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방관일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정 Jun 11. 2023

내가 되고 싶은 건 어른이 아니었는데

방관일지 EP.6

  평소처럼 지하철을 탄 날이었다. 앞에 기댄 지하철 밖을 내다봤다. 미지근하게 피어오른 주홍빛 노을. 피아노 건반처럼 줄줄이 늘어선 건물들. 보던 풍경이었다. 지하철은 느리지도 않고 그렇게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창밖의 풍경은 저마다 다른 색의 물감이 뭉개지듯 서서히 스쳐 지나갔다. 눈동자에 담기도 전에 사라지는 풍경이 마치 시야를 부정하는 것만 같았다. 지하철은 그렇게 터널을 향해 쉼 없이 달렸고, 순간 창밖이 검게 물들었다. 그때 나는 엄지손가락 마디조차 되는 두께의 유리창에 비친 얼굴을 보게 되었다. 눈꺼풀에 아슬하게 걸친 머리칼. 무얼 바라보는지 없는 텅 빈 눈. 살집이 흘러내려 수척해진 인상. 나는 잠시동안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 망가진 모습을 애써 모른 척하며 땅을 들여다보길 선택한 것이었다. 분명 그랬을 텐데. 일그러진 얼굴이 머릿속에 떠다녔다. 그래 아주 조금은, 정말 조금은 놀랐던 같았다. 기억 속에 나는 웃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던 건지 코끝이 시큰거렸다.


  열심히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충 살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항상 열심히 하고 싶지 않았다. 잘하고 싶었다.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살았더니, 조금 더 열심히 했으면 잘했을 거라는 말만 들었다. 그리곤 내게 물었다. 더 열심히 할 수 있겠냐. 더 잘할 수 있겠냐. 나는 그 말들을 들으면 항상 멋쩍게 웃었다. 당연히 할 수 있다는 듯이. 


  잘하고 싶다는 강박은 늘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사실 나도 잘 몰랐다. 내가 열심히 할 수 있는지. 내가 잘할 수 있는지 몰랐다. 이렇게 하면 내일은 조금 다를까, 저렇게 하면 이틀 뒤에는 다를까. 그저 길 잃은 아이처럼 앞만 보고 걸었다. 


  내일의 내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날들이 늘었다. 힘든 하루여도 힘내라는 말. 수고하라는 말. 재밌는 시간을 보내며 행복한 하루를 보내라는 말. 그럴싸한 위로가 떠오르지 않았다. 나 자신이 가진 아픔을 공감하지 못한 채 나아가는 날들이 늘었다. 그렇게 고민이 늘어갈 때즈음, 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내가 되고 싶은 건 어른이 아니었다. 홀로 책임을 질 나이가 되었다더라.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내가 무얼 원하는지도 모르는데 세상에 버려졌다. 나를 알고 싶었고, 나를 들여다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애처럼 굴고 싶은 마음이 솟았다. 애들은 어른이라도 될 수 있잖아. 어른이 된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지?


  우리는 왜 어른이 된 걸까. 내게 어른은 너무 어렵다. 아마 나는 평생 어른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가겠지. 나는 어른이니깐. 


  할 수만 있다면 나를 꽉 안아주고 싶다. 정말 진심을 다해 안아주고 싶다. 가끔은 내려놔도 된다고.


  나도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항상 밝게 웃었으면 좋겠다. 좋은 생각만 하면 좋겠다. 안 아팠으면 좋겠다. 그런 내가 아니어도 그런 척 살아가겠지. 나는 어른이니깐. 




내가 되고 싶은 건 어른이 아니었는데 말이야. 






매거진의 이전글 편의점처럼 살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