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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방관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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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정 Jun 19. 2023

우리는 이미 죽은 별을 쫓고 있는 거야

방관일지 EP.7

    저 별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보일까. 

    나는 이렇게 별들을 선명히 눈에 새기고 있는데, 별들은 내가 보이지 않겠지.


    남들이 예쁘다며 구경하는 별들이 내겐 아름답지 않다. 울적하다. 별을 보고 나면 알 수 없는 먹먹함이 든다. 사실 지금 우리가 보는 별의 모습은 현재의 모습이 아니다. 별과 우리의 거리는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다. 별이 우리에게 보이기 위해서는, 별에서 발생한 빛이 그 측정할 수 없는 거리를 열심히 달려와야 한다. 우리가 보고 있는 별은 엄청 오래 전의 모습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미 오래전에 죽어버린 별일 수도 있다. 


    별이 이렇게 많은데

    하나쯤은 정말로 바로 앞에 있는 거 아닐까. 


    매일 아파트 옥상에 올랐던 때가 있었다. 밤 10시만 되면 정해진 규칙처럼 엘리베이터에 올라탔었다. 아무것도 없는 옥상 바닥에 조용히 앉아 더 높은 곳을 바라봤었다. 하늘은 늘 새카맣게 물들어 있었다. 별이라도 보였으면 좋았겠지만 그것조차 매일매일 달랐다. 어떤 날은 별이 보이고 어떤 날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늘 하늘을 바라봤었다. 하늘의 검은 물이 흘러내려 나도 검게 칠해버릴 것만 같았다. 옅은 호흡조차 가빠질 만큼 응어리가 차오르면 바닥에서 일어났었다. 그리곤 옥상 난간에 팔을 걸친 채 동네 풍경을 바라봤었다. 눈앞에 놓인 현실을 바라보면 거짓말처럼 감정이 식었다. 꿈틀거리며 날뛰던 응어리가 단단하게 굳어 단전으로 추락했고, 희뿌옇게 번진 시야가 말끔하게 변했다. 


    우리는 이미 죽은 별을 쫓고 있는 거야

    정작 닿으면 부서질 그런 것들.


    집에 늦게 들어올 핑계를 점점 늘리게 되었다. 이유는 옥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께는 늘 미안했었다. 그래서 집에 들어갈 땐 더 환하게 웃었다. 오늘 하루도 즐거웠다고 단지 바람을 좀 쐬고 싶었다고, 생각할 것이 있었다고, 누군가와 통화를 좀 하고 싶었다고. 타인을 만날 때도 같았다. 평소보다 더 거칠게 굴었고 못된 사람인 척 행동했었다. 나쁜 사람으로 사는 게 지쳤을 때쯤 소중한 인연들을 잃었다. 못난 내 과거는, 다시 시작하고 싶어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곳으로 향하게 된 계기였었다. 그곳에서는 하염없이 웃었다. 정신을 반쯤 놓은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행동도 많이 했었다. 그러다 내가 놓친 인연들과 비슷한 사람을 보면 손을 내밀었다. 


    넌 별처럼 빛나는 사람이야.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고마워.


    나를 의지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죄책감도 커졌다. 내가 더 크게 활짝 웃게 된 이유였다. 웃을수록 비어갔다. 비어갈수록 행복이라는 단어가 멀어졌다. 웃어도 왜 웃는지 몰랐다. 힘들지가 않아서 힘들었다. 차라리 힘들고 싶은데 힘들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그때부터 옆사람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함께 들기로 마음먹었다. 나 이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기로 했었는데. 세상을 미워하는 만큼 살펴보고 느껴보기로 했다. 하루는 A의 아픔을, 또 하루는 B의 고통을, 그다음 하루는 C의 눈물을. 죄책감을 지우는 대신 덧칠해 나가기로 했다. 


    떠나려 하는 모든 이에게

    남겨질 나는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

    저 별은 그 답을 알까.


    이따금씩 알 수 없는 답답함과 열기가 몸을 휘감곤 한다. 그럴 때면 나라는 독을 품고 있는 내게 더 큰 상처가 생겨버렸다고 이해했다. 원래는 세상의 소리가 두려워 귀를 막았는데, 요즘은 혼자 남겨진 세상이 두려워 귀를 열어보곤 한다. 나를 괴롭히는 소음이 어느새 사라지고, 내 목소리가 소음이 되어 세상이 가득 찰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 귀를 막고 있는 난, 한 번도 웃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지금까지 쭉 두려움에 떨고 있다. 


    저 별도 답은 알 수 없을 거야

    이미 네가 어제 봐버린 별일 수도 있으니깐

    하지만 말이야. 


    술을 마시면 자주 밖에 나가곤 한다. 어떨 때는 밖에 있는 나를 찾으러 사람들이 나올 때도 있다. 웃지 못하는 내가 무슨 말을 꺼낼지 몰라 도망치는 건데, 기어이 나를 찾아내고야 만다. 한 번, 딱 한 번 속에 있는 말을 조금 해봤는데 영 별로였던 기억이 있다. 사실 그건 말하려고 마음먹은 말이었고 언젠가는 꼭 할 말들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내 깊은 곳에 있는 말을 꺼내게 될까 무섭다. 나만큼은 웃어야 하는데, 나는 언제나 든든하게 앞장서야 하는데, 나는 네게 의지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바닥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던 나는 그럴 수 없으니깐. 나는 조용한 옥상에 홀로 앉아 하늘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는데, 요새는 밴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과 가까운 내가 저 낮은 바닥까지 추락할 수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고작 50센티도 안 되는 밴치에서밖에 떨어질 수 없다. 


    그만큼 나를 끌어올린 세상이 또다시 변화하여 내게 등 돌릴 때가 걱정이 된다. 세상은 변한다. 사람은 안 변한다지만 가장 유동적으로 변하는 게 사람 같다. 나 역시 바뀌었으니깐. 다 제자리에 있으면 좋을 텐데. 세상이든 사람이든 그 무엇이든, 어제의 모습은 잊어버렸는지 바뀌어 가기만 한다. 본질은 저 멀리 있으면서 가까운 곳에서 자신을 찾으려 한다. 과거의 나를 한 순간만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역시 저 별은 죽은 별이라고. 


    내일의 별은 어제의 너고

    어제의 너는 내일의 별보다 밝게 빛을 낼 거야

    내일 밤하늘에 너를 보여야 하니깐.


    우리 모두 떠나려고만 하지 말자. 악착같이 살아서 소리치자. 나 여기에 있다고. 밤하늘에 우리를 걸어둔 채 내일을 준비하자. 희미해져 가는 행복을 향해 손을 뻗어보자. 그게 공허한 우리를 채울 양분이니까. 더 활짝 웃어보자. 우리의 웃음을 보고 웃는 누군가가 웃는 이유가 될 수도 있으니깐. 내려놓고 기댈 곳을 찾아다니지 말자. 반대로 나에게 기대고 있는 무언가의 온기를 느껴보자. 적어도 그렇게라도 살아보자. 내일의 별이 될 오늘의 나를 위해서. 


    모두가 어떤 형태로 변할지는 모르지만

    우리에게서 멀어져도 행복하기만 하면 좋겠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라면 덜 미워할 수도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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