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맹 Jun 13. 2024

사기꾼 유형의 회사 빌런 모음집

오피스 빌런 Part 2 : 실속 없는 허수아비들


쉿! 비밀이야! 이거 너만 알고 있어!


오피스 게임에는 무수한 빌런들이 득실거린다. 때로는 모두가 빌런 같아 보인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일회성 행동까지 빌런으로 보기는 어렵다. 최소 조건은 3회다. 우리말에 삼세판이라고 했다. 세 번 이상 반복되면 습관이고, 습관을 따르면 일상이다.


오피스 빌런은 후천적 스킬에 의해서도 발달하지만, 태생, 자질, 내면, 배경 같은 선천적 요인을 가지는 경우가 더 많다. 선천성의 발달이 강할수록 고유한 빌런 캐릭터 브랜딩이 가능해진다. 따라 하기도 쉽지 않다는 말이다.


어우! 빌런이다! 서둘러 뒤로가기를 누른다.


오피스 빌런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다. 그중 허수아비과가 있다. 공격력이 강하지는 않다. 그러나 빌런들 중에도 가장 못 믿을 유형이다. 맞다. 사기꾼이라고 보면 된다. 이들은 기본 성향이나 발전사에 따라 표현되는 것이 다를 뿐, 감별 시 딱 하나만 보면 된다. 말과 컨텐츠에 실체가 있느냐이다.


허수아비 빌런들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지식인 : 유식한 척, 세련된 척, 상류인 척

어렵다. 복잡하다. 세련되다. 유식하다. 그래서 지식인이다. 해외파래.. 주입식 K 교육의 성공작이다.

이들은 고스펙을 태생적 배경으로 깔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다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지식인이 빌런이 되어가는 과정은 보통 첫 단추를 잘못 끼우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엘리트의 열매를 맛본다.


플래닝과 리서치, 협상 중심의 업무에서 자연스럽게 윗분들을 많이 접한다. 대접받는다. 나름 엘리트로서의 기대감에 짓눌린다. 와이드 한 업무 범위를 모두 깊이 있게 다 알 수는 없는 법. 그래도 학습력은 좋다. 삽시간 공부해서 겉만 핥는다. 그리고 그 해법을 지식인 타이틀 앞세워 화법에서 찾는 것이다.


윗분들이 좋아하는 표현을 익힌다. 써먹어본다. 된다. 먹힌다. 얇고 폭넓은 윗분들은 이런 고급진 표현을 좋아한다. 이에 타 부서 사람들에게 같은 화법을 구사한다. 다들 상류층은 이런 화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자신을 상류층에 빙의한다.


"플랙서블한 퀄러리 컨펌을 위해 리소스 인풋 시기는 스트렐러직하게 어저스먼트 해야 합니다."

"프레즌트! 현재. 프레즌트! 참석. 프레즌트! 선물. 지금 모두가 함께하는 것이 바로 선물입니다."


끄덕인다. 감동한다. 안 먹힐 것 같은데 의외로 먹힌다. 대부분의 오피서들이 한영키를 번갈아 쓴다. 그것이 급여화술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내면의 이유는 더 간단하다. 무식해 보이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작용해서다. 어려운 표현이 나와도 보통 끄덕인다. 그래서 지식인들에게 낚이게 된다. 저걸 알아듣는 시늉이라도 해야 좀 있어 보여서다.


지식인들은 이를 이용해 저런 류의 표현을 3 콤보 연타로 날린다. 여기서 해석기를 돌리는데 시간이 필요해진다. 그 틈에 이들은 다 정리를 해 버리고 떠난다. 해석을 마치고 나면 이미 늦었다. 테이블에 뭔가 똥이 하나 남아있다. 방금 싼 모락모락 김이 나는..


그렇다. 뭔가 던지고 간 것이다. 그래서 무슨 리소스를 언제 어떻게 투입해야 되는데? 그 프레즌트가 뭔데? 맞다. 저들의 화법은 알맹이가 없다. 그걸 눈치채는 걸 늦도록 만드는 시간차 공격이다. 검은 봉지에 똥을 넣고 꼭꼭 묶어 냄새를 막아 겉에서 보이지 않게 밀봉한다. 그리고 한영키를 마구 번갈아가며, 똥이 들통나지 않게 마치 친환경 거름인 양 오버 드라이브를 걸고 떠드는 것이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 똥 치워 줘!"인데, 글로벌 친환경 추세까지 등장한다. 다 떠들고 결론을 낸다. 방법이나 세부적인 것은 알아서들 상의해서 하라는 얘기다. 맞다. 결국 목적은 전가다.


내가 바로 신지식인. 너희 같은 프롤레타리아들과는 달라!


