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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정 May 15. 2023

지난여름에 녹아내린 골판지가 미친 듯이 그리울 때

방관일지 EP.4

    젖은 골판지의 향. 절망에 찌들어 녹아버린 인간의 눈물. 

    빛바랜 깡통.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의 아우성.

    검게 그을린 썩은 나무뿌리. 우월감에 처박힌 인간의 환청. 



    힘이 되는 글귀는 소용이 있을까. 글의 힘은 분명 거대하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크나큰 가능성을 담고 있다. 모든 이가 보이는 대로 해석하지 않는다. 힘이 되는 글귀를 찾는 사람은 너무나도 많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글귀를 찾는 사람도 많다. 그들을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럼에도 글귀를 믿지 않는다. 정말 힘든 사람들은 다른 이정표를 선택하곤 한다. 힘들 때 왜 더 슬픈 영화를 찾아보게 되는가. 절망스러울 때 왜 더 좌절감이 드는 영상을 찾아보게 될까. 울고 싶을 때 왜 눈물이 흐를 수밖에 없는 책을 찾아 읽는가. 답은 의외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들은 힘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힘들면 힘들다고, 절망스러우면 포기하고 싶다고, 울고 싶으면 울고 싶다고. 온전히 자신의 감정에 충실히 임한다. 당사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심리 상태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밑바닥의 밑바닥. 정말 그 사람들은 음지에 박혀 썩어가기를 원할까. 정작 힘이 되는 글귀를 찾아보는 건, 힘을 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힘이 되는 글귀라는 글을 써내린다. 과연 정말로 힘이 되는 글귀일까. 사실 이미 깊은 곳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네가 뭘 알아. 힘든 시기 다 지났잖아. 결국 넌 지금 안 힘들잖아. 굉장히 비관적이지 않은가? 비관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저 현실에 충실할 뿐. 오히려 그들은 자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세상의 중심은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시시덕 거리는 인간들보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길 바랄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자신이 무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자신이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자신이 추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세간에서는 이들도 행복해지기 위해 발악을 하는 중이라고 본다. 행복을 위한 발악. 벗어나고 싶어서 발악할 뿐인데, 누구보다 악착같이 쌓아 올려서 세상을 벗어나고 싶을 뿐인데. 그걸 행복을 쟁취하기 위한 고난과 여정으로 생각한다. 늪에 빠져 허덕여 보지도 못한 인간들이 그걸 하찮게 여긴다. 그래서 네가 힘든 게 대체 뭔데. 네가 뭘 했다고 불행하다고 말하는데. 네가 얼마나 복에 겨워서 우울하다는 감정을 논하고 있냐. 그거 알고 있나? 그걸 모르기 때문에 불행한 거다. 그걸 몰라서 우울하다는 거다. 그걸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으니깐 힘든 거다. 남들과는 조금 다를 뿐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동공의 색깔이. 무뎌진 후각이. 막힌 청각이. 상처 난 미각이. 


    나는 과거로부터 아주 고질적인 악습을 선물 받았다. 모든 경우에서 최악을 기준으로 잡고 생각하는 것. 정말 최악의 최악의 최악. 하루에도 수십 개의 문제들을 이렇게 생각해 왔다. 그리고 결국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놓이면 나는 늘 제3의 선택을 해왔다. 나라는 사람이 모든 걸 받아들일 테니 세상에서 문제 자체가 잊히는 것. 나는 평범한 일반인이다. 숨을 쉴 줄 알고, 말을 할 줄 알고, 볼 줄도 아는 평범한 일반인. 따라서 내가 나를 희생시키기 위해 한 행동은 방관이었다. 항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기대를 시키지 않았다. 여지를 주지 않았다. 나를 가두고 더욱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라는 존재가 사라진다면 내가 얽힐 문제 또한 없던 게 될 테니. 그래서 항상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때면 후회를 하게 되었다. 덕분에 괜찮아졌다. 고맙다. 너는 좋은 사람이다. 최고다. 이런 말을 들을 때가 가장 나 자신이 한심하고 원망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모순적이게 같은 행동을 반복했었다. 반복하고 후회하고, 후회하다가도 또 내면의 나를 마주하고는 반복했었다. 이런 내가 곁에 있어서 추후에 타인이 받을 고통. 그걸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존재 자체를 지우는 건 어떨까. 그러기에는 잔향이 너무 짙어서 향을 악취로 바꾸는 쪽을 택했다. 아, 함부로 벌린 손이 누군가에게 결국 저주로 남겨지게 되었구나. 사람들은 악취뿐인 나를 원하지 않았다. 빛나고 밝은 별일 때의 내 모습을 원했다. 그렇게 하나씩 업보가 쌓여, 소실점 끝에 선 괴물을 만들었다. 결국 도망쳤을 뿐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것을 피해. 


