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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정 Aug 18. 2023

혼자라고 생각말기

방관일지 EP.11

    혼자라고 생각될 때,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혼자라는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유독 많이 했다. 남들과 함께하고 있어도 언젠간 혼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혼자가 가장 편했고, 혼자가 가장 평화로웠다. 단지 혼자 다니면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이 듣기 거북했다. 그래서 혼자를 포기한 경우도 많았다. 혼자는 사람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혼자인 사람들은 늘 깊이를 알 수 없는 그림자를 이끌고 다녔다. 사람들이 지레짐작하여 던진 말들은 전부 그림자가 먹어치웠다. 그림자는 말들을 배불리 먹을수록 짙고 길어져 누군가가 올 수 없도록 단단한 영역을 만들었다. 혼자인 사람들이 함께가 될 수 없는 이유였다. 


    멀어지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나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주변에선 혼자인 사람들을 꺼려했다. 분명 혼자인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둥, 성격이 얼마나 지저분해야 저렇게 혼자 다니냐는 둥 무책임한 뒷말을 걷잡을 수 없이 내뱉었다. 나는 그들과 어울릴 수 없었다. 어울릴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난 뒤부터,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혼자가 가장 편했고, 혼자가 가장 평화로웠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를 늘 혼자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조금은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혼자가 되는 것이.


    혼자라면 더는 혼자가 될 수 없다. 잃을 게 없다는 건 나를 강하게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다. 혼자 길을 걸었고, 혼자 주변을 둘러보고, 혼자 간단한 식사를 했다. 그리곤 혼자 서점에 갔으며 혼자 노래방에 들러 미친 듯이 노래를 불러댔다. 끝에는 혼자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차도를 가로질러 집으로 향했다. 혼자 지내는 일상들이 이토록 평화로운데 자꾸만 무엇에 미련이 남는 건지 집에 가기 싫었다. 나는 그대로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내 무게를 땅에 조금 나눴을 뿐인데, 이토록 편안한 느낌이 들 줄은 몰랐다. 


    그들의 손을 잡으면 

    언젠가 놓치게 될까 봐.

    그땐 나도 나를 놓치게 될까 봐. 


    함께하는 건 내게 늘 낯선 일이었다. 지금도 누군가 옆에 있으면 넋을 잃고 멍하니 있을 때가 있다. 혼자가 아닌 세상에 내가 놓여 있다는 게 신기해서, 기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묘한 기대감에 부풀어서 말이다. 타인에 대한 기대감을 지우는 건 가장 간단하면서 힘든 일이다. 사실 그러면서 나는 늘 아직 만나지 않은 누군가에게 기대감을 품고 살았다. 이번에야말로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때부터였다. 

    손을 잡는 것이 아닌, 

    손을 내밀기로 한 것이.


    나도 혼자면서 정작 혼자인 사람들이 눈에 걸렸다. 혼자인 사람들에게 다가가면 전부 하나같이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저주를 퍼부을 때의 눈. 내가 가장 싫어하는 눈이지만 누구보다 그 눈의 의미를 알고 있기에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나를 좀 봐달라고, 나를 좀 알아 달라고, 나 여기에 있다고. 겉으론 담담하면서 그렇게 외치고 있는 내 눈이 나는 정말 싫었다. 


    결국 나를 알아본 건 나뿐이었다. 곁을 내어줄 수 있을 때 내가 가진 건 나뿐이었다. 하지만 혼자인 사람들은 달랐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본인을 알아가는 중이었고, 나는 그런 사람들을 찾아낸 것이었다. 저들은 나처럼 혼자가 되지 말기를. 괜한 오지랖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손을 뻗은 후였다. 내가 싫어하는 눈을 보기 싫다는 핑계로 나는 누군가의 옆을 택하였다. 왜 자신에게 다가왔냐는 물음에 매번 같은 대답을 뱉었다. 나도 혼자 있는 게 좋아서. 


    혼자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 때,

    그땐 나를 생각해 줘.

    네 옆에 아무도 없더라도 나만큼은. 


    누군가의 옆이 되어주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흡족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나 같은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그땐 내가 너무 힘들어서, 너무 깜깜해서, 너무 어려서 그들의 손을 잡지 못했었다. 그게 그렇게 마음 깊숙이 남았는지 내 손을 잡은 이들이 예전의 나처럼 옆을 바라보지 않는 건 아닌지 불안하기만 하였다. 사실 넌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줘도 실상 알아듣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조바심 내지 않기로 하였다. 나는 모든 것을 미워하며 살았다. 아름다운 하늘이 미웠고 푸른 강물이 미웠으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청량한 소리들이 미웠다. 모든 걸 무던하게 견디고 있는 나 자신이 미웠고 어디 가서 힘들다는 말 한마디조차 하지 못하는 내가 끔찍이도 싫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힘겹던 시기를 지나올 수 있었던 건 모두 이 미움 때문이었다. 너무 미워서 무너지는 것이 아닌, 온 세상에 마이너스한 감정을 알리고 싶었다. 지금 만약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있는 힘껏 세게 안아주고 싶다. 다 괜찮아질 거라고. 지금의 내가 이렇게 꿋꿋하게 서 있다고. 


    그러니 부디 그들이 나처럼 모든 걸 미워하며 나아지길 바라지 않았다. 미워하는 건 세상 그 어떤 일들보다 힘들었다. 미워할 때 내뿜은 검은 연기들이 아직까지도 내 몸에 들러붙어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눈을 감으면 덮쳐오는 악몽이, 가만히 있으면 몰려오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계속 괴롭혔다. 다 잊은 거냐고. 어떻게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거냐고. 나는 모든 걸 미워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이제는 그만 미워하고 싶었다. 이제는 미움받고 있는 누군가에게 손을 뻗으며 살고 싶었다. 내 손을 잡은 누군가가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순간이 온다면, 그제야 과거의 나를 미워하며 살고 싶었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순간

    내 옆에는 네가 서 있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세상 어딘가에는 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는 이가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사실 나는 혼자 살아갈 만큼 강하지 않으니깐. 또 누군가를 잃고 살아갈 만큼 담담하지 못하니깐. 그냥 그저 이유 없이도,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추락하는 순간에도

    너를 받아야만 하는 차디찬 바닥이 있다. 

    비참하게 자조하더라도 그런 당신을 위해 머물 테니,

    혼자라고 생각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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