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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맹 Apr 01. 2024

회사가 월급 주면 감사해야 될 거 아냐!

회사가 불황일 때 감사실이 막강해지는 이유


우리의 칼 끝은 언제나 너희를 향하고 있다!


바람이 분다. 싸늘하다. 한여름에도 주위에 냉기가 돈다. 날카로운 셔츠깃. 살아있는 눈빛. 묵직한 걸음걸이.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째려본다. 어깨에는 자신감이 한 뽕 차 있다. 이들이 지나가면 홍해 갈라지듯 사람들은 알아서 비킨다.


회사제일검 감사실. 회사의 정의구현과 자정 기능을 담당한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깨끗한 회사! 투명한 거래! 부패의 청산!'

감사실 슬로건은 다 비슷하다. 이들의 역할은 올바른 가치관 전파와 사내 부정부패 척결이다. 특히 자금에 민감하다. 우선순위는 돈이다. 횡령, 배임, 리베이트, 뇌물, 새는 돈, 눈먼 돈 이런데 관심이 많다.  


유저들은 감사실을 보면 일단 피한다.


감사실은 자금 흐름에 능숙한 금융 스킬러와 애사심으로 무장된 어태커로 채운다. 이들의 말투는 딱딱하다. 표준어에 매우 집착한다. 두 번 말하는 거 싫어한다. 자신들의 실수는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명실공히 오피스 게임 공격력 원탑이다. 무기는 성검 엑스칼리버! 모든 사악한 기운을 물리친다. 패시브는 방어력 무시다. 상대 방어력에 관계없이 500% 막강 극딜을 꽂아 넣어 저 세상으로 보내 버린다. 세계관 신의 경지인 임원들도 감사실은 조심한다.


주로 회사의 실적이 안 좋을 때 감사실의 위용을 볼 수 있다. 실적이 저조하거나 꼬꾸라지는 사업 부문 하나를 표적 잡고 감사에 돌입한다. 한 달 동안 100 종류도 넘는 사업 관련 자료들을 계속 제출하게 한다. 그리고 다음 달이 되면 보완해서 다시 가져오라고 한다. 이후 내용과 예산 집행, 사업 타당성, 거래처, 업무 담당자, 결재 서류 등 주도면밀하게 파악한다. 전산 내역과 맞는지 대조한다. 실은 다 보지도 못한다. 진을 빼놓는 하나의 갑질 스킬이다.


제가 그런 거 아니에요! 살려주세요!


감사 기간에는 수개월 동안 사업부문 직원들의 곡소리가 나온다. 요구 자료를 만들고 또 만들고 쉬지 않고 계속 만들어 바친다. 지들은 퇴근하면서 내일 출근하면 볼 수 있게 해 달랜다. 탈수기 속 나풀거리는 빨랫감 마냥 탈탈 털린다. 특히 금액 숫자에 오타라도 나는 날에는 온갖 의심과 의혹을 다 받게 된다.


기초 자료 검토가 끝나면 사업 관련자들이 추려진다. 한 명씩 집중 조사와 취조가 시작된다. 급한 업무고 출장이고 그런 거 없다. 오라면 즉시 튀어가야 한다. 안 가고 미루면 이미 범인이 되어 있다.


독문 스킬은 관심법과 넘겨짚기, 유도신문이다.

"전 잘 모르는데요."

"오래돼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전 그냥 시키는 대로만 했어요."

감사실이 인터뷰하며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평소에는 서로 지가 하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며 그렇게 싸워대는 노비들. 감사실 앞에서는 다들 자긴 별로 하는 일 없댄다. 이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람 부동의 1위는 퇴사한 전임자다. 물론 책임전가 용도다.


그러면 이때부터다. 심기 불편해진 회사제일검! 일단 팬다. 무조건 팬다. 몰라도 팬다. 깡패가 따로 없다. 아.. 그냥 깡패 그 자체다. 사람은 위기에서 진정성이 나온다고 했던가? 바로 여기서 오피스 가족은 가축이라는 걸 깨닫는다. 처맞다 보면 일단 살고 보자는 본능이 발동한다. 대충 아무나 불기 시작한다.

"이거 이선임이 한 거 같은데요?"

“전 잘 모르고 아마 김대리가 알 거에요!”


쟤가 그랬어요. 쟤에요 쟤!


사업본부 임원과 팀장들은 신경이 곤두선다.

'괜히 누가 쓸데없는 소리라도 하면 어쩌지?'

