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마음을 여는 다섯 단어
그려. 안 뒤야. 뒤얐어. 몰러. 워쩌.
할머니는 언어의 미니멀리스트였다.... 오히려 풍성하고 화려한 나의 언어는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데에 부작용만 일으켰다.... 나는 언어의 과용이 오히려 독이 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언어를 아끼자. 할머니처럼 말하자.
심윤경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중에서
새 다이어리의 첫 장, 단어 몇 개를 적었다.
그려: YES
안 뒤야: NO
뒤얐어: 괜찮아
몰러: 인정
워쪄: 공감
단순한 말들 안에 내가 바라는 모습이 담겨 있다.
아이를 키우며 매 순간 옳고 그름을 따지는 나를 본다. 나는 늘 내 말이 중요한 것처럼 여겼다. 말속에 생각을 다 담고 싶고,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상세히 설명하고 싶었다. 그런 내 언어는 늘 풍성하고 화려했다. 하지만 언어들이 아이에게 제대로 닿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커갈수록 논리로 무장한 내 말들이 아이의 마음을 서서히 닫게 함을 깨달았다.
설명하고, 설득하고, 분석하고, 지적하고.
내가 내뱉는 말들 중 얼마나 많은 말들이 아이의 마음에 닿을까?
책 속 할머니의 평범하고 단순한 다섯 마디가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아이에게 지혜를 전하려 했던 말들이 이에게는 때때로 ‘워쪄’라는 한 마디가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음을 느낀다. 머리보다 가슴으로 이해하며 공감하는 말, 그 말들이 아이에게는 훨씬 더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더욱 깨닫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입은 여전히 앞서 간다. 아이가 잘못했을 때, 내 말은 여전히 거칠어질 때가 많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다짐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많은 말 중에서,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말만을 골라 내뱉자고. 적게 말하고, 따뜻하게 말하는 것이 결국에는 관계를 더 잘 지켜나갈 수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언어를 줄이기로 결심했다. 할머니처럼 간결한 말, 그러나 그 안에 진심이 담긴 말을 하고 싶다.
‘뒤얐어’라는 말이 더 많은 위로를 준다. ‘몰러’라고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그럴듯한 변명보다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워쪄’라는 말 한마디가 상대의 마음에 등을 쓸어내리는 손길이 된다.
아이 앞에서 나는 더 이상 지혜의 자리를 차지하려 하지 않으려 한다. 내 언어가 상대방의 마음에 닿도록, 그 말을 아끼고 간결하게 하려 한다. 내 말속에서 ‘뒤얐어’와 ‘워쪄’를 자주 찾으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정말 바라는 모습, 그리고 아이와의 관계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겠지.
이 작은 다짐이 결국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아이와의 관계를 더 따뜻하고 깊이 있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다섯 개의 짧은 단어를 마음에 새긴다.
건반 밖 엄마, 서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