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포인트 레이를 떠날 시간이 되었다. 포인트 레이를 출발한 우리 곁으로 넓은 해안선과 푸른 초원이 한동안 따라오며 배웅해 주었다.
슈샤드 젖소가 뛰노는 그 유명한 캘리포니아 치즈 명소 스트라우스 목장을 지나 산 라파엘로 이동했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햇살이 눈이 부시게 쏟아지는 캘리포니아 날씨로 변했다.
해안선의 절경에서부터 푸르른 포도밭과 소도시 풍경, 산악 지형을 아우르며 캘리포니아 북부의 다채로운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코스가 펼쳐졌다.
헤스(Hess)로 가는 길. 샌드위치와 커피 한잔도 앉아 먹을 시간이 없어 그냥 인버니스의 마켓 스토어에 들러 간단하게 샌드위치로 사기로 했다. 이 작고 아담한 동네 슈퍼는 잠시 들른 관광객에게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많았다.
먹지도 못하고 가방에 넣어간 샌드위치는 훗날 나파밸리의 와이너리에서 페어링 하며 맛보니 정말 맛있는 델리 샌드위치였다.
산라파엘을 거쳐 나파 밸리의 헤스 컬렉션 와이너리까지 가는 여정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캘리포니아 북부 특유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CA-1 하이웨이를 따라가며 산악 지형과 농촌 풍경이 시작되었다. 이 지역의 나무가 무성한 길은 야외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과 관광객들에게도 인기 있는 구간이어서 지나가는 라이더들의 행렬이 멈추지 않았다.
마린 카운티(Marin County)를 지나며 울창한 숲과 푸른 언덕을 보았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달리며 구석에서 숨었다 나타나는 캘리포니아의 자연에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로 지나가는 자전거 라이더들의 행렬,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로 만든 집처럼 아름다운 사람들의 보금자리...
산라파엘을 지나 소노마 카운티(Sonoma County)로 들어섰다. 캘리포니아 와인 생산지 특유의 포도밭과 농장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끝없는 포도밭, 아름다운 농장과 와이너리, 구릉과 능선, 초록과 노랑이 이루는 패턴, 나무가 더하는 점선면의 아름다움...
나파 밸리는 미국 내에서도 고급 와인 생산지로 유명하며, 산악지형과 평원이 어우러져 포도밭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와이너리마다 독특한 건축 양식과 조경이 어우러져 있고, 포도밭 사이에 위치한 와이너리들이 풍경의 일부가 되어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리가 가는 헤스 컬렉션(Hess Collection Winery)은 몇 해 전 샌프란시스코 여행길에 들렀던 곳이다. 향긋한 와인 테이스팅과 이곳에서 소장하고 있는 현대미술 작품을 관람하며 황홀했던 기억이 있었다. 마침 M의 친구인 메리가 이곳에서 소믈리에로 일하고 있다니!
헤스에 도착했다. 주변의 산과 초록빛 포도밭이 어우러진 가운데, 와이너리 건물은 독특한 디자인과 정원이 잘 조화되어 있었다. 와이너리에서 활짝 웃으며 메리가 걸어 나왔다. 아이들을 다 키워놓고 소믈리에로 제2의 삶을 시작한 메리와 이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정원과 포도밭, 도널드 헤스의 예술 작품 컬렉션으로 향하는 고풍스러운 건물. 우리를 기다리는 네 개의 와인 글라스.
메리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제일 먼저 시음할 와인이에요."
나파 밸리의 소믈리에에게 이번에 와인과 페어링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 목소리만 나오게 촬영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