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해질 사람 찾기보다 먼저 다가오는 사람 거르기
그런 인맥 따위 다 갖다 버려! 지금!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퇴사를 고민한다. 이직을 선택하면 확실한 장점은 게임을 초기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캐릭터 구성이 가능하다. 다른 컨셉을 잡을 수 있다. 공간이 바뀐다. 사람이 바뀐다. 생활이 바뀐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바뀐다.
사회적 동물 인간에게 사람이란 떼어놓을 수 없다. 회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죽하면 중요한 맥은 동맥, 경맥, 인맥이라고까지 할까? 회사에 가면 처음에는 적응을 위해, 그리고 이후에는 인맥을 쌓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과 친분을 쌓는다. 오피스 게임 초반은 보통 룰에 적응하는 동시에 사람들을 알아가고 친분을 키워가며 전개된다.
"사람과 일을 하고, 사람과 소통하며, 사람을 통해 정보를 알게 된다."
그러니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가.. 가끔은 먼저 와서 친하게 대해주는 착한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서로 어울린다. 일을 배우며 친해지게 되고, 다른 부서 직원들을 소개받으며 다양하게 사람들을 익혀간다. 특히 처음에는 길잡이가 되어줄 동료를 찾느라 혈안이 된다.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쉽게 의존하게 된다.
"사람 많이 알아서 나쁠 거 없잖아?"
"자고로 사회생활은 인맥이지!"
사람 그리고 관계의 중요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게임 초기에는 가장 주의해야 한다. 내 캐릭터가 이상하게 세팅되기 때문이다. 이때 까딱 잘못했다가 나중에 울면서 계정 다시 파야 하는 수가 있다. 이 게임은 특히 초반에 여러 캐릭터들이 먼저 다가온다. 그러나 좋다고 마구잡이로 덥썩 물면 안 된다.
공식은 아주 간단하다. "절대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된다!"
회사의 처음 1년 정도는 업무와 사람들에 익숙해지는 시기다. 반대로 이 시기는 회사가 나를 파악하는 시기다. 내 약점을 찾아 목줄을 쥐고 있으려는 것이다. 그래야 시키기 쉬워지고, 길들이기 쉬워지며, 내치기도 쉬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가 대놓고 누군가를 시켜 약점을 찾아오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항상 귀를 열고 소식을 접하는 루트를 마련해 둔다. 절대 공식이다. '회사는 사람을 통해 감시하고, 사람을 통해 경계하며, 사람을 통해 길들인다.'
게임 초에는 보통 친해져야 할 사람을 찾기 마련이다. 하나라도 더 물어보고 배우기 위해서다. 그러나 순서가 틀렸다. 친해져야 할 사람이 아니라 걸러야 할 사람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야만 캐릭터 설정을 유리하게 할 수 있다.
걸러야 할 사람을 먼저 거르고, 그다음 친해야 할 사람을 찾는 게 유리하다. 걸러야 할 사람의 유형은 사실 매우 많지만, 이는 나중에 빌런 공략 편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게임 초반 믿고 걸러야 할 유형의 캐릭터들만 살펴보자!
광대
처음 걸러야 할 1순위는 광대다. 어느 팀이든 1명씩은 있기 마련이다. 입사하면 가장 먼저 다가오는 사람이 바로 광대다. 올라간 입꼬리. 쫑긋 세운 귀. 이쪽저쪽 쉬지 않고 굴러가는 눈. 광대는 알아보기 매우 쉽다.
만능 엔터테이너 기질로 중무장한 그들. 고요와 적막이 흐르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이들은 사내 소재거리 발굴에 특화되어 있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발이 넓다. 아무 말 대잔치가 주특기다. 여러 루트로 섭렵한 최신 개그와 개드립을 남발한다. 어쩔 때는 경박스럽기까지 하다. 썰 풀려고 회사 다니는 부류다.
캐릭터가 유쾌하고 재미있어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며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 그렇기에 자신이 망가지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처음 긴장감을 풀어주는 캐릭터의 역할로 사람 좋은 이미지를 준다. 그래서 대부분 광대에게 낚인다. 그러나 이들은 공과 사의 구분이 없다.
첫날 점심 식사는 보통 팀에서 모두 함께 먹는다. 이때 유심히 관찰하자. 웃겨야 한다는 사명감에 과몰입한 나머지 이들은 모든 것을 개그 소스로 사용한다. 사람들 많은데서도 쉽게 다른 사람의 사적인 뒷담을 마구 흘려대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화는 보통 이런 식이다.