'대체 뭐 때문에 저렇게 감사질을 해대는 거야?'

하루하루가 영 불안하다. 감사실에 불려 갔다 오는 직원들을 모두 붙잡고 무슨 얘기했는지 확인한다.


한편 감사실에서는 분노에 찬 사자후가 사무실 벽과 기둥을 타고 천지가 요동치며 울려 퍼진다.

"이게 회사야! 이게 사업이냐구!! 초딩도 이렇게는 안 해!", "이러니 실적이 곤두박질치지! 이번 거 제대로 파서 다 날려주겠어!", "우리 고객들이! 우리의 주주들이! 뭐라고 생각을 하겠냔 말이야!"

오해말자. 싸우는 게 아니다. 누굴 혼내는 광경도 아니다. 자기들끼리 회의하다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 못해 광분의 기를 분출하는 것이다.


그렇게 수개월의 감사가 끝나면 보고서만 한 달 넘게 쓴다. 감사 보고서의 특징은 잘한 내용은 하나도 안 나온다는 것이다. 잘못한 것들만 수루둑 빽빽이다. 감사실의 컨셉은 일 열심히 했다는 티를 내는 것이다. 감사 결과 잘했다고 하면 놀았다는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라도 잡아낸다.


결국 누군가는 짐을 싸고 자리를 빼게 된다. 여기서 집에 가는 사람은 보통 팀장급이다. 신의 영역 임원은 이 정도는 가뿐히 버텨낸다.

"전무님. 사업 축소 상황에서 이렇게 손실이 큰 프로젝트가 진행된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여기 직접 결재도 하셨습니다."


"이건 정팀장이 추진한 건이군요. 당시 무리하지 않겠냐 충고했지만 워낙 자신해서 맡겼지요. 리더를 믿어주는 것은 경영진의 덕목이니까요. 아쉬운 결과입니다. 제가 중간에 잘 챙겼어야 했는데.. 허허"

그렇다.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다. 제 아무리 회사제일검이라도 세계관 보스들은 쉽게 당하지 않는다.


표적 감사는 항상 누군가 짐을 싸게 된다.


주로 회사 실적이 안 좋을 때, 책임 묻기와 새판 짜기를 위한 밑작업에 감사를 동원한다. 이는 권력다툼에 눈이 먼 임원 몇몇이 정적 제거를 위해 제안하기도 하고, 심기불편한 오너가 직접 지시하기도 한다.


"신소재 사업부문이 왜 계속 실적이 안 좋은건지 도무지 모르겠단 말이지.."

감사실을 불러 오너가 이 정도 뉘앙스를 풍겼으면 알아서 공격 개시하는 것이다. 피의 십자군이 출정한다. 목표는 성지 탈환. 거대 사업부문을 상대로 표적 감사를 한다. 아름답고 깔끔한 건 없다.

"목숨들 걸어! 여기서 밀리면 우리가 당하는 거야!"


수개월 동안 [STOP ㅁ] 정지 버튼 눌러 아무것도 못하게 한 채, 단일 사업부문을 아주 인수분해 도륙을 내놓는다. 그 정도 해 놓고도 문제없다고 결과 보고하면 후폭풍이 매우 거세진다. 오너의 신임은 요단강을 건너간다. 성난 민중들은 봉기한다. 그러니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고 보는 것이다.


모든 감사실은 부정 제보 채널을 운영한다. 상시 부정과 비리의 온상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보여주기 목적도 있다. 아무 제보도 없는데 표적 감사 명분을 제보라고 둘러댄다. 어디서 제보가 왔는지는 제보자 보호를 위해 공개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셀프 제보를 넣고 쑈 하던가 제보자가 없는 경우도 있다. 제보 채널은 감사 구실이자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근데 이게 먹힌다. 감사실의 정의로운 이미지가 노비들에게 심리적 진실 프레임을 씌워주는 것이다.  

'회사제일검은 지위고하를 막론한다.'

'살아있는 권력의 심장에도 칼을 겨눈다.'


때로 감사실은 도덕성 높은 정의구현을 모범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골프 커넥션, 이상한 술집 접대는 예나 지금이나 인기 있는 디폴트 번들값이다. 온갖 해괴하고 기상천외한 사연이 다 튀어나온다. 오피스 게임의 악성 유저들이 속속 발각된다. 정말이지 별놈들이 다 나온다. 꾸러기 짓거리는 매우 다양하다.


