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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맹 Sep 19. 2024

회사 가서 바로 써 먹는 미팅의 기술!

오피스 게임 격전지 회의 Part 3. 회의에서 공격과 방어


회의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전편 : 회의실. 맞다이로 쪼개는 회사의 대표 격전지


회의가 무의미하고 끝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말이 자꾸 빙빙 돌 때, 다들 침묵을 지킬 때다. "이럴려면 회의 왜 하는 거야?" 앉아서 생각한다. 머리가 멍해진다. 딴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개의치 않고 그냥 자기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이유 모를 이상한 공유 미팅 같은 건 대충 해도 된다.


우리가 신경 써야 하는 것은 사안을 결정하는 회의다. 특히 타 부서와 하는 회의다. 이는 참석자들의 이해관계가 다르다. 그래서 공격수와 수비수가 명확히 갈린다. 그런데도 회의가 제대로 안 끝나는 이유는 공격수와 수비수가 둘 다 바보이기 때문이다. 공격을 해도 막히고, 수비를 하자니 핑계가 애매하다. 그래서 말이 허공에서 빙빙 돌게 된다.


회의는 30분 안에 끝장을 못 보면, 그냥 바이바이 하고 2라운드를 기약하는 것이 좋다. 거기서 2시간, 3시간 끝장 토론해 봐야 끝이 안 난다.


공격 시 전략

회의 시에 가장 많이 하는 착각은, 말이 많고 목소리가 커야 이긴다는 생각이다. 이건 쪼렙들 전투에서 레벨발이나 필살기 한방으로 깨보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고수들의 미팅은 그렇지 않다. 회의에서 말이 많으면 아쉽다는 소리다. 목소리가 크면 초조하다는 뜻이다. 말은 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다.


어차피 회의에서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은 온다. 그때 해도 늦지 않는다. 중요한 얘기는 상대가 먼저 하도록 하자. 상대가 요청한 회의에서는 상대의 입장을 듣는 것이 수월하다. 들으면서 생각해도 된다. 다만, 타 부서에 먼저 요청한 회의는 일단 디버프를 받고 불리하게 시작한다. 아쉬운 소리를 먼저 꺼내야 한다. 이 경우 화두만 먼저 제시하고 상대가 의견을 뱉도록 던지고 들어라. 그럼 상황을 역전할 수 있다.


조정자는 회의에 특화되어 있다.


초맹의 회의 공격 예시
X) 저희 마케팅팀에서 다음 달에 대형 행사가 있습니다. 그때까지 고객 사은품 제작을 긴급히 지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O) 다음 달에 고객 대형 행사가 잡혔는데 얘기 들으셨죠? 워낙 큰 이슈라 관련 부서들의 코웍이 필요해 함께 정리가 필요합니다. 준비해야 하는 사항들은 장소 섭외, 프레스 유치, 사은품 제작, 포스터 디자인이 있습니다. 의견 어떠신가요?

위의 예를 보면 X의 경우 상대에게 일을 바로 들이밀었기 때문에 상대는 발을 빼기 쉬워진다. 전쟁터에서 구걸은 거절이다. 반면 아래 예에서는 이슈를 먼저 제시했고 역할을 나누지 않았다. 코웍으로 이미 프레임을 씌우고 시작했다.


당초 생각은 사은품 제작 정도만 협조를 받아내면 되는데, 이를 염두에 둔 채 얘기를 먼저 들어볼 수 있다. 상대는 어떤 생각을 말할지, 아니면 자기들이 어느 선까지 지원해 줄 수 있는지 먼저 말하게 할 수 있다. 애초 노린 사은품 제작 이외에 다른 도움을 더 얻어낼 수도 있다.


반면 상대가 빠져나가려고 하면 선심 쓰는 척을 하면 된다. "그럼 우리가 장소 섭외, 프레스 유치할께. 사은품 제작만 해 줘." 이 정도로 원래 원하던 정도를 얻어낼 수 있다.


방어 시 전략

방어전인 경우,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내가 꾸린 회의덱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 급하게 다른 캐릭터를 교체 선수로 넣을 수 있다. 방어전에서 상대는 무조건 우리에게 무언가 요청하게 되어 있다. 얘기를 다 들어라. 쉬운 일도 어려운 듯, 해줄 듯 말 듯, 밀땅을 해라. 이 지점에서 시간을 끌어라. 상대가 우리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필요한 것을 흘려라. 그리고 마지막에 어렵지만 요청 건 해 드리겠다고 하면 된다. 테이크를 먼저 받고 기브 하는 것이다.


다같이 덤벼도 일 안 받는다!


하기 싫거나 거절 가능한 것들은 거절해도 된다. 단 거절할 때, 우리 팀에 일이 바빠서 당장 못해준다는 핑계와 네거티브성 멘트는 가장 널리 쓰인다. 근데 이건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 일은 다시 돌아서 오게 되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빠서 못해준다는 것은 안 바쁘면 해준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방어전은 근본을 건드려 주는 것이다. 상대가 요청한 그 일이 우리 팀에 적합하지 않은 이유를 말해줘야 한다.

