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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가방 Nov 18. 2018

시작하는 이야기

'이야기의 이야기'  시작.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야기를 좋아했다. 어렸을 때는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소설만 주구장창 읽었던 나는 책 보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좋았던 거다. 이야기는 늘 내가 경험하지 못하는 삶을 간접 체험시켜 주고 이미 경험한 삶에는 위로를 건네주었다. 무엇보다도 이야기는 재미가 있었다. 나와 비슷한 인물이 나와서 들려주는 일상적인 이야기든, 아예 낯선 세상에서 낯선 인물이 들려주는 환상적인 이야기든 누군가(혹은 무언가)가 어떤 일을 경험하고 변화를 겪는 과정을 보는 게 즐거웠다. 


그런 이유로 어릴 때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책을 많이 읽었다. 어른들은 처음에는 그런 나를 기특하게 여겼지만 나중에는 소설 말고 다른 책도 좀 읽었으면, 소설을 보더라도 고전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원래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아이니까 조금만 조언을 해 준다면 더 '유익한'(어른들 기준에서) 책을 많이 읽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른들이 읽으라고 시켜서 읽는 책은 너무나 지겨웠고 어느새 독서는 즐거움이 아닌 의무가 되어 갔다. 나는 여전히 이야기를 좋아했음에도 읽으면 도움될 책들, 꼭 읽어야 하는 책들에 갇혀 조금씩 책과 마음이 멀어졌다.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나도 모르게 예전에 즐겁게 읽었던 책들을 과소평가하게 되었다. 그건 어릴 때 재미로 읽었던 책일 뿐이라고 여기며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지나간 시간들 사이에 묻혀 있던 책들을 다시 발견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오랫동안 미뤄온 책장 청소를 하면서 초등학생 때 재미있게 읽었던 책 몇 권을 발견했고 영화 <메리 포핀스>를 보고 원작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벌써 읽은 지 10년이 넘게 시간이 지난 책들인데도 다시 보니 10여 년 전 그 책을 처음 읽을 때 느꼈던 감정과 함께 그 책들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얼마나 몰입했는지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그때만큼 순수하게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좋아해 본 적이 드물다. 단순히 재미로 읽었던 책들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재미야말로 무언가를 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게다가 지금 나의 전공을 선택하게 된 배경, 그리고 취향과 취미에는 예전에 읽었던 책들이 알게 모르게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었다. 늘 멀리 뻗어 나가기만을 바라던 내가 정작 뻗어 나가기 시작한 지점을 돌아보는 데는 너무 소홀했다. 그 시작점은 나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때 내가 사랑했던 이야기들을 돌아보고 동시에 그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생각해 보면 세상 모든 것들은 하나의 이야기이다. 당장 오늘 하루도,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과정도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낳는다는 특징이 있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은 책들에서는 그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느껴졌다. 내가 좋아했던 이야기들과 나의 시간이 합쳐지면서 여기에 또 다른 이야기들이 탄생한 것이다.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들려줄 때 의미가 있는 법. 나는 '이야기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사랑했던 이야기들과 그 이야기로 인해 생겨난 또 다른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 이야기들이 읽는 이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갈지는 잘 모르겠다. 누군가는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며 읽을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책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내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로 가서 또 다른 이야기를 꽃피우는 씨앗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다면 '이야기의 이야기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지도. 그런 모습을 기대하며 '이야기의 이야기'의 설레는 첫 발을 내디뎌 본다.





이 글은 온라인 문화예술 정보전달 플랫폼 아트인사이트에서 연재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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