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메리가 우리에게 경험하게 해 준 헤스 정원에서의 한 시간 와인 테이스팅의 아름다운 기억을 정리해 본다. 볼 것과 들을 것이 황홀하게 쏟아졌던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의 파편을 주워 주머니에 넣는 기분이다. 사진을 보며 그날의 감각의 기억을 복기하며 글을 쓴다.
헤스 와이너리의 정원에서 경험할 수 있는 와인 테이스팅은 헤스 웹페이지에서 미리 예약을 하고 가야 한다. 방문객들은 그들의 이름이 새겨진 아주 특별한 메뉴가 놓인 테이블로 안내를 받는다. 메리의 배려 덕분에 우리의 이름이 적힌 특별한 메뉴를 받았고, 아래에는 '당신의 호스트 메리'라고 적혀있었다. 치즈 나이프는 위쪽으로 가로로 놓여있었고 와인 잔은 메뉴 위에 엎어 세팅한 테이블이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전문가들의 일상적인 세련미를 배우는 즐거움이 크다. 나 비록 일 년에 한 번도 치즈를 먹지는 않는 토종 입맛이지만, 이런 곳에서 제대로 와인과 치즈를 음미하는 경험은 나의 호불호와 관계없는 풍요로운 시간인 것이다.
메리는 우리가 정원에 감탄하는 동안 적절한 냉감의 로제 와인을 가져와 테이스팅을 시작했다. 헤스의 로제 와인이 입술에 닿는 순간 꽃과 과일 향기가 아우러진 차가움이란!
이어서 천천히 느리게 메리는 능숙한 페이스로 메뉴에 적힌 대로 처음에서 끝으로 순서대로 와인과 페어링 음식을 놓아주었다.
첫 순서는 헤스의 시그너처인 Lion Tamer, 나파 밸리의 화이트 블렌드 와인이다.
두 번째 와인은 2019년 산 Russian River Valley 피노 누아. 비다의 선선한 바람과 염분의 물을 가진 지역의 아름다운 와인이다.
세 번째 와인은 2019년 산 헤스 컬렉션의 19 Block Mountain Cuvee로, 보르도 스타일의 레드와인이다.
네 번째 와인은2018 Small Block Moon Mountain Cabernet Saugivnon으로 나파 밸리의 4대 레드와인 중 하나다.
각 와인에 따라 페어링 할 핑거푸드(아뮤즈 부쉬)가 나왔다. 눈으로 한번 먹고 입으로 맛보았다.
토마토, 어니언 실란트로, 라임 오렌지주스, 칠리를 곁들인 새우 세비체
트러플 버섯과 칠리 페퍼를 곁들인 가지 구이
오리콩피를 넣은 크로켓
프로슈토와 허브가 들어있는 그 유명한 블루치즈 비스킷
메리는 고기를 먹지 않는 M을 위해 마지막 두 개에 오리와 프로슈토가 들어있다고 알려주었다.
치즈 플레이트는 진한 와인으로 진행할수록 그 눅진한 맛과 어울렸다. 옐로 브라운 머스터드에 허브와 레드와인 리덕션을 넣은 소스가 곁들여 나왔고, 강한 향의 체더치즈에는드라이체리, 라벤더에 엑스프레소를 넣은 소스와 함께 맛을 보라고 했다.
강한 것은 묵직하게 누르고, 내성적인 것은 향을 북돋으며 와인의 향과 어우러지게 시간과 타이밍을 고려하는 이 시간을 프랑스인들이 말하는 사보아르 비브르 savoir vivre(know how to live)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미술 컬렉션을 보러 갈 시간이 되어 아쉽게도 와인 마시기를 계속할 수 없었다. 메리는 음식들을 작은 상자에 담아주었다. 캘리포니아 소믈리에를 하려면 이 정도 감각은 있어야 하나보다.
이 황홀한 와인과 페어링의 향연을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메리에게 와인 시험 문제를 내 보라고 했다. 기적적으로 와인 순서 나열을 맞추고 신이 난 우리는 와인샵에 들어가서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마신 와인을 순서대로 사열해 놓았다.
나는 와인을 가지고 길게 여행할 수 없는 관광객이라 와이너리에서 사용하는 오프너와 소품들을 둘러보았고, M은 와인 한 박스를 샀다. 메리가 골라준 셀렉션에 맞춰 열두 병. 포틀랜드에 살고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내가 마지막 순간까지 살까 말까 망설였던 샤도네이다. 메리가 짐가방에서 깨지면 안 되니 그냥 몇 잔 더 마시고 가라고 더 따라주었다. 와인을 마신 후라 별 것도 아닌 이야기에 계속 웃음이 나왔다.
헤스 컬렉션의 시간을 선사해 준 메리와 M을 위해 미슐랭 스타 프렌치 레스토랑 저녁에 초대했다.
바로 옆 베이커리가 유명한 집이라 M은 양파 수프와 샐러드를 주문하자마자 빵을 사러 달려갔고, 메리와 나는 아주 맛있는 홍합 요리와 농어 요리를 주문했다.
우리는 어느 정도 비슷한 나이였고, 자랑스럽게 성장한 아이들이 있었고, 인생에 있어서도 조금은 알게 된 나이였다. 우리는 식사를 하며 오렌지빛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풍경과 사람은 아름답다. 다시 언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어서겠지. 그래서 매 순간이 귀하고, 매 순간 감사하고, 매 순간 행복한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