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반발없는 인건비 삭제 방법
리프레시 문화에 속지 마라!
회사가 인건비를 낮추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다. 채용에서 낮추는 것과 재직자에게 낮추는 것. 채용에서의 할인은 전편에서 다루었다. 재직자에게 인건비를 낮추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러나 의외로 큰 반발 없이 인건비를 깎아내는 사이드 스킬이 있다.
인건비 중 메인 메뉴는 아닌데, 김치, 상추처럼 은근 신경 쓰는 사이드 메뉴 정도의 느낌이다. 급여로 인식하지 못하게 물타기 한다. 야금야금 티 안 나게 깎고자 사내 리프레시 문화를 조성한다. 돈이 목적이지만 문화라고 포장한다.
초과 근무 방지와 의무 휴가제
신바람 나는 일터와 워라밸을 가장해 초과 근무를 가로막는다. 그렇다. 수당을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일은 줄지 않는다. 야근은 생긴다. 이 게임의 설정이다. 어쩌겠는가? 유저들은 밤늦게도 사냥을 해야 된다는데.. 거기다 회사도 이걸 원하는데..
수당 방어를 위해 초과 근무 신청을 까다롭게 만든다. 결재 단계를 2~3단계 넣고, 이틀 전까지 결재 난 것만 허용한다. 퀘스트 난이도가 훅 올라간다. 여기까지 해 놔도 100명씩 올라오던 초과 근무 신청이 70~80%는 줄어든다. 그래도 바늘구멍을 통과해 초과 근무 퀘스트를 깨고야 마는 용자들이 꼭 있다.
저것들 맘에 안 든다. 막아내야 한다. 중간 보스를 투입한다. 명단을 보고 팀장에게 연락한다.
'그 팀 업무 배정 좀 잘해라. 왜 하는 사람만 야근하냐? 문제 될 수 있으니 관리 잘해 달라!' 딜 한번 날린다. 이에 팀장은 초과 근무 올리지 말라고 한다. 결국 비공식 야근이다. 여기서도 당연히 말이 나온다.
이번에는 살짝 비틀기를 시전 한다. 초과 근무를 휴무로 메꿔준다. 어차피 일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누가 쉬고 누가 일하든 관심 없다. 총량만 채워지면 된다. 돈만 안 나가면 된다. 다만 그 보너스 휴무는 보장성 보험이 아니다.
연차 수당 삭제
연차는 사용하지 않으면 돈으로 돌려받는다. 직원들에게 연차수당이란 1년 일하고 받는 추가 보상이다. 회사는 안 나가도 될 돈이 나가는 것 같다.
매년 반기가 지나면 HR은 연차 현황을 들여다본다. 팀장들에게 독촉한다. 리프레시와 워라밸을 위해 휴가를 적극 장려하라고 한다. 장려하는 것은 맞는데 목적은 다 거짓말이다. 이미 계산기 두들기고 하는 소리다. 언젠가부터 HR은 손에 이력서보다 계산기를 더 많이 들고 다닌다.
그렇지만 이 게임에서 연차 사용은 그리 쉽지 않다. 연차 하루를 쓰기 위해 엄마가 아파야 한다. 벌써 몇 번 아팠던 것 같다. 가족 생일파티는 꼭 주중에 해야 한다. 없던 제사도 생긴다. 1년에 제사만 두세 번 지낸다. 병원은 회사 근처가 아닌 집 근처가 국룰이다.
그렇다. 연차란 그런 것이다. 이유 없이 이유를 만드는 것. 거짓말 같은 스토리에 기꺼이 속아주는 것. 그렇게 해도 연차는 다 쓰지 못한다. HR은 고뇌한다. 연차수당. 이 쌩돈의 삭제 방법.
연차를 강제로 쓰게 한다. 다 안 쓰면 돈 안 준다고 한다. 언제 쓰겠다는 계획서를 받는다. 시스템에 사용일을 입력하게 한다. '쓰라고 했는데 못 쓰면 니 탓!'을 시전 한다. 신선 식품도 아닌데 연차에다 유통기한 붙이고 지나면 자동 삭제해 버리는 곳도 많다.
심지어 노비들을 위하는 문화 행사로 포장한다. 리프레시 데이 같은 걸 만든다. 매달 하루 회사 셔터를 내려버린다. 한 달에 한 번 강제 삭제를 누른다. 그러나 셔터를 내려도 쥐구멍으로 들어와서 일하는 성실병자도 있다. 방구석에 숨어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어쩔 수 없다. 일의 총량은 변하지 않으니까. 현실에서 연차를 쓸 수 있던 없던 알 바 아니다. 연차 수당 위에 마우스 올려놓고 [Delete] 키만 누르면 된다.
