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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가방 Apr 26. 2023

유일무이한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페스티벌, 지금> 후기

바깥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아져서 새삼 봄이 왔다는 걸 실감했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꽃이 피어나면서 겨우내 실내에 머물던 사람들은 바깥으로 쏟아져나온다. 수많은 페스티벌이 봄에 열리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포근한 봄날, 맛있는 음식과 함께 음악을 들으며 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여러 페스티벌이 4월부터 거의 매주 열리는 중이다.  



그중에서도 <페스티벌, 지금>은 ‘학교’라는 독특한 콘셉트로 눈에 띄었다. 


드레스코드가 교복인 데다가 학창시절 즐기던 놀이와 간식거리도 즐길 수 있고, 무대 역시 학교 수업이라는 콘셉트로 진행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떤 풍경의 페스티벌이 될지 궁금해졌다. 보통은 출연 아티스트에 초점을 맞추고 홍보할 뿐 페스티벌 전체를 관통하는 콘셉트가 따로 있는 경우는 드물기에 더 그랬다.


페스티벌은 한강난지공원 젊음의광장에서 15일부터 16일까지 이틀간 진행되었다. 그중 마지막 날인 16일에 참석했다. 


월드컵경기장역에서 나와 셔틀버스를 탈 때부터 교복 차림의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페스티벌의 분위기가 조금씩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들뜬 사람들을 태운 셔틀버스가 한강난지공원 앞에 서고, 크게 들려오는 음악 소리를 따라가다 보니 지도 없이도 쉽게 페스티벌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콘셉트에 맞게 교문으로 꾸며진 입장 게이트를 통과하니 키코의 공연이 한창이었다. 조금 늦게 앉게 된 자리에서 무대가 잘 안 보이면 어떡하나 걱정도 있었는데, 곳곳에 설치된 스크린 덕에 무대에서 떨어진 자리에서도 아티스트의 퍼포먼스를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음향 역시 선명해서 목소리가 멀리까지 뚜렷하게 울려퍼졌다. 스탠딩존이 따로 없어 아티스트의 안내가 따로 없으면 모두 앉아서 무대를 봐야 하는 게 아쉽긴 했지만, 지치지 않고 끝까지 무대를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차례대로 이영지, 황치열, 코요태의 무대가 이어졌다. 이영지는 방송에서 보던 에너지를 그대로 라이브 무대로 가져왔다. 모두를 일으켜 세우고 제자리에서 뛰게 만들어 평소 이영지를 좋아하고 잘 아는 관객이 아니더라도 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박재범의 파트까지 소화한 ‘낮 밤’, <쇼미더머니>에서 보여줬던 ‘Not Sorry’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다음 순서로 무대에 오른 황치열은 가장 예측하지 못했던 무대를 보여준 아티스트다. 힙합가수(이영지)와 댄스가수(코요태) 사이에서 발라드 가수는 어떻게 분위기를 어떻게 끌고 나갈지 궁금했는데, 적극적인 팬서비스와 재치 있는 입담으로 관객의 이목을 주목시켰다. 야외 공연이 오랜만이라 목소리 내기가 어렵다는 너스레도 잠시, 무대 아래로 내려와 노래를 부르는 동시에 관객 한 명 한 명과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에서 프로의 기운이 물씬 풍겼다.  



쉬는 시간을 이용해 포토존과 콘텐츠존도 들러보았다. 포토존은 사실 나보다는 같이 간 엄마의 학창시절에 더 가까운 풍경이라 학교에 다니던 엄마 이야기를 듣는 계기가 되었다. 콘텐츠존에는 펌프와 농구공 게임, 오락실 게임기를 즐길 수 있었다. 보통 페스티벌은 먹거나 마시거나 음악을 듣는 선택지뿐인데, 놀거리가 더 있으니까 많은 사람이 오며 가며 호기심을 보였다.


페스티벌의 묘미는 언제나 예측하지 못한 변수에 있다고 생각한다. 날씨나 관객, 아티스트의 상황에 따라 그날, 그 순간밖에 볼 수 없는 무대가 탄생한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그런 순간은 코요태의 차례에 찾아왔다. 

‘비상’으로 등장해 즉석해서 무반주로 선보인 <원피스> 주제곡 ‘우리의 꿈’까지 관객의 반응은 최고조였는데, 날씨가 변수였다. 갑자기 바람이 많이 불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무대를 정비하는라 시간이 지체되었다. 코요태는 궂은 날씨 속에서 결국 원래 하려던 곡을 건너뛰고 마지막곡을 불러야 했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하던 중 쌍무지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를 맞지 않으려 후드를 뒤집어쓰고 추워하며 코요태의 댄스곡을 듣던 중 나도 그 무지개를 발견했다. 그 순간, 당혹스러우면서도 신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결국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때 마침 코요태 멤버도 무지개를 발견하고 이게 우리 인생이라고 말하자 관객들이 환호했다. 모두가 휴대폰으로 무지개를 찍었다.  



사람들은 왜 페스티벌을 갈까. 사실 몸이 편하려면 실내 공연을 보는 게 훨씬 좋다. 날씨 영향을 크게 받지도 않고 시작하는 시간과 끝나는 시간도 정확하기 때문이다. 야외 페스티벌은 스탠딩존에서 보든 돗자리에 앉아서 보든 힘들지 않을 수가 없다. 나도 페스티벌에 다녀와서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픈 경험을 몇 번 했다. 


그래도 페스티벌이 좋고, 수많은 사람이 페스티벌을 찾는 건 역시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그때 그 순간의 현장감 때문이 아닐까. 수많은 우연이 겹쳐 만들어지는 유일무이한 순간을 위해 페스티벌에 가는 것이다. 게다가 페스티벌에는 페스티벌만의 공기가 있다. 일상을 벗어난 페스티벌에서는 눈치 보지 않고 놀게 된다. 함께 여기에 있는 것만으로 왠지 동질감을 느끼며 옆에 있는 사람에게 좀 더 너그러워지기도 한다. 


<페스티벌, 지금>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교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갑작스러운 비도 오히려 즐기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이게 페스티벌이지 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친구, 연인 단위로 많이 오는 여타 페스티벌과 달리 다양한 연령대의 가족 단위 관객이 많아서 정말 ‘다 함께’ 즐기는 느낌이 드는 것도 좋았다. 


얇은 옷을 입은 채 비를 맞자 컨디션이 급격히 안 좋아지는 바람에 아쉽게도 이후 무대는 후기로만 봐야 했다. 그래도 날씨가 본격적으로 풀리는 4월에 페스티벌을 한 차례 다녀오니 비로소 완전히 봄에 속하게 된 기분이다.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온 다른 관객들도 비슷한 마음을 안고 돌아갔을 것이다. 나중에 여기에 있던 누군가와 우연히 만난다면 이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웃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모든 순간이 추억이 될 것 같다. 



이 페스벌은 아트인사이트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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