지식인의 전가 이유는 딱 2가지다. 첫째. 자신의 엘리트 의식이 실무를 가로막는다. 실무 처리를 하급 일로 여긴다.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돼? 이건 너네 일이지.'라는 생각이다. 일을 해결할 의지보다는 던졌으니 잘 풀어봐..라는 뉘앙스다. 실무적인 고민의 흔적은 전혀 없다. 물론 해법까지는 바라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둘째. 엘리트로 자라온 이들은 부탁을 어려워한다. 인생을 아쉬운 소리 하며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키는 형태를 띤다.


이들의 패턴은 3가지 단계로 압축된다. 못 알아듣게 한다. 던졌으니 끝났다. 적당히 보고한 뒤 털어낸다. 윗분들은 잘 진두지휘하겠거니 한다. 위에서는 누가 하던 상관없다. 다만 지식인들은 품의서에 민감하다. 기안자가 곧 그 일의 성과를 가져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영리한 이들의 오피스 게임 해법은 윗분들에게 쉽게 인정받는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천적이 있다. 바로 단순무식한 단순이들과 장인이다. 단순이들에게는 저런 화법 자체가 안 먹힌다. 그래서 혼자 HP만 소비해 대며 진도를 빼지 못한다. 장인은 극도로 피하려 한다. 이슈에 엮인 장인이 등장할 경우, 알맹이 없는 모든 실체가 탄로 나며 지식인의 이미지가 안드로메다에 처박히기 때문이다. 장인에게 막혀 진행이 안 된다. 다른 수를 찾아야 한다.


즉, 저들을 상대해야 한다면 장인을 대동하자. 장인은 얕은수를 싫어하기 때문에 알아서 상대해 줄 것이다. 장인이 없다면 단순이로 빙의하여 꼬치꼬치 캐물어 보자. 특히 저들이 뭔 소리를 하던 신경 끄자. 그저 방법만 찌르고 들어가라.


"그래서 뭘 어떻게 하면 돼요? 아직 가지 마세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이거랑 이건 누가 하나요? 다 정해주시는 거에요?" 꼬리에 꼬리를 물어라. 이대로 30분 지나면 밑천을 드러낼 것이다. 혹여나 저들의 화법을 같이 알아듣는 척했다가는 그대로 말린다.


전문병자 : 지식인을 동경한 영원한 미생

지식인의 하위호환이다. 지식인을 동경하는 이들은 실제 업무 역량이 없다. 그래서 적당한 화법과 문서 스킬만 발달한다. 이들의 내면은 심한 열등감이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지식인스러운 화법과 정돈된 문서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여긴다.


주로 회의를 하게 되면 주도권을 쥐기 위해 사회자의 포지션을 차지한다. 회의를 주도하려고 사회자를 맞는 게 아니다. 시사 프로 사회자 코스프레라고 보면 된다. 실은 자신이 일을 맡지 않기 위해서이다. 자신은 제3자적 입장을 취하고, 모인 다른 이들에게 업무를 전가한다. 사회자는 일을 맡지 않는다는 프레임을 암암리에 씌우는 것이다. 전가로 보이지만 실은 회피다. 업무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능력의 열등함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전문병자는 아이디어를 내는데 역량이 떨어진다. 생각하는 것을 가장 어려워한다. 그래서 있어 보이기 위해 지식인들을 모방한다. 정답을 말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정답을 모른다는 결점이 상호작용한다. 그 결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애매모호한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한다.


야! 회의를 하면 방안을 내야지. 자꾸 MC질 할래?


회의 중이면 대화는 뜬구름 퐁퐁으로 흘러간다.

"지금 두 달째 실적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올릴 수 있을까요?"

"이럴 때일수록 보다 공격적인 세일즈를 펼치는 동시에 적극적인 마케팅을 병행해야 합니다."

"오호! 그게 뭔데요?"

"다양한 소비자 패턴을 분석해 전략을 짜고, 그에 따른 실행 방안을 마련해서 매출을 견인할 수 있는.."

"그걸 누가 몰라요?! 그니까 방법이 뭐냐구욧!!"

지식인에 비해 말 자체는 알아듣기 쉽다. 근데 일단 주어가 없다. 그리고 어떻게가 없다.


이들이 작성한 자료에서 고스란히 나타난다. 문서의 형태만 보면 보통 깔끔해 보이고 잘 만든 것처럼 보인다. 근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시 다 겉도는 내용이다. 그 소리가 그 소리인 게 대부분이다.

