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여기가 집이야"
<우리 가족>의 태훈 씨
가족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아빠, 엄마, 아이들, 행복한 미소, 식탁 위의 된장찌개. 가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일상이지만,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고통......
도합 열 한 명의 남자들이 우글거리는 태훈 씨의 집은 '가지지 못한' 이들의 따뜻한 집이다.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지만, 어느 집보다도 행복한 이 집의 중심은 일명 '삼촌'이라 불리는 태훈 씨다. 멀쩡하게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만 전념하고 있는 노총각과 그가 키우는 열 명의 탈북 청소년.
영화 내내 이 열한 명의 남자들 때문에 울고 웃는 2013년 김도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우리 가족’은 다세대 주택 2층의 평범한 아침으로 시작한다.
서로 다른 학년의 아이들이 썰물처럼 떠난 집에서 청소, 빨래를 하고 밥을 짓는 태훈 씨는 30대 평범한 동네 아저씨. 하나 둘도 아닌 열 명의 아이들, 그것도 혹한 속에서 북한을 탈출한 이 아이들과 어떻게 가족이 된 것일까.
태훈 씨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탈북자들의 정착지원을 돕는 하나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2004년부터 이 길을 택했다. 유난히 태훈 씨를 잘 따르던 당시 초등학생 하룡이를 처음 맡아 키우게 되면서 시작했으니 어느새 10년. 소규모 탈북자 시설대신, 가정이라는 따뜻한 느낌이 들도록 '가족'이라는 이름의 그룹홈을 만들었다. 하룡이가 장정이 된 것만큼 식구도 늘었다.
잠시도 조용할 날이 없지만, 아이들은 이곳이 만만한 집이고, 만만한 삼촌인 것 같다. 열한 명의 남자들은 무엇이든 같이 한다. 한솥밥을 나누어 먹고, 묵묵히 가사를 분담하며, 하나씩 서로 지어준 짓궂은 별명 하나씩 달고 살아간다. 삼촌은 각각 제 높이로 때로는 아빠처럼, 때로는 엄마처럼 따뜻하게 돌보아 준다.
최근에 새로 들어온 초4 주철광은 늦둥이처럼 형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다들 사이좋은 형제로 살아가고 있어서인지, 비밀도 없다. 너무 말라서 아직 어린이용 팬티를 입는 아이나, 씻는 것을 싫어해서 늘 냄새가 나는 아이는 놀림을 받아도 별 반응이 없다.
이 가족의 주부인 삼촌이 얼마나 힘들까 염려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삼촌은 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믿거나 말거나 보이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렇다고 삼촌이 아이들을 편안하게만 해주는 것은 아니다. 공부를 강요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시험기간에는 책상에 앉는 진지함을 보이지 않으면 어김없이 꿀밤.
이번 시험에서는 50점을 맞은 억수가 최고점이다. 다른 아이들은 억수가 너무 공부만 해서 비교된다고 투덜댄다. 유난히 깔끔한 삼촌 눈에 들어야 하는 가사분담은 아이들의 일과지만, 오랜만의 봄맞이 대청소 끝에 기다리는 동네 목욕탕과 삼겹살은 꿀맛이다.
삼촌은 죽음을 무릅쓰고 자유를 찾아 탈출한 아이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깨닫게 해주고 싶다. 그래서 아이들과 해외로 간다. 태국의 메콩 강을 지날 때 아이들은 말이 없다. 탈북을 위해 여덟 시간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숨죽여 건넜던 기억 때문이다.
열악하고 빈곤한 작은 마을 아카에서 아이들은 비로소 더 힘든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보람을 느끼며 진정한 자유를 체험한다. 우물도 만들고, 집도 짓고, 마을 아이들과 뛰어놀고, 고3 맏형 진철이는 마을 소녀와 몰래 연애도 하는데, 짧은 영어로 마음을 전하기 힘들어 답답해 죽을 지경.
아이들은 고된 노동 틈틈이 놀이와 장난을 만끽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손으로 탄생한 결과물과 변화에 한층 성장하여 집으로 돌아온다. 삼촌 역시 아이들을 보며 성장한다. 아이들을 마냥 불쌍하다고만 여겼던 삼촌 눈에 아이들이 가진 저마다의 솜씨와 기술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수도원 신부님을 도와 농사일을 하는 아이들은 삼촌도 놀랄 만큼 뛰어난 농사기술을 발휘한다. 삼촌의 첫 아이였던 하룡이는 좋아하는 미술로 다른 학생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한다. 말 수가 적은 진범이도 학생회장이 되었다.
태훈 씨가 잘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이 길을 택했을 때부터 십 년 세월을 홀로 마음 아파했던 어머니는 어느새 듬직한 열 명의 손자들이 생겼다. 제삿날이면 온통 떠들썩 북적인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영상미나 구도의 안정감이나 편집의 완성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이 특이한 가족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 뿐이다. 삼촌 집 가족은 수시로 바뀐다.
이 다큐멘터리 촬영이 끝나고 세 명의 아이들이 새로 들어왔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네 명의 아이들이 집을 떠났다. 직업전문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 아이, 농사짓겠다고 신부님 밑에 들어간 아이 등 각자 사정은 다르다.
아이들은 오늘도 학교를 가고, 삼촌은 아이들이 가방에 쑤셔 박아둔 땀내 나는 옷들을 꺼내 깨끗이 빨아 햇볕에 말리고 있을 것이다. 그 힘으로 앞으로 가라고 어깨를 두드려줄 것이다. 피로 엮였든, 피 한 방울 나누지 않았든, 집은 대문을 나서는 사람의 뒷심이고 빽이다. 한 번도 바다를 보지 못한 초4 철광이가 처음 먹은 생일 미역국이 그러하듯이.
가족이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