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게임 격전지 회의 Part 4. 초고난이도 밀실 보스전
룰을 알면 보스전도 하드캐리 할 수 있다!
오피스 게임의 가장 힘겨운 순간은 바로 보스전이다. 보스전이 어려운 이유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상대가 임원들이다. 세계관 신들을 상대로 공격전과 방어전은 매우 험난하다. 한대 잘 못 맞으면 크리티컬 히트다. 바로 게임 오버를 맞기도 한다. 그래서 모든 오피서는 보스전을 두려워한다.
보스전 할 일이 없는 오피서는 둘 중 하나다. 쪼렙이거나 한직이라는 의미다. 아직 보스전에 갈 만한 스탯을 쌓지 못한 거라 보면 된다. 보통 보스전에 진입하면 죄다 격파당한다.
공격전 : "예산 좀 주세요." "노우! 비싸! 줄여!"
방어전 : "이달 내로 재고 회수 다 해!" "아.. 네"
보스 전에서 제대로 아무것도 못해보고 허무하게 패배하는 이유는 전투력의 차이가 가장 크다. 그럼 그 전투력의 격차를 상쇄시켜야 한다. 여기에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공간이다.
보스는 밀실을 좋아한다. 방으로 불러 지시를 내린다. 그 방이란 무엇인가? 폐쇄된 비좁은 공간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그 말은 상대가 어디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정말 호랑이 굴속까지 들어가면 잡아먹힌다. 호랑이 굴 앞에 함정을 파놓고 호랑이를 불러내야 한다. 그것이 숨어있는 공간의 무서움이다. 심리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공간이라는 뜻이다. 부른다고 가서 그 자리에서 상대하려고 하면 거의 다 깨지게 되어 있다.
방에 들어가는 순간 모든 버프가 사라진다. 이미 나보다 훨씬 전투력 높은 임원들은 홈그라운드에서 버프를 잔뜩 받는다. 거기서 당연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 밀실에서 나보다 강한 상대와는 교섭력이 급격히 약해진다. 앵간해서는 이길 수 없다는 의미다. 즉, 상대의 밀실에서 맞다이는 최대한 피해야 한다. 일단 불려 들어가서 뭔가 지시를 받았다면 "확인해 보겠습니다." "검토해 보겠습니다." 같은 퍼즈 스킬을 써 자리를 회피해라.
다구리 앞에 장사 없다!
"저은~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저은~하! 모든 신하들의 뜻이옵니다!"
이거 뭐냐구? 역사는 반복된다. 우리는 보스전의 답을 이미 조선 다이너스티에서 찾을 수 있다.
쟤들이 다 쫄래쫄래 몰려가는 이유가 뭔가? 이미 어전에 혼자 가서 통촉해 달라고 땡깡부리다 두 명 유배 가고, 세명 곤장맞고, 한 명 감옥에 있다. 그렇다. 죄다 찍소리 못하고 격파당했다는 소리 되겠다.
우리 선조들이 찾은 해법은 바로 다구리였다. 그럼 저은하가 뭐라 하는가?
"허... 참.. 알겠소! 경들 원하는 대로 하시오! 어험.." 이러잖아. 그치? 맞지?
그러나 조선 다이너스티의 어전은 그 공간이 심히 광대하지만, 오피스 다이너스티는 그렇지 않다. 덱을 이끌고 임원실에 들어갈만한 충분한 사이즈가 안 나온다는 의미다. 그래서 혼자 불려 갔다면 적당히 회피한 후, 호랑이를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
그다음은 덱을 모아 방어와 공격 준비를 한다. 작전을 세우고 적당한 미팅룸을 잡은 후 멤버를 모두 끌어들여라. 그래서 다구리를 쳐서 잡으면 된다. 한 명이 밧줄 던져 호랑이를 묶으면, 한 명은 입에 재갈을 물리고, 또 한 명은 딸랑이 좀 쳐주면서 호랑이 발톱을 봉쇄해라. 그리고 MC 두 명이 서로 스킬 보완하면서 공격기를 계속 던지면 된다. 당황한 임원은 결정을 미루려 할 것이다. 다음 스케줄이 있다며 자리를 뜨려 할 것이다.
놓치면 안 된다. 여기서 기한을 박아야 한다. 중요 사안이다. 오늘 결정내야 한다. 최소 이번주에 결정 내야 한다. 압박해라. 대충 적당히 유야무야 되어 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 패전은 면한 것이다. 나중에 다시 같은 이슈가 생기더라도 임원 탓으로 몰아갈 수 있다. 뭔가 결정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LV 95 앞에서 LV 50, LV 65, LV 75 차례차례 순번대로 갔다가는 격파 밖에 안 당한다. 유리한 공간에 상대를 몰아넣고 서로 다른 스킬을 시전 하며 협공하면 이길 수 있다. 근데 무식하게 조선 다이너스티 따라 한다고 아무 생각 없이 땡깡부리면 필살기를 얻어맞고 올킬당하니, 충분히 대비하고 상대하자.
