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들어찬 비행기가 과연 뜬다.
여행가방에 담긴만큼 풀어낼 것이고
풀어낸 시간만큼 담아간다.
돌림병 이후 시간은 당겨졌고 공간은 조여왔다.
바퀴가 땅을 딛고 몸이 뜨자 그간 눌러온
압박이 벗겨나간다.
제주공항 통유리로 보이는 잎 넓은 나뭇잎이 내가 곧 제주라며 한들거리며 반긴다. 바람기에 묻어나는 고온다습한 공기와 넓게 뚫린 도로의 한적함이 청량하다. 도로 중간에 차를 세워 노지에서 기른 귤을 사 먹었다. 못생겼고 거치나 시큼하고 깊었다. 사람을 생각했다. 어차피 늙으면 추해짐에 속은 그래도 새로움을 채우며 살자 한다.
제주는 알다마 전구를 즐겨 인테리어 한다.
낮은 촉을 써서 눈부심이 적고 크지 않기에 따뜻하다
노을이 사그라들 때 더욱 밝아지는 알다마 전구 사이로 맥주를 먹는다. 해안을 채우던 빛이 노을에서 명멸한다. 나는 알다마 전구를 한참 바라보다 4.3 사건을 다룬 글과 생명을 느꼈다. 간첩으로 몰려 처형을 기다리는 아비가 목에 감던 목도리를 어린 아들에게 매주며 '나는 곧 죽으니 너는 따뜻이 살거라'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얼은 아들에 눈물 사이로 닥치는 겨울바람을 버텨주는 목도리 같다. 생존을 잇는 따뜻함이다.
그렇게 알다마 전구가 바람에 흔들리며 기억해온 시간을 내게 털어낸다. 아비가 처형된 해안 절벽 위 저만큼의 자리에 유채꽃이 선명하다. 어린 아들을 두고 절명한 그의 자리에 생명이 꿈틀대며 소생한다.
미사여구가 헛되다. 내 글도 가소롭다. 역겹다.
죽음을 어찌 글로 감싸는가.
나는 오늘도 겨우 썼다.
작가도 아닌 나는 감정을 글에 담을 능력이 없다.
쓸수록 우울하다. 휴일의 부산 바다 역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