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맹 Jun 10. 2024

너만 모르는 회사 빌런? 그거 너잖아! 너!

오피스 빌런 Part 1. 조류 독감 같은 전염성 빌런


은근히 혈압 올리는 꾸러기들


매일 등장하는 수많은 오피스 빌런들. 맵에서 마주하는 이들. 적게는 최소 하루 한 번, 많게는 10번도 넘는다. 오피서들이 받는 스트레스의 원인이 무엇일까? 오피스 게임의 스트레스는 매우 복합적이고 다양하다. 다 열거하기에는 나도 모른다. 업무 스트레스? 당연히 있다. 사람 스트레스?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것은 아마도 상사일 것이다. 그것도 맞다. 상사도 빌런 중 하나일 수 있으니까..


근데 잘 생각해 보자. 의외로 빌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더 클 수도 있다. 이들은 야금야금 업무의 난이도를 올린다. 갖은 얌체질로 정신적 애너미 수치를 올린다. 그래서 뇌파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쯤 뭔가 상사에게 태클이 들어오고 딜로 연결된다. 깨진다. 박살 난다. 그다음 다시 하는 업무는 분명 아까와 같은데도, 난이도가 훅 올라가 있다.


왜일까? 이상하게 실수가 많아진다. 집중이 안 된다. 그렇다. 스피릿이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는 쉬운 것도 어려워지는 법이다. 이렇게 빌런-멘탈-업무 3단 연속기로 이어지며 계속 수렁에 빠지는 원리다.


해도 해도 줄어들지 않는 똥덩어리 같은 일거리들


업무 자체의 스트레스? 솔직히 그렇게 많은가? 빌런들만 빼더라도 반 이상은 줄어들 것이다. 오피스 게임의 빌런들은 기본 NPC부터 매우 다양하다. 먼저 잡기 쉬운 조류들부터 살펴보겠다.


조류들의 특징은 업무에 정통하지 않다는 것이다. 보통 공격력이 강하지 않다. 하지만 농락 위주의 기술들을 빈번하게 써먹는다. 이건 한 두대로 타격이 약하다. 근데 오랜 시간 지속되면 누적으로 위력을 발휘한다. 얘네가 짝꿍인 경우는 최악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보통 머리가 나쁘다. 그래서 조류다. 스킬을 잘 들여다보면 그리 어렵지 않다. 따라 하기도 쉬운 만큼 오피스 게임 유저들이 애용한다. 무슨 얘기냐?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는 뜻이다.


핑퐁이 : 이건 저희 일이 아니구요! 그쪽에서 해 주시면 좋겠어요!

이들의 주 스킬은 반사다. 보통 이슈를 먼저 꺼내지 않는다. 간단하다. 하기 싫어서다. 핑퐁이를 찾을 때는 대화의 초점이 어디로 향하는지만 보면 된다. 아마 난 하기 싫어로 귀결될 것이다. 회사에는 협업 중에 발생하는 애매한 지점들이 있다. 새로운 일, 경계가 모호한 일, 함께 뒤섞여하는 일들이다.


누군가 이슈를 제기한다. 이때 핑퐁이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초점은 어떻게가 아니라 누가이다.

"이건 저희 일이 아닌 거 같아요."

"저희도 안 해 본 일이어서요. 가이드가 명확했으면 좋겠어요."


거기 말려 그 일의 해법이나 가이드를 잡는데 시간을 보낸다. 그럼 가이드를 문제 삼으며 또 시간을 끈다. 결국 쓰지도 못할 가이드 만드는 일만 하나 늘린 셈이 된다. 핑퐁이가 있는 부서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미 내 탓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핑퐁이는 반사를 날리고 발을 뺀다. 그렇다. 그냥 하기 싫은거다.


핑퐁이들과 만날 때는 명분, 논리 이런 거 필요 없다. 처음부터 일의 단위를 쪼개 놓은 다음 공평하게 반땅 하자고 해라. 화법은 긍정형보다 부정형을 써야 한다. 일을 반으로 나눠 제안하면 분명 어렵다고 할 게 뻔하다.


핑퐁이들은 일단 지네 일 아니라고 한다.


일은 반으로 나누되 가능한 전후가 되도록 나누는 것이 좋다. 그리고 무조건 앞부분을 핑퐁이에게 넘기고, 앞이 안 되면 뒤가 안 되게 설계하자. 만나기 전에 설계를 끝내 두어야 한다. 그럼 핑퐁이가 그 일을 잘하면 이어서 그냥 하면 된다. 핑퐁이가 일을 제대로 못했을 경우 내게는 안 할 구실이 생긴다.


