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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맹 Apr 15. 2024

회사가 IT를 바보로 전락시키는 방법

IT 부서가 1년 365일 바쁜 진짜 이유


너희가 노는 문명 세계는 우리가 만든 거야!


조용하다. 말이 없다. 절제된 키보드 소리만 들린다. 회사와 고객들에게 문명의 이기를 제공하는 부서! 4차 산업혁명의 근원지! 그렇다. IT 부서의 풍경이다.


IT 시스템팀, 정보전략팀, ICT 혁신팀, SW 개발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핵심은 개발자 집단이라는 것이다. 주력 사업이 포털 서비스, 쇼핑몰, 금융, 통신 이런 경우 회사의 밥줄까지도 좌지우지한다.


IT 부서는 타 부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보인다. 그들만의 색다른 세상이다. 모니터 2~3개는 기본 번들 패키지다. 여러 대의 스마트폰, 태블릿, 최신 기기들로 중무장하고 있다. 개발자라 불리는 이들은 현란한 기술 세계관을 열어간다. 컴퓨터 만은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살아간다.


반쯤 누운 자세. 편안함과 안락함이 집중력의 조건이다.


일상 대화보다 메신저를 선호한다. 말보다 챗이 더 빠르고 편하다. 채팅과 댓글로 모든 감정과 심경을 표현해 낸다. 근데 직접 가서 보면 다 무표정하다.


이들은 대체로 조용하다. 영어 약자를 많이 사용한다. 외계어 최고봉이다. 정확한 걸 좋아한다. 규칙을 좋아한다. 말이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무엇이든 논리회로를 돌리는 로지컬 마인드 끝판왕이다.


타 부서와 업무 미팅이라도 다니면 통역사를 대동한다. 보통 기획자가 이들의 통역을 담당한다.

초맹 : 저희 제품 정보들이 기획 디자인 메뉴에도 나왔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하면 돼요?

개발자 : PRD 마스터는 AWS RDS DB에 있고, 디폴트는 레스트풀로 통신합니다. 요청 주시는 기획 디자인 메뉴는 인터페이스를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API 게이트웨이 하나 뚫고 람다 함수로 쏘게 해서 프로비저닝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초맹 : 네?? (아씨.. 뭐라는 거야?)

기획자 : 잘해 주실 수 있다네요. 맞죠?

개발자 : (끄덕끄덕)


개발자들의 휴식 타임. 유머 코드도 다르다. 뒷담도 암호화되어 있다.

"백엔드 들어가면 원래 1로 떨어지거든. 근데 A, B, C, D로 나오게 해 달래. 코드 1이랑 0밖에 없는데!"

"if 한번 하면 끝도 없어! 계속 else if만 할 꺼야?"

"그냥 걔들 인생 0으로 해서 반복문 실행한다 그래!

"그럼 배치 태워서 돌려야 되나?"

"아니. 걔들 다 컨테이너에 싸서 배포 뿌려버려!"

"깔깔깔깔!!"

".... (If I Were.. 뭐 이런 건가?)"


개발자는 대화 자체가 암호 통신의 영역이다.


개발자는 전문성만 놓고 보면 충분히 딜러형 캐릭터도 가능하다. 근데 오피스 게임에서는 다 탱커다. 회사가 이들의 포지션을 그렇게 만들어 놓는다. 늘 말없이 영어 한 가득한 검정 바탕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지만, 이곳은 총성 없는 전쟁터다.


IT팀은 크게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프로젝트와 현 시스템을 운영하는 오퍼레이션으로 구분된다. 프로젝트는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새로운 서비스나 시스템 리뉴얼, 신규 구축 등을 수행한다. 프로젝트 멤버에 당첨되면 주말 없는 야근 일상과 마감에 쫓기며 똥줄 타는 경험을 1년 넘게 체험할 수 있다.


프로젝트 마감 전. 이제 다 왔다. 새로운 시스템을 오픈한다. 고생했다고 서로 격려한다. 그리고 축배를 들려는 순간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에러 폭탄이 터진다. 1년 넘게 모든 것을 바쳤음에도 곳곳에서 욕이 바가지로 날라온다. 또다시 안정화라는 명목 아래, 수개월을 다시 A/S로 허무하게 보낸다.


가끔 사람들을 피하려 딴데 가서 일하기도 한다.


한편 기존 시스템을 운영하는 개발자들은 어떨까? 익숙하니까 좀 낫지 않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이들의 일상은 시달리기다. 길 잃은 많은 오피서들이 오늘도 갈피를 못 잡고 수시로 연락해 온다.


어디에 뭘 물어봐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 컴퓨터와 관계있다 싶으면 다 쫓아온다. 일단 찌르고 본다.

"저 PC가 좀 이상한데요. 와서 봐 주실 수 있나요?"

"네? 그걸 왜.. 저희 컴퓨터 수리점 아닌데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뭐만 안 되면 찾는다.

"시스템이 에러가 난 것 같아요!"

"어느 시스템이죠? 오류 증상 좀 알려주세요."

"엑셀이구요. 동그라미가 계속 돌다가 꺼졌어요."


아무 말 대잔치의 막말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개발자들의 분노와 방어력이 높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GPT로 그 뭐냐.. 사업을 인공지능화 해주세요."

"네? 저는 개발자지 발명가가 아닌데요."

"개발이 발명하는 거지. 그게 그거 아니에요?"


"사내 포털 검색, 구글처럼 좀 빠르게 해 주세요."

"그건 구글이니까 되는 건데요."

"그럼 우리 IT팀은 그 정도 실력도 안 되나 보죠?"


"제가 하는 일을 다 자동으로 되게 만들어 주세요!"

"네? 자동으로 뭘 어떻게요?"

