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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정 Aug 09. 2023

너를 아프게 한다는 건

방관일지 EP.10

    내가 너를 붙잡으려는 단 한 가지 이유.

    우리라는 단어를 더 이상 쓸 수 없을까 봐. 


    예고된 이별과 갑작스러운 이별 중 어떤 이별이 더 슬픈 이별일까. 왜 하필 누군가와 멀어질 때 쓰는 단어가 '이별'일까. 나는 이별이라는 단어가 허무하기에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많고 많은 단어 중 괜히 별이라는 어감이 붙어 슬퍼진다. 우리가 떨어질 때 이별이라는 단어를 쓰기에 저 하늘에 별을 잡을 수 없는 것만 같아서. 너랑 나는 애초에 닿을 수 없는 거리에 놓여 있던 것만 같아서. 


    내가 누군가를 아프게 한다는 건,

    나와의 이별로 상처받지 않았으면 한다는 구차한 핑계.


    나는 한 때 습관적으로 관계를 끊었다. 관계는 그 어떤 마약보다 중독성이 있기에 쉽사리 빠져나올 수 없었다. 내게 부드러운 손을 내밀면 잡고 싶고, 따뜻한 시선을 보내면 그 시선을 믿고 싶어졌다. 그 어떤 말도 들어주던 태도와 당연한 듯 내어준 어깨에 기대어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다. 한없이 관계에 빠질 때면 외로움이라는 금단현상이 몰려오곤 했었다. 외로움은 겪어본 통증 중 가장 집요하고 고통스러웠다. 나를 드러내면 네가 나를 싫어하게 될까 봐. 나를 보여주면 네가 나를 더 이상 안아주지 않을까 봐. 그래서 그렇게 모질게 너를 밀어냈었다. 언젠가 내가 너를 잊게 된다면, 너도 똑같이 아플까 봐. 내가 그랬기에 남들도 다 그럴 줄 알았다. 


    평생 딱 한 명을 위해 살아왔는데

    한 명이 평생 나타나지 않는다면 나는 어찌해야 할까.


    하얀 국화 속에서 고개를 내민 너의 사진을 보고도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너는 나를 기억하지 못할 테니 거기서 나를 그리워할 일은 없을 거 같았다.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너에게 더 잘해줄걸, 너를 조금 더 자주 찾아갈걸, 너를 보면 살갑게 굴 걸. 이런 생각들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냥 이제 너를 보기 위해선 사진을 꺼내야 한다는 게 착잡해서, 그래서 밤새도록 네 앞에 놓인 향을 갈았다. 


    내가 너를 붙잡을 수 없는 단 한 가지 이유.

    우리는 함께 했기에 이별을 마주했으니깐.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만나지 않았으면 이별할 순간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좋은 추억만 남기자는 말은 늘 가장 하기 힘든 말이다. 너와 이별하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불행해서 추억들이 모조리 타버렸으니깐. 향의 쿰쿰한 냄새가 짙어질수록, 길쭉한 다리가 잿빛으로 변해갈수록 서서히 잊혔다. 이 순간 가장 잊고 싶은 한 가지. 너를 처음 만난 순간.


    내게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너를 아프게 할 자신이 없어서.


    이별에 대해 생각할 땐 특정한 대상을 떠올리지 않는다. 단순히 '이별'이라는 단어를 봤을 때 느끼는 감정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릴 뿐이다. 지나간 인연들을 떠올리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나라는 인연이 사라져 행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원망하지 않는다. 단지 또 다른 누군가와 이별을 할 때 함께 생각나는 것이 영 유쾌하지 않다. 


    너를 아프게 한다는 건,

    내가 아플 준비가 덜 되었다는 것.

    손을 내밀 용기조차 없다는 것.


    이별을 받아들이는 순간, 놀라울 만큼 고요하고 차분한 내가 싫어진다. 차라리 엉엉 울며 감정을 토해내면 좋을 거 같다. 울 수 없다면 우울하게 쓰러져 있기라도 하든가. 평소처럼 창밖을 내다보고, 평소처럼 식사를 하고, 평소처럼 밤거리를 거닌다. 모든 걸 평소처럼 해내고 있는 내가 대견스럽기는커녕 두려울 지경이다. 


    내가 너를 아프게 한다는 건,

    내가 너보다 더 비겁하기 때문에

    그걸 감추기 위해 애써 있어 보이는 척하는 것.


    다시는 이별이라는 엔딩을 마주하고 싶지 않기에 달라지는 것. 남들도 다 그럴 줄 알던 걸 다르게 생각하는 것. 어쩌면 그 엔딩에도 에필로그가 있다고 굳게 믿고 싶은 것. 그러면서 조금씩 세상에 익숙해지는 것. 


    네가 나를 아프게 한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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