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적이 없어도 있다는 걸 알아요"

<달팽이의 별>의 영찬 씨와 순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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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홍수 속에서 보고 듣고 살아간다. 감각에 의지해서 살아간다. 만약 들리는 것이 없고 보이는 것이 없다면, 그 침묵과 어둠의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태어나면서부터 시각과 청각을 잃은 삶에 반사적으로 안타까움이나 동정을 준비하는 오만한 감각의 세상에 경종을 울리는 다큐멘터리. 2012년 이승준 감독의 암스테르담 다큐멘터리 영화제 수상작, <달팽이의 별>이다.



<달팽이의 별>은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부부 이야기다. 주인공 영찬 씨는 어릴 적 열병을 앓아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잃었다. 눈은 뜨고 있으나 대부분 보지 못한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기에 오로지 손가락 촉각으로 사람들과 대화하고 세상을 짐작하며 살아야 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시각장애인용 컴퓨터로 시를 쓴다. 시각도 청각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촉각으로 세상을 느끼는 달팽이처럼, 온몸으로 느리게 세상을 느끼는 것이다. 그가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손가락이 늘 세상의 언어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는 아내 순호 씨다.



순호 씨는 등이 굽고 키는 어린이 정도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달팽이처럼 한없이 느린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순호 씨는 천정의 형광등을 혼자서는 바꿔 달 수 없고, 영찬 씨는 순호 씨가 손가락으로 알려주지 않으면 밥상에 놓인 반찬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밥상 앞에서 아내가 손가락으로 남편의 손등에 조용히 말한다. 콩나물, 김치...... 가슴 아프고 우울한 삶으로 보이는가. 이들의 삶은 약이 오를 정도로 행복하다.



그들에게는 감각의 세상 너머의 감각과 소통이 있다. 그 어떤 것도 분명하게 본 적이 없는 영찬 씨에게 명확한 형체가 있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태어나서 별을 본 적이 일생에 단 한 번도 없지만 그 존재를 의심한 적이 없다. 눈에 보이는 것도 믿기 어려운 그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절대적인 자신감을 갖게 된 힘은 무엇일까?



아내 순호 씨는 남편 영찬 씨에게 무한한 믿음을 준다. 두 사람은 어려움은 힘을 합해 넘고, 아픔은 가만 덮어 준다. 후벼 파고 비난하지 않고 쉬게 한다. 영찬 씨가 촬영 중인 이 승준 감독의 머리를 솔방울로 정확히 맞출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으나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힘은 형광등을 갈아 끼우는 것 같은 작은 성공의 경험들, 매일매일 소중한 동반자와 쌓아온 자존감의 결과다.



이 부부가 눈물을 흘리거나 좌절하는 모습을 다큐멘터리 <달팽이의 별>에서는 볼 수 없다. 영찬 씨가 문학 공모에 응모했다가 당선되지 않았을 때, 사소한 사회의 냉대에 마음 상할 때, 그들은 작은 아파트 난간에 청명하게 매달린 빗방울을 만지며 위로한다. 같은 장애를 가진 친구들도 서로의 삶에 활력을 준다. 영찬 씨 집에 몰려온 친구들은 이 부부의 단란한 삶을 부러워한다. 영찬 씨와 순호 씨는 그들이 떼거지로 몰려오는 시간이 천국이다. 고단한 사람들이 모여 피로를 잊는다. 쉽고 무심한 말로 상처를 건드리지 않는다.



달팽이는 느리다. 한걸음에 대략 80cm 정도를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사람의 발걸음을 생각하면 달팽이의 움직임은 한없이 느리게만 느껴진다. 더군다나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도심 속의 현대인들은 늘 더 빠르고 더 효율적인 삶을 추구할 뿐. 그러나 2년간 다큐멘터리 감독의 카메라에 담긴 이들 부부의 삶은 속도와는 무관한 세계, 깊이의 삶이 존재함을 이야기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감각, 오히려 장애가 없는 사람들이 갖지 못한 더 많은 감각의 촉수를 가졌다. 더 많이 느끼고, 만끽하고, 고운 실을 짓 듯 낮은 목소리로 표현한다.



다큐멘터리 ‘달팽이의 별’의 백미는 사운드 디자인이다. 영찬 씨와 순호 씨의 삶을 표현하는 시적인 영상도 아름답지만, 그를 뒷받침하는 청명한 소리와 음악은 감각의 세계 외곽에 있는 주인공의 의식세계와, 위태롭고도 충만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하루하루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버스 정거장에서 멍하니 지쳐 서있는 영찬 씨를 처음 만난 순호 씨가 옆 사람을 통해 ‘밥을 먹었느냐’고 묻던 날, '밥이 없어 라면을 주어 미안하다'고 사과하던 날, 느린 달팽이는 빛나는 별이 된다. 마음에 얹혀진 그 사람 따뜻한 손가락으로 천천히 시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