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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정 Sep 15. 2023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할 용기

방관일지 EP.12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할 용기를 얻은 때는

    누군가가 죽도록 좋아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미워할수록 한없이 나쁜 감정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이 하찮고 버거웠다. 고작 '미움'이라는 단어가 카테고리에 추가될 뿐인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변할 수 있는지 놀라웠다. 적어도 내게 미움이라는 감정은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나는 그 사람이 너무 좋은데 내가 찌르지 않으면 찔릴 것 같아서. 이런 이기적인 변명이라도 하면서도 합리화시키고 싶은 세상을 버티고 버텨봤다. 사실 나는 누군가를 미워할 용기보다, 나를 미워할 용기가 더 필요했다. 


    끊임없이 추락하면 어느새 그게 익숙해지더라

    그래서인지 밑바닥에 닿았을 때 아직도 떨어지고 있는 줄 알았다. 


    떠나려 하는 이의 모습은 너무도 평온했다. 정말 어느 한순간 갑자기 우리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예고도 없었다. 이미 사라진 후에 그렇게 되었다는 말만 전해달라고 했을 뿐, 더 이상 손써볼 도리도 없었다. 그제야 모든 것들이 보였다. 그의 말과 자잘한 행동. 사소한 말버릇과 어딘지 어색한 미소까지. 그가 남긴 마지막 웃음은 퍽퍽한 플로랄폼 같았다. 그때 우리가 눈물을 흘려주었다면 부서지지 않았을까. 


    미워한다는 감정을 들키는 건 한 순간이었다.

    미워하기까지 걸린 시간에 비해


    결국 끝은 항상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열린 결말은 없었다. 항상 굳게 닫힌 결말이었고 이는 틀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소한 결정 하나부터 중대한 인생사까지 전부 확률을 따지고 옳다고 믿은 쪽만 바라봤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예전과 비교해 확실히 달라진 건 주변이었다. 그럼에도 난도질당할 걸 두려워하여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면 그런 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사실을 깨닫는 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나는 그리 강하지 않다고 말하듯

    사실 나는 그리 모질게 굴 줄 아는 사람도 아니었다.


    누군가를 미워해야겠다는 생각은 보통 감정에 의해 변질된 마음보다는 결심에 가까웠다. '내 마음이 상해서 더 이상 널 바라볼 수 없겠어.' 보다는, '내가 너를 미워해야겠어. 그래야 맞는 거니깐.' 이렇게 생각을 더 많이 했었다.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랬다. 그래서 실제로 미워한다고 말한 대상을 미워한 적은 별로 없었다. 겉으로는 저게 정말 밉다고 말하고는, 뒤돌아서서 세상 잃은 것처럼 종일 하늘만 바라봤다. 내가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었어서. 


    생각해 보면

    남을 아프게 할 땐

    내가 당하면 가장 아플 것 같은 걸로 아프게 했다.

    

    너를 아프게 한 건 미안하지 않았다. 너를 아프게 해서 함께 힘든 우리에게도 미안하지 않았다. 나를 비참하게 만든 것도 미안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를 아프게 한 것과 똑같이 행동하고 있는 그게 너무 미안했다. 그게 얼마나 아픈지 알면서, 그게 얼마나 힘들지 알면서도 그렇게 한 게. 그게 너무 미안했다. 수취인 불명의 사과가 점점 쌓이고, 주소지 없는 속죄의 글이 늘어날수록 더욱 강하게 느꼈다. 아, 내가 가장 혐오했던 것들과 비슷해지고 있구나. 


    나도 모르게 학습해 버렸다.

    미워할 때의 태도를 

    미움받는 사람을 바라볼 때의 악의를


    주기적으로 왜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에 대한 고찰을 해왔다. 도달한 해답은 매번 달랐다. 왜 나는 힘들다고 느껴야 하는가. 왜 나는 혼자라고 생각해야 하는가. 왜 나는 불면증에 절여져야 하는가. 왜 나는 누군가를 미워해야 하는가. 왜 나는 아프게 해야 하는가. 왜 나는 왜 모든 걸 닫아놓고 이렇게 어딘가에라도 남겨서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는가. 이번에 내린 해답 또한 저번의 해답들과 달랐다. 이번만큼은 해답을 내리지 못했다. 


    모든 걸 미워해도 

    나만큼은 미워하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본심을 나눌 수 없었다. 


    한 때 레퀴엠에 빠져 있던 적이 있었다. 레퀴엠 중에서도 화려하고 밝은 레퀴엠이 매력 있다고 생각했다. 우울하고 처진 건 뻔하니깐 그랬다. 하지만 밝은 레퀴엠을 듣진 않았다. 정신없는 선율 때문에 머리 비우기에 아주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밝은 레퀴엠처럼, 나를 마주 보며 웃고 떠드는 발랄한 네가 정신없어서 그렇게 티를 내는 건 아니었을까.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할 용기를 가진다는 건

    누군가를 죽도록 바라고 있을 때

    누군가를 죽도록 원했기에 가질 수 있었던 감정

    꼭 내가 아닌,

    네가 가졌을 수도 있는 


    매번 써보고 매번 읽어도 헷갈리고 어려운 인류 최대의 난제. 관계, 그리고 감정. 이제 나를 미워하지 말아 달란 말을 안 하기로 했다. 그 감정이 지닌 무게를 알았기에. 조금이라도 나눠 들어보기로 생각을 정리했다. 누군가가 미워하는 나를 함께 미워하고, 함께 미워하지 말아 가기를 바라고 있다.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할 용기

    이제는 그만 미워할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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