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 미역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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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집으로 돌아온 온 날, 친정어머니 손에 들려 있던 것은 어머니 키보다 큰 기장 미역이었다. 산모가 건강하게 몸을 푸는데 그만한 것이 없다면서.


부산 기장군의 미역에는 오랜 이야기와 특별한 자연이 있다고 했다. 푹푹 밥 말아먹어야 엄마 부기도 이내 빠지고, 수유도 쉽게 하고, 아기도 잘 자란다던 던 그 국... 그렇게 매일 먹고도 난 미역국은 질리지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산후 100일 동안 미역국 먹는 것으로 버텼다는 게 맞다. 서울에서 각종 미역국을 먹으면서도 나는 엄마가 사서 끓여준 그 기장 미역국이 종종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부산에 갈 때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는 해운대 100번 버스를 타고 기장까지 가서 기장 미역국으로 아침을 먹었다.


기장 미역은 대대로 조선시대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다고 한다. 기장 미역이 다른 지역의 미역보다 특히 맛있는 이유는 여럿이었다. 기장 앞바다는 오염되지 않은 청정 해역이었기에 미역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물이 맑고 깨끗하니 미역 특유의 향과 맛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을 게고.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기장 바다에는 플랑크톤을 비롯한 다양한 영양염류가 풍부했다. 부지런히 미역의 생장을 돕고, 맛과 영양가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터. 게다가 물살이 거세 해수가 끊임없이 뒤섞이니 플랑크톤 등 영양분이 풍부해 거센 물살 속에서 자란 기장 미역은 조직이 단단하고 쫄깃한 식감을 갖게 되었다. 또한, 풍부한 햇빛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색깔이 짙고 광택이 좋으며, 맛과 향이 더욱 깊어지기까지 하였다 하니 오! 보석과 같은 머릿결을 흩날리며 뭍으로 왔도다.


고운 머릿결의 기장 미역은 인위적인 열풍 건조 대신 해풍에 자연 건조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건조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역 본연의 맛과 향이 그대로 응축되고, 쫄깃한 식감은 더욱 살아났으니, 자연 건조 과정에서 글루탐산과 같은 감칠맛 성분이 증가하여 미역 본연의 맛과 향은 물론 단백질, 칼슘 등의 영양소가 그대로 보존되었다고! 그러니 끓였을 때도 쉽게 퍼지지 않고 쫄깃한 식감을 유지되게 하는 이 미역국 한 그릇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고된 사람의 노동이 아니겠는가.


기장 지역의 미역국 전문점들은 특별한 미역을 활용한 다양한 미역국을 선보인다. 쫄깃한 기장 미역과 푸짐하게 들어간 해산물이나 소고기가 어우러져 풍성한 맛과 식감을 선사하니 부지런한 서두른 외지 사람들이 새벽부터 후루룩 미역국으로 보신을 한다. 주문은 쉽지 않다. 소고기 미역국은 물론, 전복, 가자미, 조개, 황태, 낙지 등 다양한 해산물을 주재료로 한 미역국 중 고심 끝에 선택해야 한다. 가장 많이들 먹는 것이 순살 가자미 미역국. 조금 더 몸이 부실하면 가자미 전복을 주문하면 된다. 소고기, 황태 모두 서로 다른 상찬이니 부지런히 자주 들를 수밖에. 그래야 미역과 각 재료의 조화로운 맛을 요래 조래 바꿔가며 즐길 수 있다.


주방에서는 두툼한 들통이 뭉근하게 국을 끓여낸다. 그 좋다는 기장 미역을 사용하니 별다른 조미료 하나 없이도 도 여기저기서 깊고 진한 맛에 탄성이 터진다. 육수에는 살짝 들깻가루를 넣은 것 같다. 더욱 고소하고 진득한 맛이다.


미역국을 기다리는 동안 벽에 있는 미역 이야기를 읽어본다. 미역 파종은 미역 포자를 붙인 씨줄을 바닷속에 내리는 것부터 한다. 미역이 자라는 과정에서 햇빛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부표를 띄우고 양식 관리를 한다. 매년 2월 말에서 4월 사이에 미역을 수확하는데 옛날에는 '초불, 두 불, 세 불'이라 하여 3번까지 채취했으나, 지금은 보통 두 번만 채취한다 한다. 채취한 미역은 미역귀와 줄기를 떼어내고, 햇빛과 해풍에 이틀 정도 자연 건조한 후 건조기에서 완전히 말리는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르게 되는 것. 일부는 데친 후 소금에 절이는 '염장 미역'으로 가공되기도 한다.


미역국 집 벽에는 미역을 수확하는 칼이 걸려있다. 오랜 경험과 효율성을 고려하여 만들어진 무시무시한 도구다. 대부분 끝이 갈고리처럼 약간 굽은 낫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미역 줄기를 한 번에 걸어 끊어내기 용이하게 디자인된 것이다. 바닷물 속에서 미역 줄기를 정확하고 빠르게 잘라내기 위해 칼날은 항상 날카롭게 유지된다. 녹이 슬지 않도록 스테인리스 재질이나 특수 코팅된 칼을 사용하기도 한다. 물 속에서 작업해야 하니까 미끄럽지 않고 그립감이 좋은 재질의 손잡이가 중요하다. 장시간 작업에도 손목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인체공학적으로 설계인듯 하다.


기장 미역 수확은 생각보다 훨씬 고되고 위험한 작업이다. 미역은 주로 겨울철 차가운 바다에서 자라니 어민들은 매서운 추위와 싸우며 작업을 해야 한다. 파도가 거세거나 물살이 빠른 날에는 작업 자체가 매우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역 수확은 숙련된 어민들의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배를 타고 양식장으로 이동하여 일일이 미역 줄기를 확인하고 잘라내는 과정은 엄청난 체력을 요구한다. 허리를 굽히거나 물속에 몸을 담근 채 장시간 작업해야 하므로 탈진하여 돌아온다. 강풍이나 풍랑 주의보가 발효되면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 특히 수확 시기는 짧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날씨가 좋지 않으면 제때 수확하지 못해 손실이 생기니 속을 끓일 수 밖에. 미끄러운 배 위나 물속에서 작업하다 미끄러지거나, 날카로운 칼에 베이는 등 상처도 많다.



차가운 것과 따뜻한 것이 만나는 바다, 청정한 물, 풍부한 영양, 그 사이에서 춤추던 미역을 거두어 올린 강인한 생명력, 전통 그대로의 고집스러운 가공 방식.


100번 버스타고 온 외지인을 위한,

임금의 수라다.




2025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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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아침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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