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일지 EP.6
평소처럼 지하철을 탄 날이었다. 문 앞에 기댄 채 지하철 밖을 내다봤다. 미지근하게 피어오른 주홍빛 노을. 피아노 건반처럼 줄줄이 늘어선 건물들. 늘 보던 풍경이었다. 지하철은 느리지도 않고 그렇게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창밖의 풍경은 저마다 다른 색의 물감이 뭉개지듯 서서히 스쳐 지나갔다. 눈동자에 담기도 전에 사라지는 풍경이 마치 내 시야를 부정하는 것만 같았다. 지하철은 그렇게 터널을 향해 쉼 없이 달렸고, 순간 창밖이 검게 물들었다. 그때 나는 엄지손가락 한 마디조차 안 되는 두께의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게 되었다. 눈꺼풀에 아슬하게 걸친 머리칼. 무얼 바라보는지 알 수 없는 텅 빈 눈. 살집이 흘러내려 수척해진 인상. 나는 잠시동안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푹 숙였다. 망가진 내 모습을 애써 모른 척하며 땅을 들여다보길 선택한 것이었다. 분명 그랬을 텐데. 일그러진 내 얼굴이 머릿속에 떠다녔다. 그래 아주 조금은, 정말 조금은 놀랐던 것 같았다. 기억 속에 나는 늘 웃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던 건지 코끝이 시큰거렸다.
열심히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충 살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항상 열심히 하고 싶지 않았다. 잘하고 싶었다.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살았더니, 조금 더 열심히 했으면 잘했을 거라는 말만 들었다. 그리곤 내게 물었다. 더 열심히 할 수 있겠냐. 더 잘할 수 있겠냐. 나는 그 말들을 들으면 항상 멋쩍게 웃었다. 당연히 할 수 있다는 듯이.
잘하고 싶다는 강박은 늘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사실 나도 잘 몰랐다. 내가 열심히 할 수 있는지. 내가 잘할 수 있는지 몰랐다. 이렇게 하면 내일은 조금 다를까, 저렇게 하면 이틀 뒤에는 다를까. 그저 길 잃은 아이처럼 앞만 보고 걸었다.
내일의 내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날들이 늘었다. 힘든 하루여도 힘내라는 말. 수고하라는 말. 재밌는 시간을 보내며 행복한 하루를 보내라는 말. 그럴싸한 위로가 떠오르지 않았다. 나 자신이 가진 아픔을 공감하지 못한 채 나아가는 날들이 늘었다. 그렇게 고민이 늘어갈 때즈음, 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내가 되고 싶은 건 어른이 아니었다. 홀로 책임을 질 나이가 되었다더라.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내가 무얼 원하는지도 모르는데 세상에 버려졌다. 나를 알고 싶었고, 나를 들여다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애처럼 굴고 싶은 마음이 솟았다. 애들은 어른이라도 될 수 있잖아. 어른이 된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지?
우리는 왜 어른이 된 걸까. 내게 어른은 너무 어렵다. 아마 나는 평생 어른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가겠지. 나는 어른이니깐.
할 수만 있다면 나를 꽉 안아주고 싶다. 정말 진심을 다해 안아주고 싶다. 가끔은 내려놔도 된다고.
나도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항상 밝게 웃었으면 좋겠다. 좋은 생각만 하면 좋겠다. 안 아팠으면 좋겠다. 그런 내가 아니어도 그런 척 살아가겠지. 나는 어른이니깐.
내가 되고 싶은 건 어른이 아니었는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