광대 : "반갑습니다. 어디 사세요?"
초맹 : "아.. 네.. 저는 초맹동 살아요."
광대 : "아 초맹동 잘 알죠. 마케팅팀 김대리도 거기 살잖아요."
사람1 : "김대리가 그 동네였어?"
광대 : "주말에 거기 갔다가 우연히 김대리 봤는데, 소개팅하는 거 같더라고요. 이거 이거 조만간 국수 먹나요? 아하하"
초맹 : (아.. 얘 말 참 드럽게 많넴.. 밥 좀 먹자!)
사람2 : "엇? 김대리님 남친 있잖아요. 깨졌나?"
사람3 : "야 몬데? 몬데? 김대리 양다리야?"
광대 : "아 다들 모르셨구나! 김대리님 작년에 결혼 쫑 났잖아요.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모여봐! 모여봐!"
누군지도 모르는 김대리.. 의문의 1패를 당한다.
이렇게 자리에도 없는 몇 사람을 일시에 소환시켜 딜을 넣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웃길 수만 있다면 아무나 까 내린다. 자극적으로 클릭을 유도하고 조회수를 아주 그냥 쭉쭉 빨아댄다. 연예부 기자를 했으면 대박은 아니어도 최소 중박은 충분히 치고 남았을 광대들. 진로를 잘못 찾아온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이들과 처음부터 친해진다면 그다음 개그 소재는 바로 내 차례다. 일단 거르고 보는 게 좋다. 게임 중반부터는 새나갔으면 하는 얘기를 일부러 흘려주면, 스피커로 꽤나 유용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초반에는 처음부터 무조건 걸러야 한다. '광대가 어디 사냐고 묻거든 그냥 집이라고 하자!'
상냥이
이들은 보통 온화하다. 나긋나긋한 화법을 구사한다. 걸음걸이가 경박하지 않고 용모가 단정하다. 시끄럽지 않다. 말투가 동글동글하고 어조는 차분하다. 상냥이들은 주변 맛집을 꿰뚫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침 9시. 이들의 자리에는 토트백이 던져져 있고, 의자에는 허수아비 세워둔 것 마냥 외투만 걸쳐져 있다. 오직 사람만 없다. 모닝커피 타임이다. 10시부터는 점심 메뉴를 검색하며 맛집 정보를 모은다. 리뷰와 별점에 민감하다. 구내식당이 있는 경우, 오늘과 내일의 메뉴 정도는 기본으로 암기하고 있다.
상냥이들의 발달사를 보자. 이들은 어중간한 캐릭터가 대부분이다. 튀는 유형도 아니고 업무력이 높지 않다. 대개 부서에서 사이드 업무를 담당한다. 그렇다고 다른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니다. 딜러나 탱커로서도 적합하지 않다. 이들은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힐러가 되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상냥이들은 주로 기존 캐릭터보다는 뉴비를 공략한다. 뉴비들은 이들의 조용한 친절과 은근슬쩍 챙겨주는 간식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친해지면 맛집투어도 시켜준다.
같이 밥 먹으러 가서 자리에 앉으면, 어느 순간 이미 내 앞에 가지런히 냅킨, 수저, 젓가락이 세팅되어 있다. 딱 2/3 맞춰 채워 둔 물컵은 보너스. 원래 세팅되어 있었나 싶을 때도 있다. 실수로 국물이라도 흘렸다면, 이미 두 장의 냅킨이 내 앞에 도착해 있다. 마치 내가 흘릴 줄 알고 있던 것처럼.. '사람 손이 저렇게 빠른가?' 가히 놀라운 스킬이다.
일하는 중간에도 힘든 건 없는지 티 나지 않게 물어봐 준다. 얘기도 잘 들어주고 공감력도 좋다. 심지어 칭찬도 잘해준다. 그래서 좋은 사람, 믿을 만한 사람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이 친절은 자신들의 게임 방법일 뿐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그 온화한 상냥함 뒤에는 어중간한 캐릭터로서의 설움과 한이 맺혀 있다. 친해지고 나면 회사 돌아가는 얘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다. 물론 과장이 반이다. "이건 비밀이야! 너만 알고 있어."라는 화법이 많다. 과장과 왜곡을 진짜 같이 말한다. 눈물 연기와 미화에 능하다. 이들 얘기를 자세히 들어보면, 핵심은 결국 자신들을 위해 등 떠미는 가스라이팅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나를 이용해서 부족한 능력치를 메꿔보려는 것이다.
