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 지는 것들이 가르쳐주는 것
벚꽃은 일주일 남짓 핀다. 나무의 수명이 수십 년인데, 그 안에서 꽃이 피어있는 날은 극히 일부다. 계절이 돌아오면 꽃이 피고, 꽃이 피면 지고, 지면 또 다른 계절이 시작된다. 그 순환 속에서 벚꽃이 차지하는 자리가 왜 유독 크게 느껴지는 걸까.
짧기 때문에 강렬한 것들이 있다. 첫눈이 그렇고, 일몰이 그렇고, 벚꽃이 그렇다. 오래 지속되면 그것이 배경이 된다. 배경이 된 것은 인식되지 않는다. 벚꽃이 일 년 내내 피어있다면 그냥 나무가 되고 말 것이다.
덧없음이 아름다움의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건, 단지 감성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주의가 제한된 인간의 인식 방식과 관련이 있다. 늘 있는 것을 우리는 보지 않는다. 잠깐 있는 것을 우리는 붙잡으려 한다. 벚꽃은 그 심리를 정확히 건드린다.
봄이 되면 벚꽃이 피고, 여름이 지나면 단풍이 들고, 겨울이 오면 눈이 내린다. 해마다 반복되는 순환인데, 사람들은 그걸 매년 새롭게 경험한다. 같은 풍경인데 매년 새롭다는 건, 보는 사람이 매년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이다.
올해의 벚꽃을 보는 나는 작년의 나와 다르다. 지난 일 년 동안 무언가를 겪었고, 생각이 달라졌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바뀌었다. 그 달라진 상태로 같은 꽃을 보니 다른 감상이 나오는 거다. 계절은 순환하지만 인간은 순환하지 않는다.
벚꽃 시즌 여행지와 명소에 대한 정보를 담은 글을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명소보다 그 명소에 간 사람의 상태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하는.
벚꽃이 지는 걸 보면서 슬프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 그 감정이 이해된다. 하지만 꽃이 지는 것은 다음 꽃을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나오고, 잎이 자라면 열매가 맺히고, 그 과정이 쌓여 나무가 다음 봄을 피울 수 있게 된다.
순환이란 끝이 없는 반복이 아니라, 매번 다른 무언가를 품고 돌아오는 것이다. 벚꽃이 매년 피지만 올해의 벚꽃은 작년의 것과 같지 않다. 나무의 나이가 달라졌고, 날씨가 달라졌고, 그것을 보는 내가 달라졌다.
벚꽃 사진을 찍는 건 기억을 저장하려는 행위다. 하지만 사진과 기억은 같지 않다. 사진은 시각적 정보만 담지만, 기억은 그때의 공기, 온도, 냄새, 함께 있던 사람의 목소리까지 담는다. 사진을 보면 기억이 소환되지만, 사진이 기억은 아니다.
그래서 벚꽃은 직접 봐야 한다. 사진으로 본 것과 현장에서 본 것은 다르다. 꽃잎이 바람에 날리는 걸 실제로 맞아본 것과 영상으로 본 것이 다르듯. 모든 감각이 동원될 때 기억이 더 깊이 새겨진다.
계절이 순환한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지금이 힘들어도 계절은 바뀌고, 다시 봄이 온다. 벚꽃은 그 약속의 증거 같은 것이다. 작년에도 피었고, 올해도 피었고, 내년에도 필 것이다. 그 연속성 안에 내가 있다는 감각.
인간의 삶도 어떤 면에서는 순환적이다. 비슷한 고민이 다른 형태로 돌아오고, 비슷한 기쁨이 다른 맥락에서 반복된다. 벚꽃처럼, 표면은 같아 보이지만 매번 조금씩 다르다. 그 차이가 모여서 삶이 된다.
봄이 올 때마다 벚꽃을 의식적으로 보려고 한다. 그게 계절의 흐름을 내 몸으로 기록하는 방식이다. 몇 년이 지나면, 어느 해 벚꽃은 슬펐고 어느 해 벚꽃은 기뻤다는 기억이 쌓인다. 그 기억들이 나라는 사람의 봄 역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