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를 알아차리는 순간
악보를 펼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음표들이다. 높은음자리표와 낮은음자리표가 자리를 잡고, 빼곡히 늘어선 음표들이 저마다의 소리를 내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있는 작은 기호들, 쉼표는 상대적으로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일부러 보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나는 쉼표를 귀찮은 존재로 여겼다.
쉼표는 소리를 멈추라는 신호다. 하지만 나는 그 공백이 어색했다. 손끝에서 멜로디가 끊기지 않고 흘러가야 마음이 편했으니까. 그래서 쉼표를 건너뛰거나 최대한 짧게 처리했다. 다음 음으로 어떻게 가야 할지 망설여졌기에 쉼표의 길이를 정확히 지키지 않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연주했다. 한 박자 쉬라는 지시가 있어도, 나는 반 박자 정도만 쉰 채 바로 다음 음을 향해 달려갔다. 그게 더 자연스럽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연주는 어딘가 답답하고 조급해 보였다. 음은 정확한데, 음악은 엉망이었다.
“쉼표는 음악이 숨 쉬는 순간이야.”
선생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도 나는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숨 쉬는 순간이라니? 음표를 연주하는 것이 중요하지, 쉼표를 지키는 게 그렇게까지 큰 의미가 있을까? 나는 여전히 쉼표를 성가신 존재로 여겼다.
하지만 어느 날, 베토벤의 ‘템페스트 소나타’를 연습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빠르게 몰아치는 선율 속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쉼표. 한순간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그 공백이 음악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었다. 쉼표는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 그 후에 나올 소리를 더 강렬하게 만들고 있었다. 마치 폭풍이 몰아치기 직전, 공기가 잔뜩 웅크리는 것처럼.
그제야 알았다. 쉼표는 ‘멈춤’이 아니라 ‘준비’라는 것을.
나는 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쉬는 것은 게으름의 다른 말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쉴 틈 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피아노 연습도, 공부도, 일도, 언제나 앞만 보고 달려갔다. 하지만 쉼 없이 달리는 음악이 거칠고 조급한 소리만 내듯이, 그렇게 살아가는 삶도 결국 지친 숨을 몰아쉬게 된다는 걸 몰랐다.
하지만 그렇게 전력 질주하던 어느 날, 나는 결국 멈출 수밖에 없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버렸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소위 번 아웃. 억지로 움직이려 해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너무 오래 쉬지 않고 달려왔다는 것을. 그런데 참 이상했다. 분명히 멈춰야 하는 상황인데도 나는 쉬지 못했다. 몸은 가만히 있었지만 마음은 불안했다.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걸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쉼이라는 것이 주어졌는데도 쉴 줄 몰랐다. 나는 내가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를 몰랐던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쉼의 가치를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려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불안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점차 알게 되었다. 쉼이라는 것은 '멈춤'이 아닌, 나 자신에게 숨을 돌릴 시간을 주는 것이라는 것을.
쉼표는 단순한 공백이 아니다. 그건 음악이 숨을 쉬는 순간이며, 다음 음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삶에서의 쉼도 결코 낭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더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다. 숨을 고르고,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 시간.
이제 나는 악보 속 쉼표를 사랑한다. 그것은 단순한 멈춤이 아닌, 음악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걸 알았으니까. 인생의 쉼표가 주어질 때 그 시간을 피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오히려 더 소중히 여기려 한다. '멈춤'은 두렵지만,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는 순간을 허락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아름다운 리듬을 만드는 법이 아닐까.
오늘도 변함없이 내 삶의 악보를 펼친다. 그리고 쉼표가 만들어낼 여백 속에서, 내 인생은 어떤 선율을 그려낼지 기대해 본다.
건반 밖 엄마, 서나송