조별 과제 혼자 하드캐리
"아.. 귀찮아. 혼자 다 아작 내버리면 되지. 모하러 줄줄이 많이 달고 다녀?"
조정자가 다수를 상대하는 회의에 최적화되어 있다고 한다면, 보스전에 특화된 자들이 있다. 바로 현자다. 현자는 여러 팀이 함께 하는 회의, 머리수가 많은 회의에서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다.
회의에서 판세와 흐름을 보는 자는 두 부류다. 현자와 정치인이다. 정치인은 판세를 보고 어디 붙을까? 상황을 이용해서 표 좀 얻어 떡상을 노린다. 반면, 현자의 시야는 좀 다르다. 이 판은 어떤 놈이 벌린 판일까? 이거 하면 누가 득 볼까? 똥인가 된장인가? 향후 점괘가 어떻게 될까? 이런 것들을 파악한다. 방관하는 듯 하지만 판세를 점친다. 생각을 한다. 그래도 나설 일이 별로 없다. 조정자가 보통 다 알아서 끝장내 버리기 때문이다.
현자는 불필요한 일에 애써 나서지 않는다. 일단 귀찮다. 필살기를 써야 할 때를 대비해 에너지를 모아두어야 한다. 현자도 다른 우수한 덱의 도움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나 보스전을 할 때는 단독 하드캐리를 선호한다. 동료 중 누군가 한 마디라도 실수하면 오히려 해악이기 때문이다.
보스전을 혼자 하드캐리할 때는, 보스가 원하는 업무를 꿰뚫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러면 결국 독박을 쓰게 된다. 보스들이 아무 말 대잔치 같은 업무 지시나 이랬다 저랬다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가 원하는 건 있는데, 그걸 어떻게 얻을지를 세세하게 모르기 때문이다.
보스전에는 의외로 일잘러들이 잘 당한다. 일 자체를 잘하기 때문이다. 임원들이 불러서 뭘 시키면 방어가 안 된다. 임원에게 뭘 요구하는 공격전은 단숨에 차단이 박힌다. 보통 일잘러들의 배터리 방전과 번아웃은 이 과정을 반복하며 일어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답은 그 사안에서 찾는 게 아니라, 더 앞에서 미리 찾아야 한다. 보스 자체를 간파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그다음은 보스가 얻게 되는 이득이 뭔지를 꿰차고 있어야 한다.
1. 일잘러와 현자의 대 보스 방어전
일잘러 : 제가 이 일을 10년 해 봤지만, 이 일정에 소화하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임원 : 아 그러니까 너한테 말하는 거잖아! 좀 더 속도내서 완료해 봐.
일잘러 : (급 현타 옴) 아.. 지친다.. 지쳐.. (패!)
현자 : 그 일정에 이 분량이면, 1시간에 도면을 2개씩 뽑아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이게 되나요?
임원 : (뇌 정지)..........................................
현자 : 실제 적용될 도면은 10개면 되는데, 혹시 다양하게 보여주고 싶은 건가요? 어차피 다 비슷비슷해 보일 거 숫자 늘리지 말고, 테마 스타일만 5개로 나눠서 설계하면 더 풍부하게 보여질 것 같습니다.
임원 : 아! 그치그치! 내가 말하려던 게 그런 거라구!
현자 : (씨익) 승!
2. 일잘러와 현자의 대 보스 공격전
일잘러 : 연구실 랩 장비가 너무 노후되었습니다. 5천만 원만 예산 할당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게 중요한 분석 장비거든요.
임원 : 뭐?!! 5천? 더 싼 거 다시 알아봐! 가급적 지금 꺼 그냥 쓸 수 있음 써.
일잘러 : 아.. 급 현타 오네.. 퇴사 마렵다.. (패!)
현자 : 연구실 분석 장비가 망가졌습니다. 그거 실험 오차 매번 나던데 마침 잘 됐네요. 새 거로 바꾸면 오차율 보정에 분석 일정 더 빨라져요. 5천 들여 연에 20억 더 팔 수 있단 얘기죠.
임원 : 어.. 그래? 그 건 당장 진행시켜!
현자 : (씨익)
단순 일잘러와는 다르다. 일을 꿰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일을 꿰차고 있는 것은 일잘러가 더 위일 수 있다. 이 둘의 차이는 시야와 생각의 폭에서 나온다. 보스전은 여럿이 역할 분담이나 팀연계 공격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의 보스전은 모든 불리함을 떠안고 시작한다. 그러나 시야와 생각을 뚫고 있다면 적어도 무참히 밟히지는 않는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도 짓밟히는 경우는 딱 하나다. 임원이 깡패일 때다. 줘 패야겠다고 작정하고 들이대면 뭐 어쩔 수 없다. 뭐라 하든 팬다.
그냥 알겠다고 하고 대충 하는 시늉만 하다 말자. 그런 자는 모두에게 그런다. 신경 쓸 필요 없다. 아무도 졌다고 무능하다거나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회의가 아니다. 회의를 가장한 폭행일 뿐이다.
밀실 보스전은 난이도가 최상이다.
안 된다 싶으면 함부로 나대지 말고 뒤에서 조용히 발차기를 연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