초맹의 회의 방어 예시
X) 저희가 요새 이것저것 하는 일들이 많아 여력이 안 되네요. 어쩌요?
O) 진행 건이 중요하게 생각되네요.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일을 위해 예산 1억 준비해서 차주까지 품의 받아주시고, 부서 인원 지원 2명 그리고 업무 진행 순서도 데드라인까지 정리가 필요합니다. 미팅 끝나고 필요사항 더 체크해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우리 팀이 이 일을 해 주기 위해 지원받아야 하는 것들을 말해줘야 한다. 최대한 부풀려라. 그러면 상대는 계산기를 돌려보고 배보다 배꼽이 더 커 포기하게 된다. 떠밀어 보려고 했는데 명분이 없어 포기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거절하면 우리 팀에서 그 일을 안 해줬다고 뭐라 할 이유도 없다. 할 말도 다 있다.


부서의 입장에서는 타 부서에서 일을 안 받아오는 것이 가장 나이스한 상황임을 명심하면 된다. 부득이하게 어웨이 경기로 상대에게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라면 이스케이프 스킬을 써라. "이 건은 저희가 내부적으로 좀 더 컨디션 체크해 보고 다시 미팅 요청 드리겠습니다."


한명씩 들어오랬지? 어딜 때거지로..


방어전에서는 입지와 주도권이 영향을 미친다. 서둘러 상석을 차지하도록 하고 사회자 포지션을 잡아라. 사람은 사회자가 무엇을 묻거나 진행하는 대로 따라가야 한다는 심리적 프레임이 씌워져 있다. 이를 이용하면 회의에서 템포를 조절하거나, 흐름을 짜르기도 수월해진다. 방어가 용이해진다.


보통 사회자 포지션은 미팅을 하자고 하는 부서가 잡는다. 미팅 요청 부서거나 자료를 띄우고 있는 부서가 아니어도 괜찮다. 중간에라도 틈이 보이면 치고 들어가라. "지금까지 각 담당자들 의견을 들어본 것 같은데요. 오늘의 목적은 결론을 내는 거잖아요. 요청사항이 뭔지를 들어보고 상충되는 것을 들어볼까요?" 이렇게 해서 흐름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 명심하자. 방어전을 쉽게 하려면 주도권을 스틸해 내야 한다.


살벌한 회의에서 조정자는 심판의 역할도 한다.


클레임 미팅

회의에는 타 부서에 클레임을 쳐야 하는 경우가 있다. 클레임을 치는 경우는 협업 중 꼬인 부분을 해결해야 할 상황이거나, 협업 부서가 제대로 일을 안 하는 상황이다. 유리하다. 가서 깨면 된다.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적지에 찾아가서 깨면 된다. 아니면 남은 일을 더 덜어가게 딜을 하는 방법도 있다. 만약 상대 부서장까지 들어오는 경우라면 적지로 가지 말고 홈으로 오게 하자. 그래야 상대 부서장에게 굴욕을 안기기 쉽다.


무적버프가 붙은 자는 회의를 혼자 하드캐리한다.


거래처와의 미팅에서도 클레임을 치는 미팅은 자주 일어난다. 보통 갑의 입장이면 들어오라고 호통을 친다. 거기서는 그냥 앞으로 잘하겠다는 얘기 말고 별로 듣을 게 없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거래처로 쫓아가라. 그래야 더 피곤해진다. 거래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더 잘 보인다. 그들은 이를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찾아오겠다고 하는 거다.


반대로 우리가 을이고 고객사에서 미팅을 하자고 할 경우 굳이 우리 회사로 오게 할 필요 없다. 갑은 지들이 편하려고 한다. 그냥 들어가서 고개 함 숙이면 된다. 쪽팔림은 잠깐이다.


초맹의 부서 간 회의 승률 계산법

1. 부서 방어전
1승 - 일을 안 받은 경우, 상대가 원하는 일의 양보다 훨씬 적게 받은 경우, 상대와 딜을 성사시킨 경우, 상대가 일의 추진을 포기한 경우
1패 - 일 떠밀린 경우, 타 부서에 농락당한 경우, 상대에게 빌미를 제공한 경우, 죄송합니다 3번 이상 한 경우

2. 부서 공격전
1승 - 상대에게 굴욕을 안긴 경우, 상대에게 일을 떠민 경우, 상대와 딜을 성사시킨 경우, 상대 부서의 비용을 사용한 경우, 원하는 것을 얻어낸 경우
1패 - 공격이 상대에게 전혀 안 먹힌 경우, 공격하러 갔다가 역공을 맞은 경우, 상대에게 일을 떠미는데 실패한 경우

승패 없음 - 넥스트 미팅을 기약한 경우, 이스케이프 친 경우, 결론이 안 난 경우


부서 간 회의, 외부 회의는 기본적으로 방어나 공격이 성공적이라고 생각되면 1승이다. 반대면 1패다. 지금부터 부서 미팅을 하며 승률을 체크해 보자. 만약 20% 아래면 낮은 거다. 보통 승률 35%가 기준이다. 50% 이상되면 스킬이 상당하다 보면 된다.


회의를 씹어 먹어버린 자의 여유


회의. 대충 들어가서 일 받고, 듣고 나오는 게 아니다. 진정한 오피서들의 전투판은 회의장이다. 수많은 경우의 수. 치밀한 계산. 나락에 보내려는 음모. 오피스 게임의 모든 사악한 간계가 표출되는 전쟁터다.


지금까지 오피스 덱을 잘 꾸렸다면 이때 충분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자. 여기까지 잘 읽었다면 자신감을 갖자. 스킬을 키우고 덱을 보완하여 차곡차곡 승률을 쌓으면 된다.


오피서들아. 이제 일어나자. 회의하러 갈 시간이다. 발차기 연습 충분히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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