면서 시청자들의 공감과 애정을 얻게 되는데, 복합적인 내면을 가진 수영을 어떻게 사랑받는 주인공으로 그려낼 수 있을지. 여러모로 궁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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