동정과 연민을 MSG로 사용한다. 다 듣고 한 줄 요약해 보면 결국 가스라이팅이다. 안 먹힌다 싶으면 공략 대상을 갈아탄다. 다만 그때는 어김없이 내 뒷담이 터져 나오고 자기는 미화된다. 여차하면 뒤에서 조용히 폐급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처음 의존할 사람이 없다고 해서 상냥이들에게 어깨를 기대는 순간, 항상 뒤통수를 조심해야 되는 수가 있다. 상냥이들의 숨은 의도와 칼날은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다 알고 나서 거르려 하면 이미 늦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일단 걸러야 한다. '만약 탕비실에 갔는데, 상냥이가 둘 이상 모여 있다면 조용히 뒤로 가기를 클릭하자!'
라떼
투박한 걸음걸이. 갈지(之)자를 그리며 걷는 그들. 지그재그로 사냥감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눈가에는 적당한 주름이 꿈틀거린다.
라떼들은 보통 10년 차 이상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전형적으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 이들이 다가오는 이유는 권위와 명예를 각인시켜 주기 위해서이다. "라떼는 말이야! 내가 말이야!"
꼰대로도 불리는 이 라떼들은 연차에 따라 그 모양새와 변천사가 조금 다르다.
10년 차 이상 라떼들은 쎈척과 허세가 고정 스킬이다. 입신양명과 부귀영화에 목이 멘 이들은 주로 팀장 주위에서 서식한다. 궁극 필살기 실적 가로채기를 비롯해, 가르치기, 사서고생, 말짜르기, 남탓하기, 이랬다저랬다를 심심치 않게 시전한다. 한 문장의 반 이상을 이상한 영어로 물타기한다. 정상적 사고와 이해에 혼동을 주어 그 틈을 노린다. 남캐는 "형이 말이야!", 여캐는 "언니 믿어라!" 화법이 이들의 특이다.
15년 차 이상의 라떼들은 현란한 인맥을 자랑한다. 주로 윗선과 라인이 좋은 척을 많이 한다. 주 업무는 회의다. 일하려고 회의를 한다기보다는 사람 만나고 입지를 확장하려 회의를 벌린다. 팔아먹는 사람 레벨이 팀장, 부장 이런 게 아니라 임원이다. 의전에 강하다. 자기 줄을 잡으면 잘 될 것처럼 얘기한다. 인맥과 정보력을 소중히 여긴다. 뒤에서 일하기를 선호한다. 공유를 잘하지 않는다. 항상 연마 중인 최애 스킬은 골프다.
20년 차 이상의 라떼들은 조금 다르다. 추억을 회상하며 살아간다. 특별한 목적의식이나 악의는 없다. 이들의 특징은 했던 말 하고 또 하고를 반복하는 데 있다. 기억에 서서히 깜빡이를 켜기 시작한다. 말 한번 받아주기 시작하면 20년 치 인생 드라마를 다 들어줘야 한다. 근데 들어봐야 별 거 없다. 이뤄놓은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우여곡절 인생 드라마의 결말은 항상 자식자랑으로 끝난다.
무조건 연차로만 라떼를 따져서는 안 된다. 5년 차 이상 젊꼰들도 많다. 이들은 공정과 형평성을 가장 중시 여긴다. 그래서 당한 게 많은 이들은 자연스럽게 '너도 당해야 공평해!'라는 내면의 논리로 라떼가 되어간다. 아무튼 라떼들은 시대상과 정체성에 혼돈을 더해줄 뿐이니, 다가오면 일단 거르도록 해야 한다. '라떼들이 주관식으로 묻거든 예, 아니오로만 답하자! 그냥 피식 웃어도 좋다.'
다가오는 사람 중 여기까지만 걸러줘도 그다음 게임 전개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초반은 무조건 사람 걸러내기가 우선이다.
잘 모르겠다면 이것만 기억하자!
'절대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된다.'
결국 남는 건 사람 밖에 없다고?
결국 잃는 건 사람뿐만이 아닐 것이다.
오피스 게임 TIP. 추가로 이런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더 보지도 말고 무조건 거르자!
1. 엘리베이터 안에서, 저 앞에 사람 오는 거 보고 닫힘 버튼 더블 클릭하는 사람
2. 중국집에서 탕수육 나오자마자, 그 위에 바로 소스를 드래그 앤 드랍하는 사람
3. 지하철 문 반쯤 닫혀가는데, 거기다 대고 점프+엔터키 눌러 몸뚱이 날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