촉진 전략 : 공격적인 세일즈와 마케팅 전개
전개 방안 : 어그레시브 세일즈 전개 및 행사 확대 + 폭넓은 미디어 마케팅 실행


그렇다. 사실 얘네는 그냥 찐따다. 진따 아닌 척 포장하다 보니 빌런이 된 것이다. 수가 얕기 때문에 금방 보인다. 같은 부서라면 이미 신입 빼고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다른 부서라면 아마 그 부서 선임들에게 많이 깨지고 있을 것이다.


지식인에 비해 공략 난이도는 쉽다. 어떻게만 반복해서 물어보면 된다. 밑천은 10분도 안 돼서 드러난다. 다만 협업해야 하는 사이라면 개소리에 혈압이 급상승할 수 있다. 정신건강에 일절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시하고 혼자 하기를 강력히 권한다.


저들은 애초에 능력이 딸려서 핑계를 워낙 잘 댄다. 아마 너가 안 해서 늦어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것들 입만 열면 그짓말이다. 그때 누가 뭐라고 하면 혼자 하는 걸 보여주고 뒤통수를 함 날리자. 전문병자가 찐따라서 혼자 하고 있다고 하면 된다. 다들 이해하고 위로해 줄 것이다.


뒷담이 : 쉿! 이건 비밀인데, 너만 알고 있어!

모든 오피서들의 스트레스 원흉 뒷담이다. 전투력은 낮다. 그러나 방심할 수 없다. 이들은 보통 착해 보인다. 너무 습관화가 되어 자신이 뒷담이인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반면 이따금 내 편이라 말해주는 착한 사람도 있다. 뒷담이는 알아채기 어렵다.


쉿! 비밀이야! 이건 말하면 안 되는데..


일단 혼자 다니는 사람은 뒷담이에서 제외다. 선 긋고 사는 사람일 가능성이 더 높다. 뒷담이는 보통 2명 이상 조를 이뤄 다니는 습성이 있다.


뒷담이를 분간하기 위해서는 먼저 뒷담의 종류를 잘 봐야 한다. 우선 뒷담이 사람에 대한 뒷담인지를 살펴보자. 물론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할 수도 있다. 단, 사람에 대한 네거티브나 은밀한 사적 이야기를 하는지만 보면 된다. 의심은 되는데 잘 모르겠다 싶으면 테스트를 해 보면 된다. 회사에서 모르는 내 얘기를 슬쩍 흘려보고 언제 내 귀에 들어오는지 보면 된다. 밝히기 좀 그러면 거짓말로 해도 좋다.


"아.. 이거 어디 얘기하시면 안 돼요. 제가 긴장하거나 그러면 손톱 물어뜯는 습관이 있는데 안 고쳐져서 요새 너무 스트레스에요."

아마 한 달 내에 다른 누군가를 통해 내 귀에 들어올 것이다. 그것도 아무 때나 손가락 물어뜯는 정서불안 중증 장애라고.. 못 고치는 불치병이라고..


이들의 뒷담 유도 스킬. 슬쩍 던지는 "초맹 쟤 어떤 거 같애?" 이런 말에, "초맹 걔가 젤 별로에요! 미친 거 같애요!"하고 싶겠지만, 참아라! 이간질에 걸려들 뿐이다. 참으라고!!


뒷담이가 무서운 이유는 나를 이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뒷담으로 인해 때로는 빌런으로 오해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한 뒷담이 곧 이간질로 발전한다. 필터 없이 얘기를 그대로 전하기 때문이다. 아니 간장에 양념장 듬뿍 처발라서 전하기 때문이다. 소문이란 몇 바퀴 돌면 미친연놈이 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출발지는 사라진다.


뒷담이들은 무조건 거르되, 이들과 얘기해야 할 일이 있다면, 정답은 "아 그렇군요." 내지는 "잘 모르겠어요." 정도만 하자. 다시 이들에게 뭔가 되묻거나 하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꼬리를 물고 나도 뭔가 하나는 얘기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얘기해 주면 듣되 궁금해도 더 물어보지 말자. 그닥 쓸모 있는 정보도 없다. 이간질 유도심문에는 무조건 모르쇠다. 동양은 모르는 게 약이다.


따라오지마! 이 빌런들아!


빌런을 공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맞서기보다는 피해 가는 것이다. 혹자는 알량한 자존심과 성리학의 대의명분에 심취하여 똥을 피하는 명분을 설파한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다.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다. 왜? 무서워서 피하는 거면 진 거라서? 아님 쫄려서? 다 부질없다. 복잡하다. 머리 아프다. 그런 거 따질 시간이 없다.


똥은 더러워서 피하든 무서워서 피하든 상관없다. 뭐때매 피하게 되든, 결국 피해야 하는 것일 뿐이다. 원래 이 게임 설정이 그렇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만 모르는 회사 빌런? 그거 너잖아! 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