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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맹 Sep 09. 2024

회사에서 회의감을 느끼는 순간은 바로 회의

오피스 게임 격전지 회의 Part 1. 팀 미팅


회의실은 사람을 가두는 용도다.


오피서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면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회의다.


쪼렙으로 갈수록 회의는 일거리를 받는 용도가 된다. 그래서 침묵이 금이라는 명언을 되새긴다. 말 꺼내면 내가 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를 냈다가 일이 커지면 선임들이 눈치주기 때문이다. 결국 작은 일이던 큰 일이던 내가 하게 된다.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순간도 회의다. 회의에서 분위기가 좋아지는 경우는 드물다. 자고로 나쁜 건 함께 나누고 좋은 건 혼자 먹는 법이다. 오피서들 몰아넣고 쥐어 패는 곳도 회의실이다. 일대일 떠서 쥐어 패는 곳도 회의실이다. 사자후를 남발하는 곳도 회의실이다. 그만큼 회의실은 오피서들에게 고난의 공간이다.


아침부터 무슨 또 회의야.. 어제도 해 놓고..


답이 나오지 않는 회의도 많다. 쥐어짜기용 회의도 많다. 몰아가기용 회의도 많다. 반성용 회의도 많다. 그만큼 회의는 자아파괴의 시간이다. HP를 쭉쭉 빼앗긴다. 사냥 시간도 마구 빼앗긴다. 대체 일은 언제 하라는 거냐?


그러나 오피서에게 회의란 숙명과도 같은 것. 절대 피해 갈 수 없다. 가장 쉽게 맞닥뜨리는 회의는 팀 미팅 같은 부서 내 회의다.


팀 미팅의 용도는 공유, 전파, 논의, 아이데이션, 보고 등 다양하다.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다만, 팀장의 팀원 격파, 자아비판의 시간, 뇌즙과 배터리 쥐어짜기 같은 크리티컬 히트가 작렬되기에 신중함과 주의를 요한다.


팀 미팅 기본은 주간회의다. 주간보고의 기본은 팀장의 아침 기분 살피기다. 그날 회의 분위기는 전적으로 그에 좌지우지된다. 눈치 없이 털리지 않으려면 미리 주간보고를 반드시 살펴보고 가도록 하자.


팀장이 신경 쓰는 업무가 밀리고 있다던가, 전반적인 실적이 꼬꾸라진 경우는 대체로 분위기가 안 좋다. 또한 팀장이 다급히 소집하는 회의는 보통 긴급한 일거리를 받아야 하는 경우다. 이런 회의에서는 침묵이 답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고 함부로 나대지 말자.


회의실에 팀장이 들어오는 순간 긴장을 탄다.


회의란 공간 안에 갇혀 피할 곳이 없는 퀘스트다. 공간은 사람의 심리를 미묘하게 바꿔 놓는다. 지리적 이점을 차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급적 먼저 들어가서 회의실을 정리하는 시늉을 하며 자리를 먼저 선점해라. 절대 팀장과 눈이 마주치는 반대편에 앉으면 안 된다. 회의실 가운데 팀장 상석이 있다면, 팀장 오른쪽 첫 번째 자리를 픽해라. 일단 눈에 바로 띄지 않는다. 순서대로 의견을 얘기하는 일이 생겨도 팀장 왼쪽부터 시작한다. 보통 팀장 자리는 시계의 12시 위치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얘기를 다 듣고 재탕 삼탕하며 무난히 넘길 수 있다. 단, 반대편에 아무도 없다면 한 칸 띄워 앉아라.


회의실 구조라 두줄로 마주 보고 앉는 형태라면, 팀장 옆옆 자리가 최상이다. 누가 먼저 차지했다면 두 번째 픽은 팀장 바로 옆이다. 이 자리들을 권하는 이유는 등잔 밑이 가장 어두운 입지이기 때문이다.


주간회의에서 진행사항을 보고할 때, 담당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뭔가 말을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휩싸인다. 그리고 일을 많이 한 것처럼 보여주고 싶어서이다. 그래서 사족에 사족을 덧붙이다가 뭔가 걸리거나 안 해도 될 일을 떠맡는다. 헛소리로 버퍼링 걸려 했던 말 또 하다가 와르르 깨지기도 한다.


실적이 안 좋으면 주간회의는 반성의 시간이다.


팀 주간회의 자료를 보고 내 업무사항이 짧게 써져 있거나 순번이 아래라면 별 관심 없는 거다. 한두 마디에 끝나더라도 대충 넘어가자. 관심 없는 건 오래 얘기해서 좋을 게 없다. 진행에 걸림돌이 있거나 문제가 있는 정도만 추가적으로 얘기하면 된다. 궁금하면 팀장이 알아서 물어볼 것이다.


담당들이 두 번째 많이 하는 실수는 딴 짓이다. 자기 순번이 끝나면 각자 딴짓을 하거나 밀린 일을 한다. 내 일이 아니더라도 적당히 들으며 현황을 파악하도록 하자. 그들을 존중하고 경청해 주라는 얘기가 아니다. 각자 맡은 일의 진행사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아야 팀장의 현 상태부터 팀이 굴러가는 현황, 그에 따른 게임 전개의 예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회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해도 방심은 금물이다.


