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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ckypinkpiggy Sep 18. 2022

예술은 왜 권력을 따라 움직이는가

이유리 - 『기울어진 미술관』

이 책의 표지는 덴마크의 화가 게르다 베게너가 그린 <하트의 여왕>이다. 그림의 모델은 남편 릴리 엘베다. 릴리는 여장을 통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생물학적 정체성인 '남성' 대신 새로운 성 정체성을 선택했다. 아내인 게르다는 이를 응원하며 그림으로 그렸고, 남편이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 대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책은 릴리의 사례처럼 그림 속에 숨겨진 권력 이야기를 폭로한다. 근대 이전의 그림은 대개 취미가 아닌 커미션에 따라 그려졌고, 커미션을 지불하는 자들은 돈이 있거나 권력이 있거나 둘 다 있었다. 그러니 근대 이전의 그림은 당대 권력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여주는 역사화기도 하다. 한 예로, 이는 종교가 곧 권력이던 중세 시대에 왜 일상생활을 담은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는지, 왜 수많은 종교화만 탄생했는지 알려준다.


그렇다면 현대는 어떨까. 르네상스 시대 메디치가처럼, '예술의 부흥은 후원자가 있어야 가능하다'라는 공식은 현대에도 유효할까. 이유리 작가는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은 예시를 든다.


"냉전이 첨예하던 시대, 미국은 소련을 다방면으로 압도해야 했다. 진정한 승자가 되려면 경제와 이데올로기뿐만 아니라 문화에서도 우위를 차지해야 하는 법. 소련의 미술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미국의 얼굴을 한 예술'이 필요했다. 이 '문화전쟁'의 수행자로 나선 곳은 중앙정보국이었다. CIA는 1950년부터 1967년까지 '문화자유회의'라는 선전 기관을 비밀리에 만들어 첩보 작전을 수행했는데, 이 작전의 선택을 받은 미술이 바로 잭슨 폴록으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였다."


그렇다. 잭슨 폴록의 부상은 미국의 정치적 공작 덕분에 가능했다. 아무리 예술가가 시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지만, 이렇게 예술이 정치에 휘말린다면 예술의 순수성은 어디에 있을까. 자본주의 시대에 순수성 타령하는 건 정말 불가능한 일인 걸까. 이 책은 예술 속에 숨겨진 권력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려줘 이런 회의감을 갖게 만든다. 다행인 점은 이 책이 독자를 이런 회의감 속에 놔둔 채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는 생전 작품을 단 한 점만 팔았던 빈센트 반 고흐의 이야기가 나온다.


"거대한 돈이 오가는 거래가 잊힌 후에도 튤립 자체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위해 꽃 농사를 짓는 농부는 반드시 있다. 그 농부의 마음이 최종적으로 승리할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이를 충분히 증명하지 않았던가."


예술작품의 순수성이 꼭 기업의 후원을 받는다고 사라지고, 예술가가 가난해야 증폭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분명한 점은 그 예술작품의 가치가 오직 정치적인 의미와 기득권의 논리만으로 환원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그런다면 후원자를 뒷배로 지닌 예술작품만 살아남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의 가치를 따질 때 더 다양한 기준이 필요한 이유다. 예술작품엔 더 많은 대중이 필요하다. 기득권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만의 시각을 가진 대중이 있을 때 예술작품은 다양한 잣대로 평가받고, 후원자를 뒷배로 두지 않은 예술작품도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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