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안다는 것
무엇을 조금 알면
조금 알면 오만해지고
조금 더 알면 질문하게 된다
거기서 조금 더 알면 기도하게 된다
라다크리슈난
아이가 피아노를 연습할 때 옆에서 가르쳐주려 들면
“알아! 나도 알아!” 당당히 외친다.
하지만 그 손끝은,
내 눈엔 전혀 아는 게 아닌데.
한참을 보다가 웃음이 난다.
그 뻔뻔하고도 당찬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어쩌면 어린 마음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게 더 어려운 걸지도 모른다.
혼자 부딪치며 고집을 부리다가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슬그머니 고개를 숙인다.
“엄마, 여기 좀 도와줘.”
그 한마디에 숨겨진 마음이 보인다.
자존심과 좌절 사이를 오갔을 아이의 마음.
그래, 넌 결국 도움이 필요했지.
모두가 처음엔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막힌 물꼬를 터주고 나면,
그제야 자기가 틀렸음을 인정하고 질문을 거듭한다.
“여기는 어떻게 하는 거야? 왜 이렇게 해야 돼?”
알아가는 만큼,
마음이 한결 부드럽고 겸손해진다.
그리고 결국,
혼자서 이겨내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자기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순간이 오면
그제야 기도한다.
나조차도 돕지 못할 때가 있다는 걸
아이는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한계를 알 때, 기도가 절로 나온다.
그 순간, 아이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나의 모습을 돌아본다.
나는 얼마나 자주 “알아! 나도 알아!”를 외치며
자신만만한 척했을까.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에 고집을 부리다가
기껏해야 막다른 길에서야 도움을 청했던 내 모습.
어쩌면 아직도 나는 스스로의 한계를 제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보며 배우는 순간이다.
‘앎’이란,
내 힘만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것.
겸손히 도움을 구하고,
더 나아가 그 너머의 지혜를 향해 손을 뻗는 것.
그게 바로 진짜 ‘앎’이다.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성숙해진다.
그리고 성숙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임을 깨닫는다.
서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