거래처에 비싼 계약 주고 매달 리베이트 받아 챙긴 팀장. 리베이트 받을 레벨 안돼 백화점 상품권 세탁해서 받는 대리. 살림살이 보태려고 고객 마일리지 빼내 당근에 파는 워킹맘. 아파트 한번 사보려고 하청업체 사장한테 대출받게 하는 부장. 임신한 기혼녀 축하받고 다시 보니 애 아빠는 옆팀 미혼 팀장. 지가 차린 유령 회사 거래대금 주고 퇴근해서 지가 일한 차장. 회사 차량 접촉사고 알고 보니 가짜 출장 동승자는 여자 과장. 매번 같은 회식장소 팀장 혼자 좋아했던 이유 자기 가게. 너무 많다. 이 꾸러기들..


너네 둘이 무슨 사이야? 빨리 말 안해?


개인 비리 건은 직접 관계없는 것도 다 판다. 일단 상대를 발가벗겨 놓고 시작한다. 이들의 전매특허다. 사람은 알몸일 때 극도의 수치심을 느낀다. 제 아무리 고레벨이라도 빈손털이에 홀딱 벗겨진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법이다. "우리 강팀장님. 일만 열심히 하시는 줄 알았는데, 이혼 소송 중인가 봐요? 그래서 위자료가 필요하셨나?“ 자괴감, 수치심을 극도로 끄집어내 심리적 무력감을 심어버린다. 그렇게 하면 다 고분고분해진다.


줄징계가 터진다. 빌런들이 짤려 나간다. 징계 공고가 난다. 자세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근데 어찌들 알았는지 조회수 빨고 싶은 사내 인플루언서들의 카더라가 난무한다. 무료한 일상의 오피서들에게는 가뭄의 단비와 같다. (오피스 워커 아니냐 따지지 마라. 그냥 뒤에 er붙이면 다 사람이다.)


이런 건들은 사내에서도 칭찬이 자자해진다. 명성이 높아진다. 보다 정의롭고 보다 공정해야 한다. 이 무렵 지들이 감사실인지 폴리스인지 헷갈린다. 한껏 높아진 위용에 거칠 것이 없다. 드높아진 사기는 정의를 위해 존재한다.


경영진의 권력 정쟁에도 감사실을 동원하는 일은 흔하다. 세계관 최강자 임원들끼리는 직접 맞붙기가 부담스럽다. 서로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건덕지 하나 잡히면 감사실에 의뢰한다. 오너의 맘에 들지 않는 임원을 제거할 때도 활용된다. 다들 대는 이유는 똑같다. 회사가 투명해야 된다. 회사가 걱정된다. (웃기시네들..)

 

거래선 친인척 비리에 연루된 임원도 집요한 승부 끝에 잡아낸다. 단두대 위에 세워 한칼에 목을 날려버리고는 정의구현 표창을 받기도 한다.


거긴 그냥 덮어. 두번 말하는 거 싫어하네.


이제 이들은 꽃길만 걷게 될까? 아니다. 목적을 달성한 오너와 임원들은 룰을 바꾼다. 감사실이 너무 많은 노하우를 쌓고 경영진까지도 위협하는 힘을 쥐게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감사실은 실적이 좋더라도 오래 일하지 못한다. 그들의 쓸모가 다 했다 싶을 때 인사조치를 단행한다.


보통 다른 사업장으로 이동한다. 본사에서는 이미 적을 많이 만들어 발 붙일 곳이 없다. 지방 지사로 보낸다. 최강 공격력을 자랑하던 회사제일검의 버프는 순식간에 해제된다. 능력치는 막바로 땅바닥에 내리 꽂힌다. 소문을 들은 지사에서도 이들에게 잘해 줄리 만무하다. 상대해 주는 이가 없어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맨날 때리고 다니다 쥐어 터지기만 한다. 현타만 계속된다. 업무는 하나도 모른다. 우울증이 온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다.


지방 현장으로 발령나서 내려간대.


정의구현을 외치는 감사실이 한 가지 모르는 것이 있다. 감사실은 회사 돈 갉아먹는 병폐를 척결하는 곳이다. 정의구현을 하는 곳이 아니다. 신나게 참교육 컨텐츠를 찍어서는 안 된다. 오피스 게임은 경영진이 곧 회사고, 회사가 곧 정의다.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겨누면 한 줌의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개가 주제를 모르고 주인을 물면 바로 그들의 게임은 종료된다. 그리고 어차피 사냥개는 사냥이 끝나면 잡아먹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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