팀 미팅 때는 분위기가 안 좋을 때나 좋을 때나 관계없이 일거리는 떨어진다. 대개 분위기가 안 좋을 때는 떠밀려서 일을 받게 된다. 분위기가 좋을 때는 다독이면서 일을 던진다. 그리고 하하호호 하다가 얼떨결에 똥 치우는 일을 받는 경우가 많다.


팀 미팅 분위기가 좋다고 긴장을 늦추지 말자. 그럼 일은 어떻게 받느냐? 팀장이 이슈를 꺼내고 몇 가지 일을 제시할 것이다. 그러면서 누굴 시킬까 할 건데, 다들 자기 하는 거 많다고 힘들다고 할 것이다. 그 일중에 쉬운 게 어느 것일까를 잽싸게 파악하고 쉬운 일에 먼저 손들고 '제가 할께요!'를 외쳐라! 나머지 일은 못하겠다고 빼는 애들에게 돌아간다.


팀 미팅은 전적으로 팀장의 기분에 따라 분위기가 좌우된다. 팀장의 기분이 안 좋을 때 누군가는 분위기를 띄워보려고 광대짓도 한다. 거들어준다고 보조 맞추지 마라. 그러다 같이 털리는 수가 있다.


실적이 안 좋아 돌아가며 깨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때 다들 미리 마련한 핑계들을 하나둘씩 꺼낸다. 팀장은 그런 얘기를 매주 듣는다. 무슨 얘기냐? 듣기 싫다. 대충 다 개소리 같다 이 말이다. 깨질 때는 그냥 '죄송합니다.' 한마디로 끝내라. 억울한 게 있다면 회의 끝나고 다른 선임한테 쓱 흘려라. 다 팀장 귀로 들어간다.


얘들아 싸우지 마! 일거리는 내가 나눠줄께.


부서 미팅은 팀 전체 미팅 말고도, 동료들이 미팅을 요청할 때도 조심해야 한다. 이 경우 100% 도움을 요청 건이다. 2명 이상이 먼저 속닥대고 미팅을 요청할 때는 일을 떠밀려는 개수작이다. 반드시 이슈를 먼저 물어보고 핑계거리를 생각해 내야 한다. 그냥 어버버 하고 들어갔다가 말리게 된다.


만약 말려들 상황이라면 혼자 기냐 아니냐 할 필요 없다. 판단하기 좀 애매하다고 둘러대고 한 명 더 불러 같이 얘기하자고 해라. 가장 베스트 픽은 조정자가 있는 경우다. 없다면 그나마 나와 친한 사람을 불러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도록 해라. 몰릴 것 같으면 같이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도 좋다. 다만 남은 사람들이 다 빌런이면 그냥 혼자 해라. 그게 속편하다.

 

팀 내에서 일어나는 미팅의 목표는 공격이 아니다. 기분과 배터리 방어가 목적이다. 회의를 할 때마다 반드시 아래 공식대로 승률을 체크하며, 스킬을 쌓아나가자.

초맹의 팀 미팅 승률 측정 공식

1. 담당자용
1승 - 회의 전과 후 기분변화가 없는 경우, 일을 간단한 것을 맡거나 안 맡은 경우
1패 - 회의 때 옴팡 깨진 경우. 회의 후 꿀꿀하거나 답답한 기분이 쌓인 경우. 일을 떠안은 경우
승패 없음 - 그외 간단한 질문에 답을 하는 정도. 모두 동시에 비슷한 일을 받은 경우

2. 관리자용
1승 - 회의 때 분위기가 좋았던 경우, 관리가 잘 된다는 느낌을 받은 경우, 회의 후 임원 보고 할 거리가 충분히 생긴 경우, 일을 공평하게 배분한 경우
1패 - 회의 때 꼬장 부려 분위기 망친 경우, 돌아가며 의무 아이디어 내기 시전한 경우, 팀원들이 핑계를 너무 많이 대는 경우, 한두 명한테 일감 몰빵친 경우, 일시킬 사람 없어 직접 하는 경우
승패 없음 - 그냥 업무 확인만 한 정도, 티타임용 미팅을 한 경우, 단순히 전달사항을 전파한 경우


기본적으로 방어가 성공적이라고 생각되면 1승이다. 깨졌거나 떠밀렸다면 1패다. 그렇게 팀 미팅 승률을 체크해 보자. 만약 35% 아래라면 낮은 거다. 보통 승률 50%가 기준이다. 최소 70% 이상은 되어야 스킬이 꽤 있는 것이다. 한 달 정도 저 공식대로 계산해 보면, 나의 팀 미팅 승률이 어느 정도인지 나온다. 참고로 저 공식은 팀 내에서 미팅을 했을 때이다. 부서 간 미팅이나 거래처 미팅은 또 다르다.


그만! 그만하라구! 내가 다 막을꺼야!!


모든 사람은 죽음과 세금을 피해 갈 수 없다.

모든 오피서는 퇴사와 회의를 피해 갈 수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무책임한 말은 하지 않는다. 비좁은 공간의 전쟁터 회의실. 피해 갈 수 없다면 막아라!


회사에 회의실은 회의를 하려고 있는 곳이 아니다.

피할 곳 없이 몰아넣고 딜을 날리기 위해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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