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과 폭력의 역사

by 김용현

삼촌이 죽음과 가깝다.
먼 삶보다 지척의 죽음에 기대려한다.
이미 폐까지 번진 암이 뼈에스며
골수를 녹였다.
한숨 한숨이 심장까지 전달되기엔
폐의 기능이 어렵다.
삼촌은 일산 서울대병원에 13층에 누워있다.
꼭대기층은 희망 없는 환자의 마지막 연명치료 공간이다. 여기서 산자는 죽은 자와 닿고
죽은 자가 비우는 공간을 죽으려 하는 자가 채운다.

삼촌은 오형제 중 막내다.
파락호 장남과 고등학교 때 임신한 여자를 데려온 차남, 사별하고 두 아이를 키우는 막내 누이 그리고 궁핍한 아버지와 결혼한 우리 어머니.
제각각 움츠려든 외가에 삼촌은 밥을 벌었고 대책이었다. 빨간 날 조카들을 챙겼고 저질러놓은 형제들의 빚을 갚고 누이의 수술비를 대었다.
마른 몸에 사업을 하며 술과 담배가 끼니를 앞섰다.
얼굴빛이 흑색으로 바뀐 사십 대에 이미 삶은 죽음과 섞였다.
죽음은 암이 되어 표면화되었고
혀에 틀고 앉았다.
죽은 세포가 잠식한 정상세포의 땅이 좁아지고
그 경계에서 혀의 근육이 잘려나갔다.

드문드문 만나는 삼촌의 모습은 사라져 가고 있었다.
치열한 삶에 닳아 너덜 해진 육신에 당면한 죽음은 가차 없다. 딸 둘을 혼자 키워내야 하는 숙모는 가장의 무게와 파괴된 삼촌 사업이 아득하다.
산자와 살아갈 생명에게 떠날갈 생명이 미루어놓은 삶은 무참하다.

난 삼촌에게 많이 맞았다.
시장터에 가판을 튼 어미는
밥을 벌기 바빴다.
그 시절 여자 몸으로 동대문에서
한 달치 속옷을 떼다가 길 위에서 팔았다.
허세만 부리는 부친은 사기만 맞고 다녔다.
변변찮은 남편과 입만 벌린 자식들 사이에
살기 위해 일했고 일하기 위해 살아야 했다.
부친은 취하면 폭력적이었고
어미의 머리체를 잡고
온 방안을 끌고 다녔다.
심지어 삼촌과 술을 먹으며
어머니를 욕하고 때렸다.
그러한 나와 누이를
어머니는 삼촌에게 부탁해
어린이날과 특별한 날
누운 아비를 대신해 시간을 보내게 해 줬다.
롯데월드도 가고 자장면도 먹었다.
그러한 날 밤.
꼭 그러한 날 밤에
삼촌은 날 무자비하게 때렸다.
샤프가 신기해 가지고 놀다가 잊어버렸다고.
병아리 삼촌이라고 놀렸다고
초등학교 4학년인 내 멱살을 잡고 때렸다.
울고불고해도 소용이 없다.
이유 없이 맞아야 했고 맞으면서도 몰랐다.
시간이 지나 알듯하다.
내 얼굴에서 아버지를 본 거다.
누이를 그렇게 때리고 욕하는.
자신의 누이가 당한 고통의 주체인 아버지를
나와 동일시했다.
폭력의 역사는 그랬다.
가장 행복해야 할
어린이날과 생일에
잔인하게 뼛속에 인으로 박힌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의 긴 매듭이
삼촌의 죽음 앞에 풀려간다.

방랑하듯 살아간 바다 남자 삼촌.
그의 동공에
누이가 매형에게 맞고 있는 모습이 반사된다.
그날 밤 아직도 삼촌의 말이 기억난다.
'매형 하지 마십시오. 그만하십시오.'

어쩌면 이승의 마지막 인사를 건내며
부산으로 내려오는 하늘에서 안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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