    나는 비관적이지 않다. 낙천적이지도 않다. 행복하지도 않고, 불행하지도 않다. 오직 한 가지 목표만을 추구하며 매달렸다. 내게는 아무런 능력도 없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나를 깎았다. 포기하라는 말만 수백 번을 들었고, 실제로 내가 쏘아 올린 성과도 없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 자존심만 강한 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를 향한 화살을 그대로 맞는 길을 택했다. 가시 밭길을 걸으며 발을 포기했고, 세찬 눈보라를 맞으며 감각을 잃었다. 강한 빛에 이끌려 시각을 버렸고, 비강을 짓누르는 악취에 후각을 유린당했다. 그러면서 나를 만들고 있었다. 내 글의 원동력은 불행이었다.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그러더라. 내 생각은 다르다. 인생은 높이뛰기 같다. 한순간의 도약을 위해, 평생을 바쳐야 하는. 평생에 걸친 도움닫기로 완벽한 뜀박질을 구사하는 순간, 목표물을 뛰어넘는 성취감. 그 단 한순간을 위해 인간은 달린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마라톤. 장기전. 끝까지, 꾸준히 나아가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 막연하다. 현실과 부합한가. 누구는 시작부터 공중을 날고 있다. 누구는 시작도 전에 목표를 넘게 인도해 준다. 누구는 태생부터 목표를 조정할 수 있다. 장기전에 돌입해도 똑같다. 원래부터 행복한 인간은 존재한다. 뛰어난 인간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나는 끝날 줄 모르는 도움닫기를 행하고 있다. 하지만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모든 흐름이 날아오른 순간의 나를 만들 테니. 그래서인지, 나의 여름은 유난히도 길다. 


    항상 나를 비웃는 말들이 너무 많았다. 어딜 가나 비웃음거리만 되었다. 고작 글 몇 자 쓰면서 뭘 할 건데, 작가라도 하려고? 그 고작 작가라도 해보겠다. 저것들이 행복에 겨워 꽃밭을 거닐 때, 나는 글이라도 쓰면서 땅굴을 파겠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무슨 자신감으로 저리 당당한 지 모르겠다. 그런 말들을 수없이 쏟아내 봐라. 날이 선 말들이 계단을 이룰 때, 나는 그것들을 밟고 올라가 빛에 닿을 테니. 나는 불행을 파고들 것이다. 내가 더 독하게 변할 수 있게. 나는 나를 망가뜨릴 것이다. 내가 더 악착같이 변할 수 있게. 그래도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 것이다. 여름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누군가는 이것을 보고 허무맹랑하다며 비웃을 수도 있다. 나도 이 글을 쓰면서 꽤나 많이 놀랐다. 생각보다 많은 얼굴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 글을 처음 쓸 때와 다르게 난 꽤나 많이 변했다. 그렇다고 무뎌지거나 한심해진 건 아니다. 과거와는 다르다. 나 철없는 아이같이 말을 지껄이고, 당당히 증명해나가고 있다. 여름의 흐름. 그 어느 때보다 후덥지근한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다짐했다. 다시는 넘어지지 않을 것을. 너무 단단하면 오히려 쉽게 부서질 것 같으니, 모든 걸 흡수할 수 있는 물렁한 인간이 되어보겠다. 물렁하지만 무엇보다 속이 질긴 그런 인간말이다. 




    젖은 골판지의 향. 절망을 받아들인 인간의 자조.

    빛바랜 깡통.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환호.

    검게 그을린 썩은 나무뿌리. 우월감을 느끼기 위한 인간의 이명. 




    N은 온점을 끝으로 조심스럽게 노트를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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