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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정 Oct 30. 2023

다 모른 척 외면하며 살아가는 법

방관일지 EP.13

    알고도 모른 척

    모르면서도 아는 척, 달라진 건 나 하나였는데


    알고도 모른 척하며 살아왔다.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올 땐 귀를 막았고, 보기 싫은 것들이 보일 땐 눈을 감아버렸다. 한시라도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부정적인 감정이 피어오를 땐 애써 괜찮다며 나를 다독였고, 끔찍한 생각이 떠오를 땐 심호흡을 하며 나를 가라앉혔다. 나를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한 건 즐겁고 행복한 에너지가 아닌 고요하고 잔잔한 고독이었다. 기댈 곳 하나 없어 휘청일 때 잿빛으로 변한 감정들이 나를 지탱했다. 도망치는 게 아니라며 수십 번 되뇌며 착각 속에서 살았다. 그저 이 순간만 외면하면 모든 게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거울 속에서 나를 보고 있던 그 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그 눈


    누르고 또 눌렀다. 어떻게 해야 먹먹한 응어리를 뱉어낼 수 있을지 몰랐다. 거울이 없으면 나를 볼 수 없듯이, 나는 나를 돌볼 수 없었다. 어쩌면 돌볼 생각이 없었다는 말이 더 맞았다. 가장 중요한 게 나라는 사실을 비교적 늦게 깨달았다. 그것도 아주 잘못된 방식으로. 우울한 감정들은 어느새 기괴한 방식으로 뒤틀리고 있었다. 우울했던 날들을 저주하며 오직 이렇게 되어버린 것들에 대한 표적 없는 분노. 반드시 이 모든 걸 바로잡겠다는 허영. 나는 내가 누구보다 이성적이게 움직인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누구보다 감정적이게 불순한 내면을 표출했었다는 사실을 너무 뒤늦게 알았다. 


    과거에 사로잡혀

    길을 잃고 나니 알겠더라


    끊임없이 독한 감정만을 품고 달렸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혹여나 내 오물들이 누군가에게 튈까 봐 접근조차 꺼려했다. 나는 혼자였어야만 했다. 앞을 보지 않은 채 쉼 없이 달렸고 어느 분기점에 다다랐을 땐 이미 모든 걸 잃고 말았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 이상적이고 계산적인 관계. 우울하지만 늘 웃고 있는 겉모습. 주변에 남아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달리기를 멈추고 말았다.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걸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놓치고 있던 것이 많았다는 것을. 


    다 모른 척 외면하며 살아간다는 건

    외면하는 척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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