포괄임금제와 은근야근
포괄임금제는 연봉계약 시 기본 채택되는 룰이다. 여기에는 보통 기본급에 초과근무수당을 일정하게 끼워 넣는다. 급여설계의 기본이다. 이 포괄임금제는 활용도가 높다. 야근이 일정하지 않은 점. 시간 측정이 확실하지 않은 점. 이런 변수들을 퉁쳐서 초과근무수당으로 매달 일정액을 할당한다.
야근 많이 해도 할 말이 없다. 억울하다. 근데 어쩔? 고정 수당 이미 넣고 싸인했는데. 그럼 야근 없이 칼퇴만 하면? 그래도 초과근무수당은 받는다. 개꿀이라고? 아니다. 원래 줄 돈 잘라서 편성한다. 그 정도는 이미 시나리오에 있던 거다. 기본급이 최저 임금 밑으로만 안 가면 된다. 기본급 적당히 낮춰 잡는 게 설계의 핵심이다. 이는 성과급 홍보에도 탁월하다.
회사는 성과급 한번 줄 때 어마어마한 보도 자료를 배포한다. 잘 보고 생각해 보자.
‘여보! 우리 이제 집 사자! (주)초맹 고공행진. 성과급 900% 직원들 환호성. 미쳤다! 터졌다!’
이런 기사 많이 봤지? 이때 저 %는 거의 기본급 베이스다. 회사마다 급여 체계가 다르기에, 보너스 300%나 900%가 별 차이 없을 때도 있다. 기본급이 높다면 300%만 돼도 금액이 꽤 나온다. 근데 보기에는 900%가 훨씬 높아 보이지?
친구들과 만나 얘기한다. “우린 보너스 200% 나왔어. 너네는?”, “조금 나왔네? 우리는 500%야!” 근데 알고 보면 %는 낮은데, 금액이 내가 더 많을 때가 있다. 사람들은 돈의 절대 액수를 잘 까지 않는다. 돈은 민감하다. 자본주의 신분격차를 느끼게 한다.
급여 설계에는 이런 심리적 요인도 반영된다. 그렇다고 기본급을 무조건 낮게 세팅하는 건 좋지 않다. 직원들에게 초과근무로 돈 버는 느낌을 준다. 기본적으로 월급이 너무 없어 보인다. 회사마다 기본급과 초과 근무 수당의 할당은 차이가 많다.
아. 말이 샜다. 어쨌든 이런 꾸러기 같은 자랑질에도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급여설계에 초과수당이 편성되기 때문에, 은근히 야근을 하게 되는 은근야근 효과가 발휘된다. 즉 심혈을 기울인 급여설계는 직원들의 반발 없이 야근을 하도록 이끈다. 덜 주고도 더 많이 주는 것처럼 보인다.
사이드 급여 스킬에 당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뭘까? 연차 수당이나 초과 근무에 대한 보상을 덤으로 여기는 오피서들의 인식 때문이다. 그래서 별 다른 반발이 없다. 대부분 정해진 월급만 안 건들면 된다고 여긴다. 그 인식을 교묘히 이용해 돈을 주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이 탄생한다. '연차 다 못 썼네.. 아쉽다.', '저번 프로젝트 내내 야근. 그래도 하루 쉬었으니 됐어!' 이런 생각. 암묵적으로 한 달 월급 +@가 되는 요인을 덤으로 여긴다. 핵심은 그게 아니다.
실제로는 받을 돈이 교묘하게 삭제되고 있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 그럼 한 달 월급 대신 한 달 쉬라고 하면 좋은가? 돈 뱉어내고 시간 얻으면 이게 본전인가? 아니다. 그럼 백수다. 사상을 뒤집어 볼 필요가 있다. 돈으로 받는 게 디폴트라는 것이다.
이런 사이드 스킬은 오피스 게임 유저들의 반발이 적다. 그래서 여전히 반칙으로 선언되지 않는다. 한번 계산해 보라. 못 받은 수당, 오버타임, 날린 휴무, 돈 대신 준 휴무. 매년 삭제 당하는 금액은 적어도 한 달 치 월급 이상 될 것이다.
급여명세서를 볼 때, 제도를 볼 때, 왜 저렇게 되어 있을까? 한 번쯤 생각해 보자. 분명 이면에 숨겨진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설명을 요구하면 대개 "크게 달라진 것 없어요. 기존과 비슷해요."라고 할 것이다. 아니다. 거짓말이다. 그럼 바꿀 이유가 없다.
포커스는 누가 이득을 볼까이다.
대부분 여러분들에게 유리한 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