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계약해지 일지 #7
지루하게 이어지는 합의의 과정에서 기관의 평판과 프로젝트 공정 일정을 고려해야 하는 나는 그 사람을 어떻게서든 설득해 빨리 이 과정을 끝내고 싶었다. 잘못을 저지른 건 그 사람이지만 책임져야 할 것이 많은 나는 그 사람의 결정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그러기에 이 과정에서 돈 말곤 잃을 게 없는 그 사람은 갑이 되고, 직원과 프로젝트와 기관의 평판을 생각해야 하는 나는 을이 되어버렸다.
처음 계약 해지 이야기가 오간 후, 조금 더 구체적인 사유와 해지에 대한 조건을 이야기하기로 한 두 번째 만남에서 그 사람은 자신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고, 자신을 근거 없이 모함한다며 노여움을 토해냈다. 매사에 성실하고 진실한 자신을 성희롱과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내몰려고 한다며, 그리고 자신이 했던 발언을 확인하는 우리 측 변호사님 말에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시종일관 억울해했다.
합의의 자리라고 생각했던 우리 측과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러 온 그 사람과의 대화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이날의 대화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무고한' 자신을 성희롱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모함을 씌워 부당해고를 시키려 한다는 주장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프로젝트 발주처의 책임자를 찾아가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또한 계약 해지 이야기가 담긴 녹음파일을 외부인과 우리 측 프로젝트 담당 직원(그 사람과 다시 마주칠까 봐 그 사람이 사무실 찾아오는 시간엔 화장실도 오가지 않던 우리 팀 직원들)들이 있는 단체 카톡 창에 올리기도 했다.
프로페셔널로 나서야 하는 자리에서 나는 늘 그 사람의 입을 통해 '여성' 혹은 'Lady'로 소개되어야 했다. 나의 동료들에게 고압적인 태도와 폭언을 이어가는 그 사람을 지켜봐야 했다. 회의를 진행하거나 프로젝트에 대한 의견을 낼 때 듣지 않는 그 사람에게 나는 모멸감을 이겨내며 끝까지 내가 전해야 할 말을 마무리해야했다. 그럼에도 그 사람을 존중하고 어른에 대한 예의를 다해야 했기에 외부 회의 석상에서 졸거나, 외부 파트너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을 할 때에도 나는 이를 지적할 수가 없었다. 합의가 이어질 때마다 내부에서 은연중에 흘러나오는 질책의 시선을 견뎌야만 했다. 성희롱 발언과 폭언의 피해자이기도 한 나는 우리 팀의 관리자이기에 가해자인 그 사람을 매번 마주하고 모든 기록과 진술을 정리해야만 했다.
우리는 그 일을 기억해내며 진술서를 작성하는 과정이 괴로웠고, 혹시나 마주치거나 다시금 단체 카톡 창에 그 사람의 일방적 주장이 올라올까 두려워했다. 발주처는 그 사람의 행보를 염려하며 자신들이 연루되거나 프로젝트에 지장을 주면 우리 기관에 귀책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자신이 우리로 인해 큰 고통을 받고 있다고 내게 카톡을 보내던 그 사람에게 나는 ‘당신으로 인해 나는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일자 별로 기록해 둔 나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을 다시는 보고 싶지도 않고 어떤 경로를 통해서도 목소리를 듣거나 글로도 마주치고 싶지 않다.
피해자는 우리인데 그 사건과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도 불편했기에 떠들고 다니지 않았다. 가해자인 그 사람은 자신이 피해자라며 이 일과 관계없는 많은 이들에게 우리가 발송한 내용증명을 보내면서까지 자신의 무고함을 입증하고자 했다.
그 사람으로부터 온갖 잡다한 별 쓸모없는 소리로 인해 수치심을 느끼고 괴로운 이들은 우리 팀인데, 우리 팀 모두는 그 사람이 사무실에 찾아오는 날이면 서로에게 복도를 돌아다니거나, 화장실도 가지 말라며 메시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한국 사회가 부여하는 권위는 가해자가 피해자로 바뀔 수 있게도 해줄 만큼 강력한 것일까
급진적인 사회 운동가나 페미니스트가 아닌 나는 내가 마주한 상황 속에서 점점 더 불편한 시각으로 이 사회를 바라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