협의된 내용은 메일로 정리해서 주겠다는 친절함을 보이자. 그리고 핑퐁이네 상사를 첨부해서 메일을 날려두자. 메일을 쓰는 타이밍은 핑퐁이와 회의하기 전에 미리 써 놓는 것이 좋다. 핑퐁이는 돌아가서 바로 딴소리를 한다. 그다음 메일 보내면 오해네 그거 아니었네 하다가 또 원점이 된다. 임시저장 해두고 협의 끝나면 바로 쏘자. 아마 메일 온지 모르고 뒤에서 딴소리하다 한방 맞을 것이다.


만약 핑퐁이가 그 일 못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냐구? 괜찮다. 못하겠다고 했으니 진행이 어렵겠다 써서 보내라. 그럼 핑퐁이 탓으로 돌릴 수 있다. 나도 발을 뺄 수 있다. 그럼 누가 하냐고? 할 필요 없다.


협업 파트너가 조류인 일은 독박을 쓰게 되어 있다. 성과 안 난다. 짚을 지고 불속으로 들어갈 필요 없다. 그거 말고도 할 일은 항상 쌓여있다.


뺀질이 : 이거 저희 상무님 지시사항이에요! 자료 좀 보내주세요.

잘 웃는다. 사근사근하다. 유머러스하다. 먼저 말을 잘 건다. 눈치가 빠르다. 밝고 좋은 사람인가? 아니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뺀질이다. 이들의 관심사는 온리 효율과 가성비다. 효율과 가성비. 좋은 키워드다. 이것만으로 빌런이라 하면 안 된다.


그럼에도 이들을 빌런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내면의 도둑놈 심보다. 취미는 상사 팔아먹기고 특기는 꿀 빨기다. 크게 해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얌체질은 여러 유저들의 전의를 상실하게 만든다.


우리 이사님이 자료 좀 받아오래!


이들의 특징은 필요할 때만 연락한다는 것이다. 메신저가 온다. 뭔가 문의하는 대화로 시작한다. 그리고 팀장님, 이사님 지시사항으로 알아보는 거라며 상사들을 팔아 밑밥을 깐다.


실은 지가 필요한 거다. 중요하게 보이려고 부서의 관심사인 것처럼 말하는 거다. 팔아도 괜찮다. 이들은 안다. 어차피 정말인지 확인해 볼 거 아니라는 것을.. 문의사항에 대해 답해주면 긴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꼭 '자료'를 달라고 한다. 그렇다. 결국 원하는 건 처음부터 자료였던 것이다.


나중에 그 팀 가서 보면 알게 된다. 겉표지 바꿔 쳐진 나의 3개월 쌩노가다 자료를 볼 수 있다. 그렇게 꿀을 빤다. 뭐 거기까진 괜찮다. 서로 도와줄 수도 있고 그런 거니까..


문제는 얻을 게 없다는 것이다. 테스트 방법은 간단하다. 내가 필요할 때 연락해서 문의 좀 하고 관련 자료를 달라고 해 보자. 진정성의 정도가 보일 것이다. 뺀질이들은 다른 담당자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뺀질이로 판명되면 스페이스바를 눌러 거르도록 하자. 자료를 줘야 할 때는 PDF로 바꿔서 주자. 분명히 원본을 요구할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찾아보겠다 하고 바쁜 척하던가, 잘 모르겠다고 하자. 도움은 상부상조가 되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복붙이 : R&D팀에서 문의 온 내용인데요. 다 보시고 그쪽에 답변 좀 주세요.

긁는다. 누른다. Ctrl+c. 붙인다. 누른다. Ctrl+v. 전 세계인이 꼽는 최애 기능 복붙이다. 이게 나쁘냐고? 아니다. 좋다. 복붙이들의 내면세계가 문제일 뿐이다. 정신상태가 복붙질인 게 죄다. 뺀질이는 부지런한 반면 이들은 대체로 게으르다. 업무 중 7할은 복붙이요. 3할은 참조다. 스킬 셋은 필살기 복붙을 비롯해, 참조, 토스, 패스를 애용한다.


복사+붙여넣기! 이거 때문에 내가 산다.


메신저가 온다. 스크롤 3미터짜리 대화 복붙 내용이 한판 뜬다. 너무 길어 대화창에 용이 승천히는 줄..

"여기 메신저 내용 연구개발팀에서 문의한 내용인데요. 보시고 확인해서 답변 좀 부탁드려요."

3미터를 다 읽으며 파악해야 된다. 남의 대화내용을 보며 이게 뭔가 싶다. 가만. 근데 이거 그대로 토스한 거잖아. 요약이라도 좀 해 주면 안 되나? 일단 성의가 없다. 그냥 귀찮아서 그런다.


메일도 비슷하다. 다른 부서와 주고받은 업무 메일을, 태초 창세기부터 다 갖다 붙인다. 뭐지 이 메일 테러는? 이런 메일의 주제는 가장 최근 메일 맨 밑에 줄에 있다.


