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계약해지 일지 #10
중재원을 통해 그 사람의 중재신청서가 접수되었다.
우리가 보낸 내용증명서의 모든 내용을 부정하며 그 사람이 보내온 답변서에 계약 해지가 부당하다는 점을 더 부각해 자신이 1년을 더 일했다면 받았을 금액에 해당하는 위로금을 지급하라는 내용이 담긴 문서를 보내왔다.
아주 다행인 것은 이제 이 일에 대한 내가 평정심을 조금 찾았다는 것이다. 만 2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 나는 사회인으로의 큰 걸음을 내디뎠다. 내용증명을 구성할 때만 해도 이 상황을 이렇게 해석해서 작성해도 되는 것인지 고민하였던 나는 이제는 더욱더 정황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근거 찾기에 몰입한다. 랩탑과 노트의 모든 기록을 뒤적인다. 음성이 녹음된 파일을 다시 여러 차례 들으며 감정을 담아 들었을 때 놓쳤던 부분이 없는가를 살펴본다. 메일과 채팅으로 오갔던 모든 기록을 샅샅이 뒤진다. 나 혼자 찾기에 버거운 온갖 기록을 동료의 힘을 빌어 계속해서 파헤쳐본다.
주변에서 법정싸움을 진행해 본 사람들은 내게 소송이나 중재로 가게 될 경우 별 뜻 없이 내뱉었던 말과 아무 의도 없었던 상황들이 편집되어 정황으로 재해석되는 과정의 부담감을 이야기하며 격려해주곤 했었다. 결국 그들이 염려했던 단계까지 오고 나니 이제는 무조건 우리가 옳았음을 증명해야 하기에 나 역시 유리한 상황으로 퍼즐 맞추어 중재신청서의 답변서를 작성했다. 시작점보다 나는 심리적으로 편안해졌지만 여전히 이 상황의 처음을 생각하고, 여전히 내가 어떻게 했으면 이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지를 습관적으로 되새긴다. 하지만 이제 되새김질은 그 무엇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대한 많은 퍼즐을 맞추어 그 사람이 가해자인 것을 증명해야 한다.
분쟁의 시작점에서 우리 부서의 누군가는 내게 무조건 소송까지 가서 그 사람이 가해자인 것을 밝혀내는 것이 정의가 아니냐며 지치지 말라는 말을 격려라고 해주었다. 근거를 긁어모으고, 변호사가 작성한 답변서의 곳곳을 채워 넣으면서 이쯤 되면 이 일이 정의와 관련이 있는지를 모두에게 묻고 싶어 진다.
답변서 제출을 마치고 상부의 보고를 진행하면서,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 사람이 원하는 만큼의 돈을 다 지급하는 것입니다 “ 우리 회사를 그렇게 영세한 곳으로 바라보면서 폄하를 멈추지 않은 자가 몇천만 원을 요구하면서 계약해지는 부당하다며 요구한다. 그것이 옳은 길을 걸어온 자신에 대한 명예회복의 길이라고 밝히면서.
그러기에 그 사람에게 그 사람이 요구하는 돈을 준다는 건 회사의 금전적 손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원하는 만큼을 해준다는 것은 그저 동일한 업무 파트너로 일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하고자 했던 나와 나의 동료들에게 ‘잘못을 하지 않고도 잘못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프로젝트를 위해 함께 일하던 직원에게 아름다워서 일할 맛이 난다거나, 여성과 남성을 음식에 비유하는 농담을 할 때에도 그 자리에서 왜 정정하지 못했는지 그리고 칭찬을 왜 성희롱으로 받아들이는지 묻는 자에게 결국 그 상황은 ‘별 거 아닌 거에 예민한 젊은 여자애들이 오버하는 ‘ 상황이라고 설명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몇 개월 간의 과정이 그러했듯 나의 최선과 다르게 일을 흘러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어떻게 끌고 갈지 고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