"그 모냐 프로그램해서 자동되게 하면 되잖아요."

"그 자동은 누군가가 다 수동으로 만드는 거에요."


"컨텐츠가 너무 없어요. 브런치에 있는 글 실시간으로 끌고 와서 우리 게시판에도 싹 다 올려주세요."

"지금 저더러 브런치 해킹하라구요?"

"요샌 크롤링, 매크로 이런 거로 다 돼요. 딴 데 다 그렇게 해요. 개발자면서 잘 모르시나 보네요?"


많은 사람들이 개발자를 찾아온다. 대부분 업무 요청이다.


지친다. 진이 빠진다. 기가 빨린다. 기운이 없다. 벌써부터 HP가 바닥을 친다. 순진하게 컴퓨터라도 한번 고쳐주는 날에는 삽시간에 소문이 퍼진다. 너도나도 꽂아 쓰는 급속 충전기로 전락한다. 틈만 나면 마구 찔러보는 사람들로 인해 방어력부터 키운다.


이 정도는 양호하다. 다른 부서들의 숟가락 얹기와 빌어먹기에도 쉽게 엮인다. 사업 보고를 하면 너도나도 IT 기술을 이용한 사업을 하겠다고 나댄다.

'AI 인공지능을 이용한 첨단 연구 환경 조성'

'ICT 사물 인터넷이 여는 커넥티드 팩토리'

'빅데이터로 여는 빅인사이트 마케팅 전개'

'IT 알고리즘 개발로 고객 맞춤형 금융 상품 추천'


있어 보인다. 세련되어 보인다. 게다가 사업부서가 노력 안 해도 되는 노다지 아이템! 그렇다. 바로 IT다. 잘 되면 사업부 공. 안 되면 IT 탓이다.


IT 관리자들은 이런 사업부서들의 만행을 저지하고 다니기 바쁘다. 그래도 미처 손이 닿지 못한 곳은 있기 마련. 결국 몇 가지 똥을 치워야 하는 신세가 된다. 윗선과 맞닿아 있는 전략실이나 임원들이 이미 사장에게 보고라도 해 버렸다면 빼박이다.


윗분들은 컨설턴트를 참 좋아한다.


"바이오는 R&D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기록 보관하고 분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세계적 기업 초맹바이오사이언티픽은 이미 AI를 이용한 바이오 연구와 분석 시스템, 생산 설비까지 모두 만들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 바로 IT에서 시작됩니다. 경영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는.."

어디서 겉만 핥다 온 컨설턴트의 한마디. 오너는 거기 꽂힌다. 그리고 절대 공식이 되어 버린다.


으어.. 장애가 났다. 시스템 장애!


이때부터다. 우당탕탕! 조용하던 IT팀에 곡소리가 울려 퍼진다. 안될 것을 알면서도, 망할 각이 보이면서도, 삽질임을 깨닫고도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밤이 깊어간다. 날이 샌다. 많은 개발자들이 이런 프로젝트를 하고 나서 과감히 이직한다. 이유는 심플하다. 죽을 것 같아서다. 하고서도 욕만 먹어서다. 폐인이 되기 직전 살기 위해 탈출한다. 이 따위로 만들어진 시스템은 사상누각인 법. 모래 위에 지은 ICT 성은 곧 와르르 무너진다. 프로젝트팀에 이어 시스템 운영팀도 연쇄효과로 죽어 나간다.


한편 사업부서들은 열심히 시스템 화면 캡처해서 성과 냈다고 보고한다. 홍보실에도 찔러주고 언플도 한다. 됐다. 나머지 뒤처리는 IT팀이 알아서 하겠지.


개발자의 장점이자 단점은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는 것


이들은 상위 레벨의 기술을 가지고 문명을 뒤흔든다. 회사는 IT의 중요성을 잘 안다. 특히 대기업들은 데이터센터를 위탁하지 않는다. 정보와 기술을 조합해 다른 사업에 써먹을 수 있는 게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윗선에는 뭔가 은밀히 조작하고 싶거나 공개하고 싶지 않은 정보들도 많다. 그래서 정보망은 내부에 끼고 있어야 한다. 이게 진짜 이유다.


IT는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의외로 오피스 게임의 강자로 군림하지 못한다. 캐릭터 밸런스가 한쪽에 치우쳐져 있기 때문이다. 스킬을 연마한 대가로 HP를 너무 많이 소진한다. 공격력을 방치한 채 방어력만 너무 키웠다. 순서도로 무장한 뇌 구조는 유연성이 떨어진다. 외계어로 도배된 커뮤니케이션은 언어 장벽에 부딪친다.


회사는 년차가 오래되면 관리자를 시킨다. 기술력이 떨어져 간다. 여전히 코드를 짜고 싶다. 개발자는 기술로 말하는 것이라 했다. 이 지점에서 자아 괴리감이 생긴다. 한계를 체감한 개발자는 실리콘 밸리를 꿈꾸며 스타트업을 차리거나, 화술을 연마하여 컨설턴트가 되기도 한다.


난 모르겠고 오늘 피터 드러커 드립 너무 좋았어.


회사의 오너를 비롯해 상류층 지식인에게 이들은 매우 활용 가치가 높다. 우수한 스킬 셋과 자질에도 오피스 게임은 이들의 캐릭터 성장에 처음부터 선을 그어 놓는다. 이유는 하나. 그들이 모니터 밖 세계로 나오는 순간 회사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니터 안에 가두어 현실과 멀어지게 만든다. 그렇게 재주는 개발자가 부리고 돈은 되놈이 받는다.


그나저나 피터 드러커.. 참 사람 여럿 죽인다.

그로 인해 죽은 사람, 죽어가는 사람, 앞으로 죽을 사람은 아마 셀 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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