"@김대리님. 아래 붙임메일 참고해서 답변 부탁드려요!" 그리고 지는 쓱 빠진다. 못 빠지겠으면 참조에 계속 넣는다. 알아서 보고 니가 답하라는 것이다. 어떤 상태인지, 무엇 때문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대여섯 명과 한달 동안 주고받은 메일을 다 읽어야 된다. 메일은 이런 식이다.

Re: Re: Re: Re: Re: Re: Re: Re: Fwd: Re: Re: 마케팅 행사 지원 건 문의드립니다.


헷갈린다. 최신순으로 읽어야 할지. 처음부터 정주행 할지. 서로 주장하는 게 뭔지. 작가의 의도는 어떠한지. 그래서 지금 어떤 상황인지. 저 메일 속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어떠한지.


그냥 와서 내용 정리를 해주면 되는데, 그러지 않는다. 귀찮아서다. 더 웃긴 건 저 일이 끝나기 전까지 참조는 계속 건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알아서 읽고 알아서 하라는 거다. 나랑 별 상관없겠지. 다른 일 하고 있으면 뒤통수가 한번씩 날라온다. 내가 답 안 해줘서 일이 진행 안 된다는 거다. 그렇다. 물귀신처럼 낚고 자신의 게으름을 완성한다. 중간에 관련된 뭔가 물어보면 참조 다 걸려있으니 히스토리 확인하라고 한다.


이들은 지가 필요할 때는 바로바로 물어본다. 근데 들어보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엑셀 숫자 다 더하려는데 함수 어떻게 해요?" 이런 거다. 그렇다. 핑프다. 이거 그냥 검색 좀 해 보면 다 알만한 건데. 이따금 지가 하던 엑셀 떤져주고 함수 좀 걸어달라고 하기도 한다.


복붙이로 판명 나면 거르자. 뒤로가기를 누르면 된다. 참조를 걸거나 복붙 테러를 하거든 핑퐁이들의 반사 스킬을 쓰면 된다.

"이것은 저의 일이 아닙니다. 내용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 뒤에 무슨 말을 하던 이거 반복)" 하고 그냥 배 째자. 성의 없는 자에게는 모르쇠가 최고다.


급해충 : 빠른 회신 부탁드립니다. 미리 감사합니다.

손이 빠르다. 찔러보기에 능하다. 항상 메신저 창은 여러 개가 떠 있다. 자세히 보면 같은 문의를 여러 명한테 남긴 거다. 그게 주로 언제냐? 주간보고 작성이 오늘까지거나 상사가 물어봤는데 몰랐을 때이다. 급해충들은 대화에 항상 급하다는 말을 남긴다.

"긴급한 상황이라 바로 답변 부탁 드리겠습니다."


메일에는 항상 '빠른 회신 부탁드립니다.'가 기본 인사말이다. 그 아래 메일 서명에는 꼭 고상한 문구 하나씩은 넣는다.


'열정은 기회를 만들고, 기회는 혁신을 만든다.'

'내가 생각없이 살아간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이다.'


그렇다. 페이크다. 열심히 하는 사람인가 보다. 속지 말자. 그냥 저런 사람이라고 보여주고 싶은 거다. 급한 게 열정이고 기회를 만들면,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어제 죽어간 이들이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은, 급해서 정신 나간 하루살이 같은 내일이 아니다. 진짜배기들은 저런 메일 서명에 시간을 쏟지 않는다.


쟨 모가 맨날 급하대? 몰라 나두!


저들은 자기 보고거리가 있거나 필요할 때 무조건 급하다고 디폴트를 박고 보는 것이다. 저 급하다에는 안 급한 게 사실 반 이상이다. 급한 건 그냥 지 혼자 급한 거다. 굳이 보조를 맞춰줄 필요가 없다. 맞춰주다가 내 업무 페이스만 꼬인다.


급해충 확인 방법은 간단하다. 응답하지 않으면 된다. 진짜 급한 사람은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준다. 물론 자주 그러지도 않는다. 몇 번 테스트해서 급해충이 맞다면 그다음부터는 아예 무시하면 된다. 읽씹 하면 뭐라 할 수 있으니, 안읽씹을 하자!


이런 조류형 빌런들을 상대하다 보면 가늘고 길게 혈압이 상승한다. 울화가 치민다. 그렇다고 절대 화를 내지 말자. 스킬은 구사하기 쉬우므로 익혀두되 반드시 빌런에게만 사용하도록 하자.


정상적인 사람에게 써먹고 효과를 보면 그때부터는 내가 빌런이 된다. 조류 독감은 원래 전염병이다. 날로 먹으면 탈 난다. 뜨거운 불에 잘 익혀야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